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도 감춰지지 않는 디테일.
DS DS 4
긴 똬리를 풀며 주차 타워를 내려오다 대각선 아래로 시선이 박힌다. 높지 않은 전고로 보아 SUV는 아닌 것 같은데 뒷모습은 날렵하게 깎인 것이 분명 해치백의 모습이다. 프랑스 감각으로 다듬은 DS 4다. DS 4는 두 가지 형태를 더한 디자인을 이유로 종종 조금 전과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모델. 높지 않은 쿠페형 SUV와 소형 해치백의 조화로 전에 없던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그렇게 창의적으로 완성된 긴 보닛과 상대적으로 낮은 루프 라인은 세련된 실루엣으로써의 미학 뿐만 아니라 매끈하게 타고 넘는 바람길까지, 공기역학적으로 계산해 가다듬었다. 디자인과 기능 모두를 살핀 균형적인 지점이다. DS 4가 회전할 때마다 햇빛을 받는 헤드라이트가 은은하게 빛난다. 총 98개. 헤드라이트에 총총히 박힌 LED 램프는 DS사의 시그니처다. DS사의 모델 다수를 그려낸 디자이너가 프랑스 파리의 불빛을 데려와 심어두었다는데, 한낮의 서울에서도 그 빛은 꺼지지 않고 반짝인다.
BMW IX
가려도 감춰지지 않는 게 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듯한 묵직함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맹렬함이, 홀리듯 시선을 당기는 존재감이 고개를 돌려 보게 만들었다. iX는 BMW가 선보인 비전이다. 그들의 시도에는 분명한 목적이 존재했고, 정교한 과정을 통과하며 발전했으며, 그렇게 완성된 결과는 소낙비 같은 갈채를 받았다. 겨우 디자인만 공개됐을 뿐인데도. 차를 가운데 두고 숫자를 줄줄 외기 좋아하는 전문가들도 그땐 한참을 iX가 가진 디자인적 미학만을 논했다. 생생했던 첫인상. 그때나 지금이나 iX의 첫인상은 길게 내려온 키드니 그릴과 옆으로 뻗은 헤드라이트에서 출발한다. 날렵한 아이라이너 같은 헤드라이트의 윤곽선을 따라가다 보면 플러시 도어 핸들과 프레임리스 도어, 그리고 리어 라인으로 이어지는 유려한 실루엣을 차례로 감상할 수 있는데, 거대하지만 둔하지 않고 되레 맵시 있게 연결되는 흐름이 으뜸이다. 저 월등한 피지컬 안에는 분명 그만큼의 성능이 들었을 텐데, 아쉽지만 빼어난 디자인 앞에서 성능은 늘 그다음이다.
PEUGEOT E-2008
짙은 그림자 안에서 e-2008의 뒷모습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조형물과 같은 실루엣, 스포티한 프레임, 생동감 있는 컬러감, 이루는 요소 모두가 고개를 빼고 내려다보게 만든다. e-2008의차체는 전형적인 머슬형 디자인. 견고하게 각이 진 라인, 불륨감 있게 부풀린 유선형의 프런트, 껑충 들어 올린 듯한 높은 지상고는 SUV의 힘과 형태를 따른다. 하지만 그런 담대한 모습과는 정반대로 붉은색 램프가 채리 케이크처럼 이어진 리어 라인은 그래서 흥미롭다. 선과 색이 고운 테이블 웨어를 닮은 것 같기도, 금방이라도 트렁크를 열어 올리며 변신하는 오토봇의 얼굴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형태의 왜곡은 엉뚱한 상상을 살금살금 피워낸다. 빨갛고, 파랗고, 납작한 듯 울퉁불퉁한 생김. 길에서 마주쳤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모습이다.
LEXUS ES 300 H
‘엘 셰이프 L-Shape’로 불리는 ES 300 H의 도형 같은 와이드한 그릴은 곧 렉서스의 존재감이자 캐릭터다. 독특하게 조각된 헤드라이트, 입체적으로 디자인된 보닛, 슬림하게 내려앉는 루프 라인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유로 ES 300 H의 디자인은 면보다는 선으로, 전체보단 조각조각의 덧셈으로 감상하는 맛이 있다. 이렇듯 ES 시리즈의 디자인을 따로따로 나누거나, 서로 다른 두 디자인을 더하며 봐야 하는 이유는 ‘렉서스’라는 교집합이 있기 때문이다. 한데 섞이며 드러나는 조화. 떨어져 홀로 빛나는 개성. 어느 쪽도 나쁘지 않다. 그러니까 엘 셰이프 그릴이 더 담대해 보이는 건, 움푹 들어간 그릴 라인을 받치는 날렵한 헤드라이트가 있기 때문이고, ‘엘 L’ 형태의 디자인이 균형 있게 완성된 건, 리어 램프에까지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새겨 넣은 세심한 설계 덕분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보이는 만큼 더 보고 싶은 경우도 있다. 그 대상이 여기 ES 300 H처럼 근사한 피사체라면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