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라운딩 가는 길에 듣는 플레이리스트 11

2023.10.06김은희

골프를 사랑하는 뮤지션들의 노래.

그러니까 광역버스의 옆구리에 붙어 있는 골프장 광고를 보았다. ‘강남에서 35분!’이라던가? 정확하게는 ‘서울에서 35분!’일 수도 있지만 정확한 출발 지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35분이라는 시간이 모든 걸 압도하니까. 그렇다면 그 35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음악을 듣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그냥 음악이 아니다. 골프를 사랑하는 뮤지션 10명의 열한 곡의 플레이리스트다. 길이마저 36분으로 우리의 골프 여정에 거의 딱 들어맞는다. 알고 보니 과장 광고라서 35분은 택도 없다고? 더 먼 골프장에 갈 거라고? 아무래도 상관없다. 다 들었는데 골프장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또 들으면 된다. 플레이리스트를 되풀이하면 할수록 좋은 기운이 쌓일 것이다.

PAT BOONE <Enter Sandman>

평생에 걸친 팻 분의 골프 사랑이 영화에도 손길을 뻗었다. 작년 개봉한 <멀리건>에서 그는 ‘올드 프로’로 출연해 골프와 일에 미친 사업가 폴 매켈리스터에게 인생의 조언을 제공한다. IMBb 평점 5.4로 그저 그렇지만, 그나마 ‘엔터 샌드맨’의 스윙 리메이크가 담긴 앨범 <인 어 메탈 무드: 노 모어 미스터 나이스 가이>보다는 형편이 낫다(별 2개).

❷,❸ BING CROSBY <Swinging On A Star & White Christmas>

빙 크로스비(1903~1977)의 골프 사랑은 급이 다르다. 일단 열두 살부터 캐디로 그린에 나가기 시작했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 겨루는 ‘프로암 Pro-Am’ 대회를 최초로 창립한 장본인이며(AT&T 페블비치 프로암), 그가 생전에 보유했던 유료 회원권은 75개에 달한다. 이런 인물인지라 크로스비가 골프를 즐긴 직후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1977년 10월 13일, 그는 스페인으로 날아가 마드리드 인근의 라 모랄레하 골프장에서 월드컵 챔피언 매뉴얼 피녜로와 라운딩을 즐겼다. 심지어 9번 홀에서는 그를 알아본 건설 인부들의 요청으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히트곡 ‘스트레인저 인 더 나이트’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라운딩을 마치고 클럽하우스로 가던 도중 쓰러져 일흔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런 사연을 다 알고 나면 플레이리스트에 고작 한 곡 고르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게다가 그에게는 불멸의 캐럴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있다. 그래서 두 곡을 골랐다. ‘스윙잉 온 어 스타’는 1944년 영화 <고잉 마이웨이>에 수록된 경쾌한 스윙 넘버다. 설
명이 필요 없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어빙 벌린이 작곡해 수많은 가수가 불렀지만 모두가 빙 크로스비의 곡으로 기억하고 있다. 음반도 무려 5천만 장이나 팔았다.

❹ GLENN FREY <True Love>

이글스의 기타리스트인 글렌 프라이(1948~2016)의 골프 사랑은 유별나다. 보컬 돈 헨리에 따르면 1994년 이글스가 재결성했을 때, 프라이가 골프를 할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투어를 잡았다고 할 정도다. 플레이리스트에 엄선한 ‘트루 러브’ 등으로 1980년대 말 솔로 가수로도 활약한 프라이는 기타는 오른손으로 치지만 골프공은 왼손으로 친다.

❺ ALICE COOPER <I’m Always Chasing Rainbows>

골프에서는 무엇이 무지개가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홀인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앨리스 쿠퍼의 2집에 수록된 ‘아임 올웨이스 체이싱 레인보’의 가사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째 자주 맞닥뜨릴 수 있는 것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루어질 수 없는 걸 좇아왔고 꿈은 부정당했다”니 말이다. 하지만 구력이 45년에 이르는 앨리스 쿠퍼라면 실제로 무지개, 아니 홀인원쯤은 이미 손에 넣지 않았을까?

