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사랑하는 뮤지션들의 노래.
그러니까 광역버스의 옆구리에 붙어 있는 골프장 광고를 보았다. ‘강남에서 35분!’이라던가? 정확하게는 ‘서울에서 35분!’일 수도 있지만 정확한 출발 지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35분이라는 시간이 모든 걸 압도하니까. 그렇다면 그 35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음악을 듣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그냥 음악이 아니다. 골프를 사랑하는 뮤지션 10명의 열한 곡의 플레이리스트다. 길이마저 36분으로 우리의 골프 여정에 거의 딱 들어맞는다. 알고 보니 과장 광고라서 35분은 택도 없다고? 더 먼 골프장에 갈 거라고? 아무래도 상관없다. 다 들었는데 골프장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또 들으면 된다. 플레이리스트를 되풀이하면 할수록 좋은 기운이 쌓일 것이다.
❶ PAT BOONE <Enter Sandman>

평생에 걸친 팻 분의 골프 사랑이 영화에도 손길을 뻗었다. 작년 개봉한 <멀리건>에서 그는 ‘올드 프로’로 출연해 골프와 일에 미친 사업가 폴 매켈리스터에게 인생의 조언을 제공한다. IMBb 평점 5.4로 그저 그렇지만, 그나마 ‘엔터 샌드맨’의 스윙 리메이크가 담긴 앨범 <인 어 메탈 무드: 노 모어 미스터 나이스 가이>보다는 형편이 낫다(별 2개).
❷,❸ BING CROSBY <Swinging On A Star & White Christmas>
빙 크로스비(1903~1977)의 골프 사랑은 급이 다르다. 일단 열두 살부터 캐디로 그린에 나가기 시작했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 겨루는 ‘프로암 Pro-Am’ 대회를 최초로 창립한 장본인이며(AT&T 페블비치 프로암), 그가 생전에 보유했던 유료 회원권은 75개에 달한다. 이런 인물인지라 크로스비가 골프를 즐긴 직후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1977년 10월 13일, 그는 스페인으로 날아가 마드리드 인근의 라 모랄레하 골프장에서 월드컵 챔피언 매뉴얼 피녜로와 라운딩을 즐겼다. 심지어 9번 홀에서는 그를 알아본 건설 인부들의 요청으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히트곡 ‘스트레인저 인 더 나이트’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라운딩을 마치고 클럽하우스로 가던 도중 쓰러져 일흔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런 사연을 다 알고 나면 플레이리스트에 고작 한 곡 고르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게다가 그에게는 불멸의 캐럴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있다. 그래서 두 곡을 골랐다. ‘스윙잉 온 어 스타’는 1944년 영화 <고잉 마이웨이>에 수록된 경쾌한 스윙 넘버다. 설
명이 필요 없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어빙 벌린이 작곡해 수많은 가수가 불렀지만 모두가 빙 크로스비의 곡으로 기억하고 있다. 음반도 무려 5천만 장이나 팔았다.
❹ GLENN FREY <True Love>

이글스의 기타리스트인 글렌 프라이(1948~2016)의 골프 사랑은 유별나다. 보컬 돈 헨리에 따르면 1994년 이글스가 재결성했을 때, 프라이가 골프를 할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투어를 잡았다고 할 정도다. 플레이리스트에 엄선한 ‘트루 러브’ 등으로 1980년대 말 솔로 가수로도 활약한 프라이는 기타는 오른손으로 치지만 골프공은 왼손으로 친다.
❺ ALICE COOPER <I’m Always Chasing Rainbows>

골프에서는 무엇이 무지개가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홀인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앨리스 쿠퍼의 2집에 수록된 ‘아임 올웨이스 체이싱 레인보’의 가사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째 자주 맞닥뜨릴 수 있는 것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루어질 수 없는 걸 좇아왔고 꿈은 부정당했다”니 말이다. 하지만 구력이 45년에 이르는 앨리스 쿠퍼라면 실제로 무지개, 아니 홀인원쯤은 이미 손에 넣지 않았을까?
❻ BILLY MAYERL <Jazzaristrix>

