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ing

내가 주말에 친구를 안 만나는 이유 7

2022.10.07정은아

나는 여지껏 이 친구와 아무런 문제없이 잘 지냈다. 심지어 저번 주에 만나서 재밌게 놀았을 정도로. 근데 왜 유독 이번 주말은 만나고 싶지 않을까? 하필 오늘만큼은 보고싶지 않아져버린 사람들이 그 이유를 툭 까놓고 말했다.

돈이 없다
만나면 돈 써야 한다. 밖에만 나가면 돈 쓸 구석이 너무나 많다. 밥 먹으면 돈 써야 하지, 커피 마시면 또 돈 써야 하지. 우리가 밥만 먹고 커피만 마시나? 슬슬 날이 어둑해지면 술도 마셔야 한다. 술값은 또 얼마야. 그렇게 놀다가 다음 날 숙취에 찌든 채로 일어나 잔고를 보면 한숨밖에 안 나온다. 주말에 흥청망청 쓴 만큼 내일부터 죽어라 일해야 한다. 저번 주에 그렇게 논 죄로 이번 주에 죽도록 일했는데 주말에 또 만나자고? 친구야 나는 더 이상 죽고싶지 않다. 박OO (26, 타투이스트)

텐션이 없다
나는 MBTI 성향이 극 I(내향형)이다. 회사 사람들도 이런 내 성향을 곧이 곧대로 알아주면 좋겠지만 그게 됐다면 사회생활이라는 말이 왜 있겠나. 밥 벌어 먹고 살기 위해서 누구보다 E(외향형)인 척 열심히 사회생활을 한 탓에 주말만 되면 텐션이 다 떨어진다. 그래도 집에만 있지 말고 한 잔 하자며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그저 우리의 평일을 위로하며 잔잔하게 술잔을 부딪힐 생각으로 나왔는데 내 친구들은 왜 이렇게 텐션이 높은가. 친구들의 높은 텐션에 억지로 맞추다보니 이게 친구들과의 술자린지 또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건지 분간이 안될 정도다. 여태 빨린 기가 주말에도 죽죽 빨리는 기분. 얘들아 집에 가자. 너네가 따라주는 소주를 마시면 마실 수록 나는 너네한테서 자꾸 우리 부장님의 모습이 보여. 서OO (29, 디자이너)

이야기거리가 없다
평소 친구들에게 재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친구들은 내가 즉석에서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막 터져나오는 이야기 보따린줄 알겠지만 절대 아니다. 만나는 약속이 잡히는 그 순간부터 나는 상대에 맞춰서 할 말들을 미리 준비한다. 이 친구의 유머 코드, 이 친구가 좋아할 만한 주제, 그거에 맞는 내 에피소드까지 싹 다 머릿 속에 정리해두고 자리에 가서 빵빵 터트린다. 그래서일까 저번 주에 만났던 친구가 그 때 너무 재밌었다며 이번 주에 또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또? 나도 너처럼 평일에는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는 평범한 일상 반복이야. 일 주일 새에 재미난 일들이 마구 생겨나진 않는다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도저히 이야기거리가 없어서 오늘은 약속이 있다고 둘러대고 거절했다. 얘는 진짜 나를 개그맨으로 아나봐. 야 나 음악하는 사람이야. 이OO (27, 프로듀서)

믿음이 없다
나는 사람을 잘 못 믿는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서 실컷 이야기를 하고 혼자 집에 돌아가면 그 때부터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괜히 신나서 쓸데없이 이것까지 말했나?’ 혹시나 나한테 가식으로 리액션을 해준 건 아닐지, 내가 털어놨던 고민들을 딴 데가서 함부로 이야기하고 다니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이런 생각으로 친구들을 계속 만나다가는 괜히 사이가 나빠질 게 뻔해서 차라리 집에서 혼자 있는 게 편하다. 나는 내가 나를 못 믿어서 친구들도 못 믿겠다. 최OO (24, 대학생)

만날 이유가 없다
사람들은 이미 평일에도 만난다.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직업 특성 상 언제나 사람들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나한테는 사람을 만난다는 자체가 일로 느껴져서 주말에는 무조건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쉰다는 느낌이 든다. 결국 친구도 사람이다. 그래서 굳이 만날 이유가 없다. 5일 내내 사람들이랑 붙어있었는데 2일은 나 좀 혼자 내버려 둬. 강OO (31, 카페 운영)

궁금증이 없다
안 궁금하다.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안 궁금하다. 싫은 건 절대 아니다. 너는 좋지만 네가 하는 얘기들에 전혀 관심이 없다. 널 미워하는 것도 아니고 네 말들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냥 네 얘기를 듣고 싶지 않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네 얘기가 안 궁금할 뿐이다. 박OO (28, 패션 브랜드 운영)

나갈 의지가 없다
귀찮다. 정OO (25, 프리랜서)

결론 돈도 없고, 텐션도 없고, 할 말도 없고, 못 믿겠고, 안 궁금하고, 굳이 만날 이유도, 나갈 의지도 없어서 안 만난다.

에디터
글 / 정은아 (프리랜스 에디터)
이미지
게티이미지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