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마저 빼놓을 수 없는 귀한 곳.
Sentosa Golf Club, Singapore
8개 대회 총상금 2억 2천5백만 달러(약 2천9백76억원)에서 14개 대회 4억 5천만 달러(약 5천3백83억원)로, 상금도 대회 횟수도 두 배 가까이 높이며 여전히 태풍의 눈임을 자처하는 LIV 골프 리그가 싱가포르에 상륙한다. 그 도착지는 싱가포르 활력의 중심, 센토사섬의 센토사 골프 클럽. 두 코스 중 이번 대회가 열리는 세라퐁 코스는, 시그니처인 5번 홀에서 훤히 보이는 항구의 활기찬 기운을 받들 듯 14년 만에 리노베이션을 단행해 2020년에 재개장했다. 새로 쏟아부은 모래 6천 톤이 두 발의 질감을 끌어 올리고, 게으른 전략 따위는 톱니 모양 벙커로 고꾸라지기 쉬워졌다. 부두에 솟아오른 크레인 사이로 부는 바람을 뚫고 LIV 골프 첫 시즌 개인전 우승자인 더스틴 존슨이 올해도 연승할 수 있을까?
Royal Liverpool, Wirral.
디 오픈의 개최 규칙 2가지. 1552년부터 시작되어 골프의 발상지로 꼽히는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5년마다 반드시 개최할 것. 이 외에는 장소를 옮겨가며 열되 바닷가 코스, 즉 링크에서 개최할 것. 그리하여 디 오픈 150주년이던 2022년에는 올드 코스에서 열렸고, 올해는 이곳 로열 리버풀 골프 클럽에서 열린다. 올드 코스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링크 코스인 이곳은 1869년에 리버풀 헌트 클럽이란 이름으로 경마장과 동시에 운영됐다. 그래서인지 어디로 말이 내달려도 자유로울 듯 평탄하게 대지가 펼쳐져 있는데, 그 평온에 방념했다간 별안간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혼쭐날 거다. 2020년에 마틴 에버트가 새로이 디자인한 코스도 변수다. 특히 리버풀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강줄기가 내려다보이게 그린이 높아진 17번 홀을 순조로이 공략하는 자가 우승에 가까워질 것이다.
Royal Greens Golf & Country Club, Saudi Arabia
사우디아라비아 제2의 도시 제다 Jeddah에 2017년에 문을 연 비교적 신생 클럽이지만 유명세는 어느 곳보다 가파르게 떠올랐다. 2022 LIV 골프 시리즈 정규 시즌 피날레 무대이자, PGA에서 부진에 고전하던 브룩스 켑카가 LIV로 이적한 뒤 오랜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린 반전의 그린 카펫이다. 홍해와 함께 흐르는 길고도 도전적인 트랙, 그중에서도 파5 안에 제패해야 승리에 다가설 수 있는 마지막 18번 홀을 주목할 것. 물결치는 필드 끝 라인이 여차하면 바다로 공을 무심하게 굴려버린다. 올해는 이곳에서 팀 챔피언십 결승전이 열리며 LIV 골프의 2023 항해가 마무리된다. 더스틴 존슨, 브라이언 디섐보, 세르히오 가르시아, 필 미컬슨, 브룩스 켑카 등 쟁쟁한 골퍼들이 각 팀의 리더가 되어 이끄는 홍해 위 대항전. 키는 누가 쥘 것인가.
Rich Harvest Farms, Chicago
골프 백당 팁 1.25달러를 받던 캐디. 역사적 골프의 전당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에 반했지만 회원제인 그곳에 가입할 수 없었던 남자. 주식용 컴퓨터를 개발해 억만장자에 오른 부자. 농장 8개를 사서 친구들과 함께 즐길 사적 골프장을 직접 설계하고 마을의 굴착 전문 업자와 함께 한 홀 한 홀 만든 골프 애호가. 그리고 전문 설계가가 만든 코스가 아닌데도 메이저 대회가 열리는 리치 하베스트 팜. 모두 이곳의 오너 제리 리치에 대한 스토리다. 자신만의 오거스타를 만들기 위한 그의 애정이 자양분이 되어 습지와 숲, 일리노이 대초원을 품은 페어웨이가 탄생했다. 20여 년 전, 언젠가 토너먼트 개최를 꿈꾸며 리치가 곳곳에 심었다는 블루그래스, 주차장에서도 살아남는 강인한 그 풀이 형성한 러프가 이번 경기에 어떤 희로애락을 더할까?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가장 사랑스러운 골프장.
