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러쉬 "제가 엄청 절실 해졌다는 거죠" | 지큐 코리아 (GQ Korea)

크러쉬 "제가 엄청 절실 해졌다는 거죠"

2022-10-22T12:04:37+00:00 |interview|

크러쉬라는 이름의 유일한 리듬.

수트, 슈프림. 니트 베스트, 몰리 고다드. 선글라스, 젠틀몬스터. 슈즈, 아디다스.

GQ 이번 앨범 준비하면서 솔직히 노래보다 춤 연습을 좀 더 열심히 했죠?
CR 어···, 네. 흐흐. 안무가 나오고 나서 호되게 2주 정도 연습한 것 같아요.
GQ 앨범 나오기 전부터 팬카페에서 설문조사를 열심히 했다고 들었어요. 크러쉬의 어떤 모습을 보고 싶냐고요. 팬들 의견이 얼마나 반영됐나요.
CR 85퍼센트?
GQ 크러쉬는 본인이 좋아하는 걸 잘 알고, 그걸 소중하게 생각하잖아요.
CR 맞아요.
GQ 동시에 사람들이 본인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항상 궁금해하죠. 외부의 피드백을 ‘내 것’에 얼마나 반영해요?
CR 정말 많이요. 하지만 수치화하고 정확하게 수용하는 개념은 아니에요. 근데 어쨌든 팬분들이 좋아하는 것과 제가 좋아하는 것에는 일치하는 부분이 꽤 많아요.그걸 가려내고,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캐치하는 거죠.

톱, 데님, 모두 로에베. 넥 워머, 비니, 모두 JW 앤더슨. 슈즈, 스투시 X 컨버스. 벨트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훈련소에서 쓴 편지를 봤어요. 2020년 11월 15일에 쓴 편지, 기억나세요?
CR 어···, 아니요. 언제죠. 하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이긴 해요.
GQ “누워서 공연하는 상상을 많이 한다”라고 적힌 초록색 편지.
CR 그렇게 말하니까 기억나요! 그때는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던 때였어요. 할 게 없으니까.
GQ 훈련소에서는 누구나 다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CR 그 때 뼈저리게 느꼈죠. 조금이라도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걸 많이 보여주고 올 걸. 그렇게 긴 공백이 생길 줄 몰랐거든요. 후회가 들고, 무대가 그리웠어요.

톱, 글로브, 모두 발렌티노.

GQ 크러쉬가 상상하고 그리워하던 무대는 어떤 거였어요?
CR 작고 크고, 그런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냥 제 노래로 공연하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GQ 그렇게 무대를 기다렸는데 제대 직후 첫 공연을 못 해서 많이 아쉬웠죠?
CR 주최 측에도 죄송한 마음이었고, 준비를 많이 한 공연이라 너무 힘들었어요. 아파서 힘든 건 문제가 아니었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당일에 그렇게 되니까 억울한 심정이기도 했죠.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고요.
GQ 그래도 이렇게 멋지게 돌아온 걸 축하해요. 그래서 화보도 펑키하고, 흥겨운 콘셉트로 찍고 싶었어요. ‘러쉬 아워 Rush Hour’ 티저 나왔을 때 솔직히 작정했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CR 제가 좋아하는, 한 번 했을 법한 장르의 곡이죠. 왜 안 했을까 싶은.

재킷, 셔츠, 팬츠, 슈즈, 모두 겐조. 선글라스와 캡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크러쉬는 좋아하고 잘 하는게 늘 여러 가지라 그런가. 그때그때 영향주는 사람과 공기도 중요한가 싶고요. 그래서 크러쉬와 밴드 원더러스트를 하고 있는 홍또치 님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어요.
CR 또치누나 이야기를 하자면 시간이 모자라요. 누나를 못 만났으면 지금까지 음악을 하고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에요. 곡 작업도 같이 하고, 고민을 나눌 때도 많아요. 사람 대 사람으로서도 제가 흐트러지지 않게 버팀목이 돼주는 사람이고요.
GQ ‘러쉬 아워’ 작업에도 도움을 줬나요?
CR 네. 누나가 스케치를 듣더니 “야, 이거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전 “어 진짜? 이거야?” 했죠. 크하하.
GQ 신났죠? 좋아하는 게 다채로운 사람일수록 절반짜리 물음표를 던질 때, 느낌표로 호응해주는 거, 무척 중요하잖아요.
CR 누나가 편곡을 하는데 사운드가 점점 완성되는 거예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디에 있어도 누나랑 저는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 같아요. 음악 단짝.

코트, 재킷, 팬츠, 슈즈, 모두 보테가 베네타.

GQ 싸울 때도 있어요?
CR 싸우지는 않아요. 제가 혼날 때는 많죠. 으하하. 장난이고요. 아, 그런 적 있어요. 4년 전에 제가 작업 겸 여행으로 미국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 때 누나는 속으로 ‘쟤 왜 놀지?’ 생각했대요. 그럴 만도 한 게, 서로 요즘도 맨날 하는 이야기가 “우리 열심히 하자, 좋은 음악 만들자”거든요.
GQ 근데 몇 달 동안 해외여행을 가니까 나사가 풀렸다고 생각했겠네요.
CR 네. 한국에 왔더니 사이가 좀 어색해진 거예요. 당시에는 몰랐어요. 나중에 이야기 해줬는데, 누나는 그 시간 동안 저에게 신뢰를 살짝 잃은 상태였대요. 푸하하. 전 돌아오자마자 작업한 노래를 들려줬거든요. ‘잊을만하면’이랑 ‘넌 None’이었는데, ‘잊을만하면’ 인트로 듣자마자 누나가 엄청 놀랬대요.
GQ 왜요?
CR 제가 더 이상 음악에 욕심이 없다고 생각하고 연을 끊으려고 했는데, 반성했대요. 아직도 누나가 가끔 그 이야기를 꺼내요.

