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코드 쿤스트 “음악이 음악으로만 들리면 안 돼요”

2023.11.29박나나, 김은희

2023 GQKOREA MEN OF THE YEAR – CODE KUNST
코드 쿤스트가 그리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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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어머니가 그리신 유화 중 기억에 남는 작품 있어요?
CK 집 거실에 엄청나게 큰 숲을 그린 그림이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항상 벽에 걸려 있었는데 되게 화창한 숲도 아니고, 어느 정도 음침하기도 하고, 혼자 들어간다면 무서울 법한 숲인데, ‘우리 집’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그 그림이다 보니까 저한테는 뭔가 기분 좋은 대상인 거예요. 지금도 엄청 화창하다기보다 나무가 우거져 있고, 그늘이 많은 숲을 보면 향수에 젖는 게 있어요.
GQ 계절과 시간대로 따지면 언제쯤이라고 묘사할 수 있는 숲인가요?
CK 여름인 것 같은데···, 여름. 가장 풀이 아름다운 색을 띠고 있을 때의 숲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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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오래전 인터뷰에서 한 말이 인상 깊어서요. 엄마 방 화장실에 들어가면 풍기던 유화 물감 향이 각인됐다던.
CK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게 저도 유화 물감 향인 줄 알았는데 스텐실 물감이라고 하셨나? 아닌데. 아무튼 그림 그리는 데 쓰이는 재료 향이지 물감 향은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정확히는 화장실 앞에 어머니가 그림 그리는 방이 있었어요. 화장실 가느라 그 방 앞을 지나가면 향이 났어요. 항상 그림을 그리셨으니까.
GQ 얼마 전에 알게 됐다는 건, 최근 어머니와 그림에 대한 대화를 했나 봐요?
CK 네. 저는 엄마랑 통화를 항상 오래오래 하고 자주 해요. 어머니께서 아직도 그림을 계속 그리시거든요. 전시회도 하시고.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이 형이 그림 그리는 거 보다가 “기안이 형 작업실에 갔을 때 그거랑 같은 향이 났는데 나 이 냄새 맡으면 좀 기분 말랑말랑해진다”고 했더니, 엄마가 “물감은 그렇게 향이 진할 수가 없어” 하시면서 다른 걸 거라고 얘기해줬는데 또 까먹었어요.
GQ “말랑말랑해진다”고 표현하네요. 조금 단편적인 건가, ‘좋다’라고만 하는 건?
CK 왜냐면 그 냄새는 항상 365일 났기 때문에. 365일 좋지는 않잖아요, 사람이. 슬픈 날도 있고, 슬픈 날은 그게 슬픈 향인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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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코드 쿤스트란 예명을 익숙하게 여기다가 불현듯 뜻을 찾아보게 됐어요. 그러니까, 맡고 자란 그 향에서 물려받은 예술적인 부분이 생각났고 그 의미를 담아 코드 Code, 독일어로 예술인 쿤스트 Kunst, ‘예술의 코드’라고 지었다죠?
CK 맞아요. 어머니의 모든 게 저한테 되게 큰 영향을 미쳐요. 지금도 그래요. 음악을 음악으로 접근하지 않는 법을 엄마한테 배운 것 같아요. 물론 이 부분에서는 무조건 코드 전이해야 하고, 변주해야 하고, 이런 법칙도 있어요. 제가 만든 곡 중에도 그런 곡이 있겠지만, 그런데 그런 것보다는 그냥 내가 생각한 게 느껴지느냐 안 느껴지느냐 딱 이것만 생각하면서 음악을 하게 됐어요.
GQ 요즘 코드 쿤스트의 예술적 코드를 한번 살펴보죠. 최근 본 영상은요?
CK 오늘 처음 봤는데 넷플릭스에 <요가>가 있더라고요. 3화까지 보고 왔어요.
GQ 며칠 전 <나 혼자 산다>에서 요가하던 하석진 씨 영향인가요?
CK 어, 맞아요. 내가 꾸준히 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볼까?’ 싶어 벼락치기로 30분 정도 하고 왔는데, 살면서 요가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처음 쳐봤어요.
GQ 어땠어요? 해보니까.
CK 흉측했어요. 제가 그 자세를 수행해야 아름다울 텐데 처음 해보는 요가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한 모습과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좀 다르더라고요. 일단 시작은 했으니까 한 달 정도는 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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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예전에는 영감의 원천 중 하나로 유명 인사들의 강연을 찾아본다고 했는데요.
CK 많이 봤죠. 그때는 저를 찾는 과정에 그게 필요하다고 느꼈던 거고, 지금도 ‘찾았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금 알 것 같아요. 내가 그대로 실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그게 정확하지 않더라도, 지난 20대부터 30대 중반으로 오면서 ‘최소한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건 생긴 것 같아서 이제는 오늘의 나를 조금 더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것들을 찾는 편이에요.
GQ 최근 귀를 낚아챈 소리는요?
CK 많죠. 제가 <싱어게인 3>(심사위원)를 지금 하고 있기 때문에.
GQ 궁금했어요, <싱어게인 3>의 시간. 어때요?
