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이름난 GC 앞 이색적인 장면 4

2023.04.13신기호

1세단도, SUV도 아닌 네가 왜 거기서 나와?

MINI JCW CONVERTIBLE
1892년에 12홀로 처음 개장한 아득한 역사를 보나, 3세기를 지나오며 US 오픈을 무려 여섯 차례나 개최한 팔팔한 이력으로 보나, 시네콕 힐스는 세계적인 명문 클럽이다. 처음 12홀로 개장한 이후 플레이어의 증가로 나중에야 여섯 홀을 추가했는데, 설계의 공백이 디자이너의 고민을 도왔는지 덕분에 “최고의 스코틀랜드 스타일”, “가장 악명 높은 18홀”, “공략법이 없는 그린”과 같은 정체성 또렷한 평가를 줄줄이 받아왔다. 실제로도 시네콕 힐스는 까다로운 설계와 환경적인 변수로 선수들의 기세를 종종 꺾고, 주저앉혔다. 그중에서도 골퍼들이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쏟아낸 코스는 총 길이 4백45야드의 14번 홀. 구불구불한 페어웨이, 길고 좁은 그린, 악어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벙커가 산재된 지도만 보더라도 머리가 지끈하다. 미니 JCW가 선수라면 이 지뢰밭을 어떻게 공략할까. 일렁이는 페어웨이 위를 기어코 달려내는 모습을 상상하다 글쎄, 그린 위로 튀어 오르는 골프공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TOYOTA GR86
고립된 환경이 골프 외에는 무엇도 할 수 없게 만들어 “골프에 빠지기 좋은 매혹적인 코스”라는 찬사를 유도했나, 1616년, 골프의 태동 훨씬 전부터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이 공놀이로 골프를 즐겨오던 역사적인 장소여서 너도 나도 로열 도노크의 왕관을 탐냈나. 어찌됐든 로열 도노크 골프 클럽은 들려오는 명성만큼이나 신비한 비경으로 유명하다. 해안가를 따라 오르내리는 코스는 하일랜드의 파도를 닮았고, 알 수 없는 수수께기를 던져대는 후반 홀들은 시도 때도 없이 방향을 바꾸는 도노크의 바람을 닮았다. 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홀은 폭시 Foxy로 불리는 14번 홀. 총 길이 4백40야드의 홀로 점수보단 일단 무사히 빠져나오는 게 먼저일 정도로 가파른 모래 언덕과 급격하게 꺾이는 그린, 곳곳에 뚫어놓은 벙커가 언제고 선수들의 볼을 노리고 있다. 도요타의 GR86은 그런 14번 홀을 주파할 비장의 카드. 혹시 모르지. 그라면 이 좁고 긴 코스를 매버릭처럼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을지도!

CADILLAC ESCALADE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은 매년 4월 둘째 주가 되면 전 세계 골퍼들의 관심을 절로 받는다. 1934년부터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이 주관하는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이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클럽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건 단순히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코스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앨리스터 매켄지가 설계한 몫도 분명 있으니까(아니 더 클 수도). 매켄지는 마스터스 대회를 위해 거듭 코스를 수정하고 보완했는데, 그 과정에서 생겨난 변화들이 자연스럽게 난코스와 전에 없는 신선한 설계로 다듬어지면서 이를 극복한 선수들에겐 커다란 기쁨을, 실패한 선수들에겐 자비 없는 지옥도를 펼쳐냈다. 그러니까 오차 없는 계산, 완벽한 선택, 섬세한 샷, 단단한 멘털이 모두 요구되는 곳. 결국 그러려면 블루홀 같은 벙커도 거뜬히 빠져나올 수 있는 힘과 가혹한 고저차에도 흔들리지 않는 묵직함이 필요한데, 결국 떠오르는 건 에스컬레이드뿐이다.

JEEP WRANGLER 4XE
코스 전체가 비경이어서 “신과 사람이 함께 만든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는 사이프러스 포인트 클럽. 태평양 위에 배처럼 떠있는 상상만으로도 이곳이 얼마나 장엄한 환경을 갖추고 있을지 쉽게 그려진다. 특히 사이프러스 포인트는 매켄지의 역작으로도 유명하다. 거기에는 환경에 기댄 설계, 모래 언덕과 흐르듯 연결되는 벙커, 위트와 미스 그 사이 어디쯤에 있을 법한 짓궂은 편백나무(사이프러스)의 배치가 18홀 내내 이어지기 때문이다. 매켄지는 찬사 앞에서 자연적인 이점을 누렸을 뿐이라고 겸손해했지만, 라운딩을 경험한 이들은 하나같이 “위대하다”는 형언을 꺼내 들었다. 기암절벽과 남색의 파도, 그 파도를 타고 가속해 달려오는 바닷바람, 넓다 못해 까마득한 해저드. 이 모두를 경험하고도 엄지를 치켜드는 묘한 상황도 사이프러스 포인트만이 받는 찬사라면 찬사. 어찌됐든 골퍼들의 입소문을 듣다 보면, 대자연의 18홀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 모델은 여기, 파란색 랭글러밖에 없는 듯하다.

피처 에디터
신기호
포토그래퍼
민성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