베레모, 장갑, 수트, 셔츠, 슈즈, 모두 구찌.

GQ 너무 웃기고 귀엽다. 2년 동안 ‘신효섭’으로 살면서 분명해진 건 뭐예요?
CR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리고 내 의지와 관계없이 음악을 못 하게 되는 순간이 오겠다는 걸 느꼈어요. 2년이 20년처럼 느껴졌거든요. 처음에는 2년만 버티자는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2년이 참 길더라고요. 사람 일 모르는 거 잖아요. 갑자기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고요. 그래서 내가 음악을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보여주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순간이 올 수 있다.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그러니까 제 말은, 제가 엄청 절실해졌다는 거죠.
GQ 절실하면 마음이 급해지잖아요. 컴백에 힘을 더하고 빼는 건 어떻게 했어요?
CR 안 했어요.
GQ 그럼 올인? “다 보여줘야지” 하고 나온 건가요.
CR 네, 올인. 다 걸었어요. 공백이 길게 느껴져서 덜고 싶은 마음도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부분도 있어요. 그래도 후련하고 통쾌하다! 결과를 떠나서 ‘아 이거지’라는 느낌밖에 없어요.

재킷, 셔츠, 모두 겐조.

GQ 멋지다.(박수) 이르긴 하지만 다음 앨범이 궁금해져요. 어떤 이야기가 담길지.
CR 진짜 웃긴 게 예전에는 계산적으로 세계관이나 목표를 세웠어요. 물론 지금도 머리엔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흘러가듯, 순리대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지금 세상이 그런 것 같아요. 계획해도 그대로 실현되지 않더라고요. 그때 그때 느낀 것들로 만든 순수한 음악이 멋있다고 생각해요. 2집이 그랬어요. 결과적으로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전 지금 들어도 좋아하거든요. 당시 느낀 것을 담았기 때문에. 그래서 콘셉트를 명확히 잡고 작업하지 않으려고 해요.
GQ 그렇다면 3집은 열어둔 상태?
CR 네. 작업해둔 노래가 많아서 ‘러쉬 아워’ 활동 끝나고 집중해서 담아내고 싶어요. 지금은 이 활동에 집중하고 싶고요. 요즘은 하루하루 열심히 살자는 마인드로 살아요.
GQ 쑥스럽지만, 전 얼마 전에 공연을 보다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벅찬 행복을 느꼈어요. 혹시 크러쉬도 최근에 이런 순간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CR 아, 있다! 어제요. 제대하고 나서 오랜만에 공연을 하다 보니까 사실 매번 긴장 됐어요. 근데 어제 대구 공연을 했는데 갑자기 막힌 혈이 뚫리는 것처럼 잘 되는 거예요. 그래서 50분 공연이었는데 70분 했어요.

재킷, 셔츠, 모두 겐조.

GQ 너무 즐거워서?
CR 네. 하나도 안 힘들고, 그냥 막 즐겼어요. 진짜 오랜만에 이런 기분을 느꼈어요.
GQ 가수들 너무 부럽다. 매번 그러는 건 아니죠? 하하. 나이가 들어서도 크러쉬의 음악에서 바뀌지 않을 알맹이는 뭘까요.
CR 인생? 전 정말 음악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추상적으로 들릴 것 같아서 예를들자면, 제가 요즘 스스로 음악말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강아지 산책할 때밖에 없어요. 그렇게 걷다가 문득 생각을 하면···, 아, 모르겠어요.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이 음악에 담긴다고 생각해요. 제가 인위적으로 ‘크러쉬’가 대중에게 어떻게 보였으면 좋겠고, 이렇게까지 생각하진 못 해서요. 그냥 자연스러운 제 모습이 음악에 투영되는 것 아닐까요.
GQ 쭉, 앞으로도 크러쉬의 삶 자체가 음악이 되겠네요. 그럼 질문을 바꿔볼게요. 어떤 모습으로 늙고 싶어요?
CR 나이가 들지 않았으면 좋겠고, 음악이 구려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GQ 음악이 나이 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CR 글쎄요. 계속 좋은 음악을 많이 찾아야겠죠. 죽을 때까지 찾아도 못 찾는 게 음악이니까. 배우고, 찾고, 노력하고. 해이해지거나 느슨해지면 안 되고. 예민해지지 않으면 그땐 정말 늙어가는 거겠죠.

베레모, 어썸니즈. 진주 초커, 카디건, 모두 비비안 웨스트우드. 팬츠, 피망. 삭스, JW 앤더슨. 슈즈, 스테판 쿡. 주얼리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결국 애티튜드의 문제네요. 뜬금없지만 사람들이 크러쉬를 왜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CR 잘 모르겠는데요. 흐흐.
GQ 정말요? 저는 왠지 잘 알고 있을 것 같아서 물어봤는데. 이참에 유추해봅시다.
CR 허세없는 거? 아닌가? 잘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저보다는 제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저란 사람을 좋아해줄 수는 있겠죠. 얼굴 보고 좋아하진 않을 거니까요?
GQ 그건 또 모를 일이죠? 제가 생각하는 크러쉬의 매력 중 한 가지는 뭘 하든 진짜 진심이 느껴진다는 거예요. 음악이든, 멍 때리기든요.
CR 아멘. 진심이 통했군요.
GQ 진짠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