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 Ramy>로 데뷔를 앞두고 있는 벨라 하디드. 쇼의 제작자이자 스타인 레미 유세프와의 우정 안에는 신뢰, 가족 같은 유대감, 선의의 교감과 같은 투명한 감정들이 공존한다.
열일곱 살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모델이 된 벨라 하디드에게 이런 가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사람들은 아마 제 첫 연기가 매우 관능적이고 섹시할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녀가 말한다. 하지만 스물다섯 살 하디드가 올가을 <레미 Ramy>에서 맡은 역할은 의외다. 다소 혼란스럽고 이상한(?) 괴짜 여자친구 역이니까.
에미상 후보에 오른 이 다크 코미디(훌루에서 볼 수 있다)의 내용은 이렇다. 이집트계 미국인이자 밀레니얼 세대인 레미 유세프 Ramy Youssef는 훌륭한 무슬림이 되려고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그럼에도 꿈을 잃지 않는, 어쩌면 예상 가능한 주인공의 성장기를 다룬다. 쇼는 뻔한 도덕성에 대한 혐오, 혼란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열성 등을 이유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일례로 레미의 가장 일상적인 에피소드 중 하나는 근육 위축증에 걸린 친한 친구의 마스터베이션을 돕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하디드의 역할은? “아마도 우리가 쓴 가장 이상한 대본 중 하나일 겁니다”라고 유세프가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말하기 어렵지만 뭔가 많은 얘기가 있어요.”
두 사람은 지난 1월에 처음 만났다. 유세프가 먼저 게스트 출연에 관심이 있느냐고 이메일로 물었고, 줌 Zoom에서 긴 대화 끝에 하디드가 이를 승낙했다. “이건 너무 완벽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녀가 흥분된 어조로 말한다. “우린 심지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이게 운명이 될 거라는 느낌은 있었죠.”
팔레스타인 혈통인 하디드는 이미 네크워크상에서 유세프와 몇몇 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가 겹쳐 있었다. 유세프는 하디드의 동생인 앤워와 친분이 있었고, 둘 다 캐나다 뮤지션 무스타파와 친구였다. “벨라는 무슬림이 되는 것이 어떤지를 잘 모르는 세상에 있었죠”라고 무스타파가 말한다. “때때로 그 공간에 있는 유일한 이슬람교도나 아랍인이었어요. 그런 그녀가 공동체에 둘러싸여 있는 걸 보는 건 정말 멋진 일입니다.”
하디드는 당시 소속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는 첫날 촬영장에 도착했을 때 제작진이 트레일러에 남긴 선물, “자유 팔레스타인”이라고 적힌 티셔츠에 놀랐다. 소박하지만 환영의 제스처가 그녀를 감동시켰고, 결국 울게까지 만들었다. “제 감정을 감당할 수 없었어요. 아랍인으로 자라면서 동류의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건 처음이었으니까요. 비로소 내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죠.”
하디드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나 역시 자라면서 ‘덜 까탈스러운 아랍인’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은 축소하거나 숨겨야 한다고 느꼈으니 말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최소화하는 건 어떤 식으로든 분명 스스로에겐 상처로 돌아온다.
다행히 하디드와 유세프 둘 다 나름대로 그들만의 방법을 갖고 있었다. 헤리티지를 확장하고 문화적 정체성을 당당하게 주장하되, 아랍인과 무슬림이 낯선 문화에서 무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뻔한 기대감을 이용하진 않는다는 거다. 레미를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무겁고 영적인 문제를 독특하게 풀어가는 능력이다. 포르노 스타와 인종 차별주의자에 대한 모든 에피소드, 그리고 9.11 테러에 관한 스토리도 그렇다. 그래서일까. <Ramy>는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굳이 분석하거나 해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심지어 ‘좋은’ 무슬림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으며, 그저 솔직하게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하디드의 경우 지난 몇 년간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변하는 ‘가장 솔직한 미국인’이었다. 마음을 반쯤 숨기고 사는 것이 미덕인 시대에, 그녀는 플랫폼을 통해 온갖 이슈와 경험을 더 깊이 파고들 방법을 찾고 있었다. 지난겨울 나는 히잡을 둘러쓴 여성에 대한 차별을 부각시킨 하디드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히잡을 벗어 던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직한 노출을 통해 자신이 잘 아는 문화의 한 귀퉁이를 바로 겨냥했다. “만일 우리가 패션에서 히잡과 커버를 쓴 여성들을 점점 더 많이 볼 수 있다면, 유럽과 미국의 패션 하우스에서 가해지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더 잘 알아차릴 수 있을 거예요.”
개인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직하게 반영하길 원하는 하디드와 마찬가지로, TV 속에서 보여지는 유세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진짜 레미다운 모습이고 털털하고 착하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뭔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커플의 이야기에 동행하기 위해 사진 촬영이 있던 날, 유세프를 여기 뉴욕 시티 하디드의 아파트에서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촬영을 위한 모든 것이 세팅되어 있었고, 그가 직접 스타일링을 리드했다. 유세프는 당시 약혼자였고 지금은 아내가 된 여성을 내게 소개시켜줬고, 우린 끊임없는 대화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예정된 항공편을 놓쳐버렸다.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레미는 이른바 ‘퍽보이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하다. 이유는 이렇다. TV 속 레미는 영적 여행을 하고 있지만, 그가 추구하는 내면의 평화는 사실 자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희생시키니까.