Oak Hill Country Club, New York
첫 홀, 첫 샷부터 눈을 뗄 수 없다. 골퍼들의 골퍼 벤 호건은 이곳 오크 힐 컨트리 클럽의 이스트 코스, 올해 PGA 챔피언십이 열릴 이 코스의 첫 홀을 두고 챔피언십 골프에서 가장 힘든 오프닝 테스트라고 불렀다. 왼쪽으로 살짝 휘어진 도그레그 스타일의 페어웨이에는 개울이 가로지르고, 양옆으로 자리 잡은 총 6개의 벙커가 적진의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다. 첫 홀을 무사히 통과해도 방심은 금물. 1926년에 클럽을 이전 개장할 때 도널드 로스가 설계한 코스에 당시 클럽 회원이자 연구 박사였던 존 R. 윌리엄이 심은 참나무과 나무들과 단풍나무, 상록수, 느릅나무들이 열렬한 갤러리가 되어 골퍼를 응시하고 있다. 양옆으로 줄지어 선 나무가 그 자체로 거대한 벙커 같아서 14번 홀은 ‘벙커 힐’이라고도 불릴 정도다. 7만 5천 그루째 심은 이후로는 세기를 멈췄다니, 이 얼마나 거대한 오크 힐인가.
Augusta National Golf Club, Georgia
아마추어 골퍼 최초로 그랜드 슬램 기록을 세운 진정한 골프 애호가 바비 존스가 의사 출신 코스 설계가 앨리스터 매켄지와 함께 완성한 골프 클럽이다. 이곳에서 바비가 골프를 사랑하는 지인들을 초청해 즐긴 것이 마스터스의 시초이기에, 마스터스는 언제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열린다. 경기가 11번 홀에 다다랐을 때는 특히 눈만큼 귀를 활짝 키울 것. 11번 홀부터 13번 홀까지 탄식과 함께 절로 신을 찾게 된다 하여 ‘아멘 코너’라 불린다. 2018 마스터스 2라운드 13번 홀에서 래의 개울 Rea’s Creek에 빠진 공을 살려내려는 사진 속 세르히오 가르시아처럼. 부지 원소유주였던 존 래의 이름을 딴 개울이 그린 앞에 흐르며 바람길을 수시로 바꿔 골탕 먹은 골퍼가 수두룩하다. 올해 마스터스에서는 어떤 골퍼의 부름에 신이 응답하려나.
The Los Angeles Country Club, California
노른자위 골프 클럽. LA 베벌리 힐스에 자리한 더 로스앤젤레스 컨트리 클럽을 소개하는 데 이보다 더 직접적인 표현이 있을까. 1897년 당시 ‘최신 스포츠’를 발전시키기 위해 9홀 코스로 시작한 더 로스앤젤레스 컨트리 클럽은 1911년에 지금의 위치인 할리우드와 산타 모니카 사이, 선셋 대로가 스쳐 지나가는 곁으로 옮겨왔다. 36홀과 테니스코트를 갖춘 호화로운 대지 위에서도 나긋나긋한 초록 잎사귀들 너머 LA 다운타운의 마천루가 펼쳐지는 11번 홀은 반박할 여지없는 이곳만의 시그니처 홀. 클럽 초창기에 설계가 조지 C. 토마스 주니어가 구성한 코스대로 2010년에 길 한스가 복원한 페어웨이는 땅이 지닌 본래의 기운을 따라 자연스레 굴곡지고 오르락내리락 호흡하며, 멀리 직선의 현대 건축들과 오묘한 화음을 빚는다.
Real Club Valderrama, Spain
양팔에 바구니를 들고 올리브를 따야 할 것만 같다. 클럽 대지 대부분에 심은 지중해 고유 식물과 관목에 정말로 올리브나무도 뿌리를 틀고 있는지는 모른 채 빚는 상상이나, 쏟아지는 생기와 마주하면 피할 도리 없이 펼쳐지는 환상이다. 산을 깎아 만들어 좁고 굽이치는 여느 코스들과 달리 활주로처럼 뚫린 호쾌한 잔디 융단에 더더욱 그러하다. 골프 코스 설계의 전설이자 현대 코스 설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버트 트렌트 존스 시니어가 1974년에 밑그림을 그렸고, 이후 야생 동물 서식지를 보호하고 농약 등 화학 물질 사용을 최소화하며 물을 낭비하지 않는 친환경적 행보로 레알 클럽 발데라마는 유럽 골프 코스 최초로 오듀본 인터내셔널 Audubon International의 환경 우수성 인증서를 획득했다. 태양의 해안 코스타 델 솔 Costa Del Sol을 품에 소중히 안고 있는 곳.
- 피처 에디터
- 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