CK 너무너무 좋아요. 너무너무 힘든데 너무너무 좋아요. 힘들다는 건 녹화 시간이 길다 보니까 체력적으로 힘든 거고, 좋은 점은, 제가 너무나 경계하고 항상 겁내하는 것 중 하나인데, 음악은 여전히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그 음악을 애지중지하고 음악 작업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다 포기할 수도 있다고 하던 때가 자꾸 생각나요. 참가자들을 보면. 지금 저는 그러지 못하거든요. 솔직하게, 정말 솔직하게. 쉽게 얘기해서 “너 음악 없이 살 수 있어?”라고 하면, 어릴 적의 저를 생각하면 되게 속상한 얘기지만 제 주변의 모든 것보다 음악이었거든요. 그게 물질적인 게 아니라 친구보다도 음악이었고, 가족보다도 음악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지 않게 되더라고요. 요즘에는 음악이 제가 가진 모든 것 중 그냥 되게 큰 일부분이 됐어요. 예전에는 음악이 90퍼센트였다면 지금은 70퍼센트? 더 지켜야 될 나머지 것들이 30퍼센트 정도 점점 생긴 건데, 너무나 감사하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이 경계심을 잃지는 않으려고 해요. ‘싱어게인’이 계속 그런 자극을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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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하나 헷갈리는 점이 “속상하지만”이라고 말하셨는데, 20대 때 음악이 전부였던 때가 속상하다는 거예요, 아니면 지금이 그렇다는 거예요?
CK 그 둘 다 아닌 것 같은 게, 그 시절을 너무 치열하게 보냈기 때문에 속상해요. 정말 목숨 걸고 음악했기 때문에. 측은하다고 해야 하나? 그때 나를 생각하면.
GQ 애썼다, 이런?
CK 네. 진짜 뭔가 좀···, 방송을 통해 최근에 저를 알게 되신 분들은 ‘쟤는 태어나서부터 저렇게 말랐겠구나’ 생각하시지만, 사실 제가 수척해지고 마르게 된 게 음악을 만나면서부터거든요.
GQ 스물넷 그쯤?
CK 맞아요. 학생 때 사진 보면, 몸무게로 얘기하자면 고등학생 때 67~68킬로그램이었고 음악을 하면서 거의 60킬로그램이 됐죠.
GQ 하루를 이틀처럼 산 시절이라고 그랬죠. 늦게 시작한 만큼 조급함이 커서.
CK 정확히 그 마음 같아요. 그때를 생각하면 애써서 속상한 마음이 좀 있어요.
GQ 그래서 음악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90퍼센트에서 70퍼센트로 줄어든 것 역시 속상한 게 아니라는 거네요.
CK 그건 그래야만 해요. 그래야만 더 훌륭한 음악을 낼 수 있어요. 왜냐면 어릴 때는 저의 얘기와 저에게만 집중하면 돼요. ‘나는 이런 사람,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이거에만 집중해도 훌륭한 음악을 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주변의 나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과 나의 관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신경 쓰지 않으면 아무 음악도 나오지 않아요. 내가 이기적으로 행동했던 그 20대 초반의 나한테도 “난 널 사랑해”라고 얘기해줬던 그 사람들한테 항상 보답하면서···, 보답이라고 하면 그렇고, 얘기하면서 살아야 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더 예쁜 음악을 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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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싱어게인 3>에서 16호 가수를 두고 “곰팡이 가득한 지하에서 함께한 동료”라고 묘사해주셨죠. 그 한 줄에 많은 서사가 담겨 있었어요.
CK 어, 나오는 걸 전혀 몰랐어요. 약간 눈물 날 것 같았어요. 소식은 들었거든요. 이 친구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고. 너무 잘해서 너무 고마웠죠.
GQ 어쩌면 16호 가수도 음악만 있던 세계에서 삶의 반경이 확장된 게, 여유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좀 더 편하게 노래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도 같다 싶네요.
CK 맞아요. 그랬겠죠? 그 친구가 노래를 너무 잘하는 거예요. 물론 예전에도 잘했지만 그때 서로 “이건 좀 아쉽지 않아?” 이런 얘기를 나누던 것들이 다 고쳐진 상태의 노래를 이번에 듣게 된 거예요. 저는 그게 결혼의 영향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뭔가를 내가 보여줘야 하고, 이루어야 하고, 해내야 하는 데 목적이 있던 음악에서 표현하는 음악으로 용도가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여유로워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단단해진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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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코드 쿤스트로서 <레모네이드>(2013) 발표한 이후 올해 10주년을 맞이했죠.
CK 10주년은 아무 의미 없어요.
GQ 아무 의미 없어요? 그런데 왜 올해 5집 앨범명이 <리멤버 아카이브>예요?
CK 그러니까 제 앨범은 항상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억에서 꺼내오게 되는데, ‘그래, 이제 내 기억에서 이 이야기를 제대로 꺼내올 정도의 데이터 베이스는 있다’인 거죠. 10년을 보냈잖아요, 음악을 하면서. 그랬으면, 아···, 그렇게 따지면 의미가 있는 거네요, 그렇죠? 지난 10년은 저한테는 굉장히 큰 자산이에요. 10년 동안 제가 기억하고 경험한 건 어떤 걸로도 바꾸고 싶지 않아요.
GQ 다음 6집은 언제 나올지 모르지만···, 왜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요?
CK 전혀 모르겠어요. 진짜 모르겠어요. 곡은 있죠. 올해 안에 내라고 하면 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음악이 음악으로만 들리면 안 되기 때문에 낼 수 없죠.
GQ 그럼 언젠가 6집을 채울, 지금 쌓는 코드 쿤스트의 예술적 코드는 뭐예요?
CK 요즘에는 주변 사람들. 주변 사람들이 나한테 쓰는 마음이 있을 거 아니에요. 나한테 마음을 따뜻하게 써주는 친구도 있고 혹은 차갑게 대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 나를 좋아하는 사람···, 그런 주변에 나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나한테 마음을 전달하거나 생각을 말할 때 어떻게 얘기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걸 표현하는지에 관심이 있어요. 지금은 그게 제일 커요. 그래서 6집에 어떤 이야기가 담길지 전혀 모르겠어요. 물론 마음속에는 있죠. 다만 그걸 앞으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변화시킬지 모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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