두 번째 시즌에서 레미는 결혼식 전날 밤, 약혼녀의 사촌과 바람을 피우며 끝난다. 유세프는 캐릭터에 영혼을 갈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TV 속 레미가 정말이지 완전히, 너무나도 형편없다는 걸 알고 있다. “왜냐면 자신이 가진 가장 최악의 면만을 고르기 때문이에요. 그래야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니까요. ‘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낫군요!’ 사실 모든 건 거꾸로 가야 합니다. 다 뒤집어져야 더 열렬해질 수 있죠.”
하디드 역시 공감한다. “제가 커리어 내내 고민했던 거예요! 사람들은 저를 만나면 이렇게 말해요. ‘당신이 꽤 되바라지고 거만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들이 가정하는 저는 다른 사람이죠. 잡지 커버를 통해 보여지는 다른 사람이에요. 영혼도 없고···. 아니, 그것까진 아닌가? 아무튼 실체가 아닌 거죠. 그건 갑옷이에요.”
하디드의 셀럽 아우라 안에는 더 큰 디아스포라(팔레스타인 이외의 타국에 거주하는 이주 집단)에 속하려 고군분투하는 누군가가 있다. 워싱턴 DC에서 팔레스타인 아버지 하디드와 네덜란드 모델 욜란다 하디드 사이에 태어난 그녀는 갓난아기였을 때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워싱턴에선 팔레스타인 쪽 가족과 함께 있었지만···.” 하디드가 설명한다. “캘리포니아로 옮겨가면서 저는 추출되었어요. 추출.”
샌타바버라에서 자라면서 자신의 뿌리와 떨어져 있다는 것이 하디드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종종 반에서 유일한 아랍 소녀였다. 대체로 교육 과정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10대 때 전형적인 인종 차별적 놀림과 욕설이 있었고, 오랫동안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고 느껴왔다. “다른 어떤 것에서도 제 자신을 볼 수 없었기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려 했어요. 오랜 시간 동안 내 일부를 놓쳤고, 그게 저를 정말 정말 슬프고 외롭게 만들었어요. 끔찍한 일이죠.”
가장 큰 후회 중 하나는 부모가 별거한 후 그녀가 무슬림과 함께 자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라면서 매일 아빠와 함께 있고, 뭔가를 공부하고 연습할 수 있는···, 단지 이슬람 문화권에서 살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걸 받지 못했죠.” 대신 하디드는 가족과 그들이 견뎌낸 것에 대해 생각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팔레스타인에 여전히 살고 있는 노인들과 지금 성장 중이어서 또 다른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레미> 출연진에 합류한 것은 이런 헤리티지의 측면과 다시 연결되는 자연스러운 단계처럼 느껴진다. 하디드는 여전히 무슬림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연구 중이고, 유세프는 이걸 감지했다.
“벨라는 이슬람 사원에 있을 때나 기도할 때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고 말해요. 하지만 그게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특정성 때문에 ‘무슬림’이라 말하기가 꺼려지는 측면이 있어요”라고 유세프가 말한다. “이상적인 무슬림을 완벽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우리 공동체를 방해하고 상자 안에 가둬둘 수도 있죠.”
하디드와 유세프의 우정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조용한 질문들을 탐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라마단 기간에 레미가 찾아왔을 때 함께 기도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건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였어요.”
“레미는 항상 커뮤니티를 갈고 닦는 믿을 수 없는 능력을 갖고 있어요”라고 무스파타가 말한다. “사람들을 포용하는 그만의 방식은 비록 1온스의 믿음일지라도, 그걸 실천하고 붙잡을 가치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죠. 레미는 누구나 따뜻하게 환영받는 무슬림 공간을 꿈꾸고 있어요.”
곧 다가오는 레미 시즌 중 하나는 하이파와 예루살렘에서 촬영했고, 레미의 어머니 역을 맡은 팔레스타인 배우 히암 압바스가 제작했다. 이번 에피소드는 하디드가 쇼에 애착을 갖기 훨씬 전부터 기획한 것이다. 유세프는 2015년 팔레스타인 코미디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무대 공연을 마치고 워크숍을 돌면서 이 지역을 처음 찾았다.
“당시 ‘플린트 물 위기(Flint Water Crisis: 미국의 수돗물 오염 사건)’로 온통 뉴스들이 떠들썩했어요.” 유세프가 회상한다. 워크숍에서 한 어린 소녀가 손을 들어 질문을 던졌는데, 그 질문이 계속 그의 머리에 남아 있었다. “아이는 ‘미시간에 있는 친구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어요. 저는 그때 ‘와, 이건 꽤 비현실적이야’라고 생각했을 뿐이죠.’”
어느 순간 그저 자연스럽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지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유세프뿐만 아니라 하디드도 화제의 중심으로 밀어 넣었다. 예를 들어 작년엔 그녀와 언니 지지 하디드 그리고 두아리파 역시 상반된 관점에서 이들을 공격하는 뉴스들로 전면을 차지했다. 하지만 하디드는 여전히 스스로의 신념에 변함이 없다. “저는 모델이 되기 위해 이 세상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정말 운이 좋고 축복받은 사람이어서 제가 하는 일을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죠. 하지만 정말 몰락은? 그건 일자리를 잃는 걸까요?”
하디드에게는 경력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어느 순간 우린 모여서 하루의 끝이 어땠는지를 얘기해요. 신과의 관계 그리고 그 여정에 대해서도 말하지만, 언제나 사적인 존재론적 문제로 돌아와요. 그걸 고민해야만 힘의 원천이 생기니까요.”
“그게 바로 요령이에요”라고 유세프가 말한다. “대개 많은 걸 혼자서 헤쳐나가려 애써요.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어요. 보이진 않아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여러분은 혼자가 아닌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