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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부르는 성지 9

2023.02.14전희란

종교를 넘어서, 아름다운 교회와 성당을 모았다.

La chiesa di Buon Ladrone

©Simone Bossi

어느 드라마 작가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건져올린다. “죽음의 순간에는 누구에게나 행복의 순간이 올 거라고, 분명 그럴 거라고, 저는 믿어요.” 건축가의 종교 건축물에서 기적처럼 마법의 순간을 목도하는 건, 그들이 공간으로서 생의 죽음, 죽음으로서 완성되는 삶을 담기 때문이 아닐까. 볼로냐 중심부에 있는 순백의 예배당은 세 명의 젊은 건축가와 지역의 참여를 통해 빚어졌다. ‘참회하는 도둑의 성당’이라는 이름답게 지역의 교도소 수감자가 건설 작업에 참여한 사연도 흥미롭지만, 공간 속에 생채기를 내는 듯한 빛이 ‘휘장 속의 상처’를 상징한다는 사실은 더 재미있다. 공간에는 이우환의 작품 같은 거대한 돌이 별안간 놓여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너희 중 죄가 없는 자, 돌을 던져라” 라는 메시지라도 전하려는 걸까? 사랑과 영혼은 언제나 그곳에.

Kapelle Sogn Benedetg

©Surselva Tourismu

건축가들의 건축가, 페터 춤토르가 스위스 그라우뷘덴주에 지은 예배당은 마치 그 자신처럼 담백하며 소박하다. 1984년 눈사태로 완전히 무너진 기존 예배당은 5년 만에 그로부터 100미터 떨어진 곳에 환생했다. 아찔한 언덕 위에서 고요하고 차분하게. 카펠 소근 베네데트그를 찾아가는 길은 출발부터 성스러운 여정이다. 숨빅 마을까지는 기차로, 그다음에는 하이킹 트레일로 닿을 수 있는데, 그 긴 여정은 나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평정심, 자명함, 내구성, 존재감, 진정성, 따뜻함, 관능미 같은 속성으로 건물과 교류한다”는 평소 페터 춤토르의 철학 모두 이곳에 담겨 있다.

515 Autobahnkirche

©Herzog & de Meuron

안데르와 쿠어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A13. 마을과 고속도로를 잇는 다리 근처에 기묘한 고속도로 교회가 하나 툭 서 있다. 테이트 모던을 설계한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뫼롱의 작품이다. 어떤 종교적 상징이나 사인도 가시화하지 않고 “오롯이 장소성과 자연, 인간 자신의 방식을 예리하게 인식하도록 하고 싶었다”는 건축가의 바람은 도로 위의 신기루처럼 아름답게 구현됐다. ‘Earth Room’ 의 달팽이 모양 계단 근처 네 개의 벽은 서로에게 기댄 구조로, 그중 하나만 똑바로 우뚝 서 있는데 그 구조가 재미있어서 자꾸 웃음이 난다. 교회에서는 엄숙해야 하는 줄만 알았는데, 그 위트마저 건축가의 의도일까?

Christchurch Transitional Cardboard Cathedral

©Stephen Soodenough

어떤 교회는 지역의 상징이 되어 종교의 안팎을 뒤섞는다. 뉴질랜드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가 바로 그렇다. 예술의 영감으로 들끓던 크라이스트처치가 대규모 지진이란 비극을 맞이한 후, 재난 건축가란 닉네임을 지닌 건축가 반 시게루와 연을 맺었다. 그가 즐겨 쓰는 종이 카드 보드지는 삼각형 형태의 독특한 건축물로 완성되었다. 간결한 웅장함은 빛의 깊이를 더하고 색의 스펙트럼을 촘촘히 한다. “교회에는 영 관심 없는걸” 말하는 여행자도 이곳에서는 인증샷을 남긴다.

La Tourette

©Jonas Klunemann

공간은 소리를 지닌다. 하물며 소리를 완전히 거둬낸 공간에서도 기척이 느껴진다. 설계도에서는 볼 수 없는 침묵의 힘. 르 코르뷔지에의 마지막 작품, 라 투레트 수도원은 아름다운 침묵의 소리를 머금고 있다. 빛이 내는 소리, 아름다운 절제, 무언의 언어. 마치 호퍼의 그림을 보듯이 차분히, 고요하게, 라 투레트에서는 無가 그 자체로 有가 된다. 플라톤은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생각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지만, 라 투레트에 당도하면 한 번쯤 되묻고 싶어진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어쩌면 보는 사람의 생각마저 뒤흔들 수 있지 않느냐고.

La Chapelle de Ronchamp

©Rene CLAUDEL / AONDH / ADAGP

“빛만큼 영원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없다.” 폴란드 작가 안제이 스타시우크의 말이었던가. 르 코르뷔지에가 빚은 영원과 극도의 빛, 프랑스 롱샹 성당에서 깊은 감동을 받은 건 안도 타다오만이 아닐 것이다. 낮게 기우는 그림자처럼 공간 속에 천천히 스미듯 걸어 들어가면,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목도한다. 진실의 공간과 조우하는 마법 같은 순간. “모호한 시인만이 정확한 시인일 수 있다.”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의 말을 떠올리며, 시를 읽듯 이곳을 배회한다.

Capilla San Bernardo

©Nicolás Campodonico

“부재한 것이 많을수록 그 부재를 견디기 위해 우리가 동원한 것은 더욱 아름답다.” 독일의 소설가 마르틴 발저는 이렇게 말했다. 아르헨티나의 코르도바 지역, 끝없는 벌판에 두더지처럼 고개를 비쭉 내민 교회는 젊은 건축가 니콜라스 캄포도니코의 작품이다. 일몰을 향해 활짝 열린 채플은 저녁의 빛을 몸 속으로 깊숙이 들인다. 통나무가 만드는 그림자가 예배당의 구부러진 내부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풍경에서 새삼 그런 생각을 한다. ‘신은 어디에나 있다.’

Riola Church AndParish Centre

©c_lab051CarloalbertoCanobbi

손바닥만 한 작은 컵부터 거대한 공간까지 창조해내는,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어쩌면 철학자. 알바 알토의 인간을 향한 따뜻한 관심은 인간과 신을 잇는 예배당에서도 온기를 뿜는다.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는 그의 몇 안되는 교회 건축은 이탈리아에서 볼 수 있다니. 볼로냐 지역에서 1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리올라 교회는 빛이 없을 때조차 빛을 발한다. 빛이 없는 공간에서는 모든 존재가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처럼, 하찮은 존재도 작은 빛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San Giovanni Battista


빛과 그림자, 기하학을 마술처럼 지휘하는 건축가 마리오 보타. 그는 자신의 고향에 작품을 다수 남겼는데, 그중 모뇨산 위 깃발처럼 꼿꼿한 지오반니 바티스타를 빼놓을 수 없다. 팬톤 컬러의 회색 팔레트처럼 흑부터 백까지 다채로운 색채의 줄무늬가 그려진 타원형 형태의 예배당 내부는  같은 색깔의 바둑판 모양이 새겨져 있다.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공간 속을 시시각각 누비는 빛의 줄기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역설적으로 침묵의 메타포를 떠올린다.

피처 에디터
전희란
이미지
뉴질랜드 관광청, 스위스 정부 관광청(www.MySwitzerland.co.kr), 이탈리아 관광청, 프랑스 관광청(france.fr/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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