사후의 삶이 진정 존재한다면 빌리 메이얼(1902~1957)은 골프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플레이리스트의 어느 뮤지션이 그렇지 않겠는가만, 빌리 메이얼에게는 나름의 안타까운 구석이 있다. 전기인 <빌리 메이얼-삶과 음악>을 보면 “그는 골프를 좋아했지만 일로 바빠서 원하는 만큼 자주 하지 못했다”라는 구절이 나오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을 너무 진지하지 않게 재해석한 ‘라이트 뮤직’의 대가로서 메이얼은 생전 300여 곡의 피아노 연주곡을 작곡했다.
❼ DEAN MARTIN <Please Don’t Talk About Me When I’m Gone>

가수이자 배우, 코미디언이었던 딘 마틴(1917~1995)은 이동식 음료 카트의 발명 및 도입에 공헌했다. 프랭크 시나트라와 라스베이거스의 ‘데저트 인 골프 클럽’에서 라운딩을 하곤 했던 그는 칵테일 없이는 절대 18홀을 다 돌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마틴의 요청을 수용하고자 데저트 인에서는 라운딩과 칵테일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카트를 개발했다. 이처럼 또 다른 의미로 골프를 사랑했던 그의 곡으로는 ‘플리스 돈 토크 어바웃 미 웬 아임 곤’을 골랐다. 헤어진 연인에 대해 나쁜 말을 할 바에는 아예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충고를 담은 가사지만 왠지 골프 이야기 같기도 하다. 같이 라운딩을 즐긴 이들에 대해 뒷말을 하지 말라고 말이다.
❽ LIT(JEREMY POPOFF) <My Own Worst Enemy>

음악 세계에서 ‘원 히트 원더’는 긍정보다 부정적인 느낌을 더 많이 담고 있다. 하지만 단 한 곡이라도 히트곡이 있는 게 없는 것보다는 여러모로 훨씬 더 낫다. 1999년 작 ‘마이 워스트 에너미’ 한 곡을 남긴 미국 밴드 릿도 반박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작곡자인 기타리스트 제레미 포포프는 골프 마니아로서 인터뷰에서 밴드의 성공을 홀인원에 비유했다. “언제 성공이 찾아올지 모르니 클럽을 휘두를 수 있어야 한다”.
❾ JAMES BLUNDELL <All That I Need>

오스트레일리아의 컨트리 전설이자 골프 애호가인 제임스 블런델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 진짜 골프장까지 35분이 걸린다면 거의 도착해가는 시점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기 좋은 곡.
❿ DONALD PEERS <Give Me One More Chance>

웨일스 출신의 도널드 피어스(1908~1973)는 빙 크로스비와 자선 골프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으며, 1950년에는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린 브리티시 아마추어 챔피언십에 출전했지만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그래서일까, ‘기브 미 원 모어 챈스’라는 노래 제목이 한층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실제로 이 곡은 그의 두 번째 소소한 히트곡이었다. 1969년에 ‘플리스 돈 고’로 당시 갓 출범한 BBC의 <톱 오프 더 팝스>에도 출연했지만 이후의 커리어가 그다지 잘 뻗어나가지 않았다.
⓫ BACKSTREET BOYS <I Want It That Way>

투어를 할 때마다 들른 도시에서 일단 최고의 코스를 찾고 볼 정도로 백스트리트 보이스는 골프를 사랑한다. 멤버 다섯 명 가운데 브라이언 리트렐과 A.J. 매클레인의 골프 사랑이 가장 두드러지는데, 둘 가운데 한 명만 꼽아야 한다면 후자가 단연 앞선다. 매클레인은 그저 골프를 즐기는 수준을 넘어 의류 사업까지 벌일 정도로 골프를 사랑한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백스트리트 보이스가 투어를 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자신의 의류 브랜드를 론칭했다. 상호가 ‘GOAT(Golf Over All Things, 무엇보다 골프)’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히트곡 ‘아이 원 잇 댓 웨이’만큼이나 말이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