22편의 영화와 함께 2022년 무더위를 잊게 하려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결심 <시네바캉스 서울>이 7월 28일 목요일부터 8월 28일 일요일까지 열린다.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관객회원이 직접 추천한 영화를 상영하는 ‘나의 스무살: 영원한 젊음’, 감금과 구석에서 벗어난 탈출의 쾌감이 돋보이는 영화들을 상영하는 ‘탈주하는 영화’, 프레임을 벗어난 실험적인 영화를 소개하는 ‘프레임 워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된 가운데 고대되는 영화 5편을 골라보았다.
밤의 선박(1979) ㅣ 마르그리트 뒤라스
“Paris empty. Spring. Saturday”로 이어지는 내레이션대로 아무도 없는 파리의 배경 위로 여자(마르그리트 뒤라스)와 남자(브누아 자코)의 목소리가 흐른다. 독일군이 설치했던 비밀 전화선을 이용해 사랑의 말을 나누는 파리의 남녀들. ‘밤의 선박’이라는 제목은 어쩌면 어둠을 가르는 그들의 대화에 빗댄 것이 아닐까.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20주년을 기념해 이 영화를 추천한 관객은 이러한 추천평을 남겼다. “스무 살은 한 사회의 인간으로 따진다면 곧 성인으로 간주될 텐데 스무 살 이후의 삶이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어떤 영역이든지 새로운 생각과 그로 인한 사고의 확장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중략) 영화가 전통적으로 이미지를 구축해왔던 여러 방식의 바깥을 고려하는 영역이 더욱 중요해질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듭니다.”
멍하고 혼란스러운(1993) ㅣ 리처드 링클레이터
원제 <Dazed and Confused>와 동명의 매거진을 만들었던 크리에이터 제퍼슨 핵은 이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일까? <멍하고 혼란스러운>은 1976년 텍사스 작은 마을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댄스 파티를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10대들의 이야기다. <보이후드>(2014), <비포 선라이즈>(1996), <비포 선셋>(2004), <비포 미드나잇>(2013) 시리즈, <어디갔어, 버나뎃>(2019)과 같이 ‘성장’이라고 단적으로 표현하기에는 보다 밀도 높고 섬세한 감정선을 그리는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초기작이다. 이 영화를 이번 <시네바캉스>에 추천한 한 관객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는 젊음이 마치 안개 같이 영화 전반을 흘러 나아간다” 평한다. 벤 애플렉, 매튜 맥커너히, 밀라 요보비치 등 스타들의 멍하고 혼란스러운 앳된 모습도 보인다.
배니싱 포인트(1971) ㅣ 리처드 C. 사라피안
1970년형 닷지 챌린저 440 엔진을 타고 스턴트를 해보는 것이 소원인 조이를 위해 함께 차에 올라탄 여자친구들과 변태적인 살인마 마이크(커트 러셀)의 카레이싱 대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2007년에 공개한 영화 <데쓰 프루프>의 숨막히는 자동차 액션에 두 손 꽉 쥐었던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에도 금세 빠져들 것이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데쓰 프루프>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준 영화 <배니싱 포인트>다. 자동차 영화의 컬트작으로 불리는 <배니싱 포인트>는 콜로라도에서 캘리포니아까지 15시간 안에 차를 배달하기로 내기한 전 해병대원 현 차량 수송자 코와르스키의 질주 영화다.(현재 콜로라도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차량 이동 경로를 구글링하면 19시간 16분, 1232마일 걸린다고 나온다.) <배니싱 포인트>에 나오는 차량도 1970년 닷지 챌린저. 엄청나게 빨리 달리는 코와르스키의 차와 그를 좇는 경찰관들의 추격 속도감이 더위를 냉각시킨다.
큐어(1997) ㅣ 구로사와 기요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양들의 침묵>을 보고 1시간만에 구상을 떠올렸다는 영화 <큐어>. 영화 <큐어>에서 받은 영감이 <살인의 추억>에 녹아있다는 봉준호 감독. 전자 <양들의 침묵>에는 심리전을 펼치는 살인마가 나오고, 후자 <살인의 추억>에는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범인의 정체가 모호하다. <큐어>에는 이러한 특징이 모두 녹아있다.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개봉한 바가 없기에 알음알음 엄청난 스릴러라는 입소문만 타다 개봉 25년만인 올해 7월 6일 디지털 리마스터링 된 버전으로 국내 개봉했다. 이번 <시네바캉스>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 보고나면 멍해지는 기분을 남긴다는 <큐어 Cure>는 무엇을 낫게 하는 걸까.
메모리아(2021) ㅣ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아카이브가 기록해둔 대로, 태국을 가로질러 여행하며 채집한 다양한 민담을 모티프로 현실과 판타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기묘한 행보를 보인 첫 장편작 <정오의 낯선 물체>(2000)로 자신의 이름을 새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 <메모리아>는 아피찻퐁 감독이 처음으로 태국을 떠나 찍은 신작이다. 그러나 <메모리아>를 보다 보면 보이지 않게 그어둔 이 경계-태국이라는 고향, 태국이라는 환경, 태국이라는 배경-는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되묻게 된다. <메모리아>는 언젠가부터 자신에게만 들리는 ‘쿵’하는 소리를 좇아 사운드 엔지니어를 찾아가고, 공사 중인 터널에서 발견된 유골을 연구하는 고고학자와 친구가 되어 가는 여정이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