❻ BILLY MAYERL <Jazzaristrix>

사후의 삶이 진정 존재한다면 빌리 메이얼(1902~1957)은 골프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플레이리스트의 어느 뮤지션이 그렇지 않겠는가만, 빌리 메이얼에게는 나름의 안타까운 구석이 있다. 전기인 <빌리 메이얼-삶과 음악>을 보면 “그는 골프를 좋아했지만 일로 바빠서 원하는 만큼 자주 하지 못했다”라는 구절이 나오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을 너무 진지하지 않게 재해석한 ‘라이트 뮤직’의 대가로서 메이얼은 생전 300여 곡의 피아노 연주곡을 작곡했다.

❼ DEAN MARTIN <Please Don’t Talk About Me When I’m Gone>

가수이자 배우, 코미디언이었던 딘 마틴(1917~1995)은 이동식 음료 카트의 발명 및 도입에 공헌했다. 프랭크 시나트라와 라스베이거스의 ‘데저트 인 골프 클럽’에서 라운딩을 하곤 했던 그는 칵테일 없이는 절대 18홀을 다 돌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마틴의 요청을 수용하고자 데저트 인에서는 라운딩과 칵테일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카트를 개발했다. 이처럼 또 다른 의미로 골프를 사랑했던 그의 곡으로는 ‘플리스 돈 토크 어바웃 미 웬 아임 곤’을 골랐다. 헤어진 연인에 대해 나쁜 말을 할 바에는 아예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충고를 담은 가사지만 왠지 골프 이야기 같기도 하다. 같이 라운딩을 즐긴 이들에 대해 뒷말을 하지 말라고 말이다.

❽ LIT(JEREMY POPOFF) <My Own Worst Enemy>

음악 세계에서 ‘원 히트 원더’는 긍정보다 부정적인 느낌을 더 많이 담고 있다. 하지만 단 한 곡이라도 히트곡이 있는 게 없는 것보다는 여러모로 훨씬 더 낫다. 1999년 작 ‘마이 워스트 에너미’ 한 곡을 남긴 미국 밴드 릿도 반박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작곡자인 기타리스트 제레미 포포프는 골프 마니아로서 인터뷰에서 밴드의 성공을 홀인원에 비유했다. “언제 성공이 찾아올지 모르니 클럽을 휘두를 수 있어야 한다”.

❾ JAMES BLUNDELL <All That I Need>

오스트레일리아의 컨트리 전설이자 골프 애호가인 제임스 블런델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 진짜 골프장까지 35분이 걸린다면 거의 도착해가는 시점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기 좋은 곡.

❿ DONALD PEERS <Give Me One More Chance>

웨일스 출신의 도널드 피어스(1908~1973)는 빙 크로스비와 자선 골프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으며, 1950년에는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린 브리티시 아마추어 챔피언십에 출전했지만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그래서일까, ‘기브 미 원 모어 챈스’라는 노래 제목이 한층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실제로 이 곡은 그의 두 번째 소소한 히트곡이었다. 1969년에 ‘플리스 돈 고’로 당시 갓 출범한 BBC의 <톱 오프 더 팝스>에도 출연했지만 이후의 커리어가 그다지 잘 뻗어나가지 않았다.

⓫ BACKSTREET BOYS <I Want It That Way>

투어를 할 때마다 들른 도시에서 일단 최고의 코스를 찾고 볼 정도로 백스트리트 보이스는 골프를 사랑한다. 멤버 다섯 명 가운데 브라이언 리트렐과 A.J. 매클레인의 골프 사랑이 가장 두드러지는데, 둘 가운데 한 명만 꼽아야 한다면 후자가 단연 앞선다. 매클레인은 그저 골프를 즐기는 수준을 넘어 의류 사업까지 벌일 정도로 골프를 사랑한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백스트리트 보이스가 투어를 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자신의 의류 브랜드를 론칭했다. 상호가 ‘GOAT(Golf Over All Things, 무엇보다 골프)’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히트곡 ‘아이 원 잇 댓 웨이’만큼이나 말이 필요 없다.

이용재
이미지
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