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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주급을 위협하는 고품질 가성비 부르고뉴 레드 와인 3

2024.03.14김창규

부르고뉴의 와인 등급 체계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레지오날급, 빌라주급, 1급밭, 그랑 크뤼 이렇게 4단계로 나뉜다. 그랑 크뤼는 라벨에 등급과 밭의 이름이, 1급밭은 마을 이름+등급과 밭의 이름이, 빌라주급은 마을 이름 또는 마을 이름+등급이 없는 뀌베 등이 적혀 있다. 라벨에 부르고뉴, 코트 도르, 코트 드 뉘, 코트 드 본, 코트 샬로네즈, 마코네즈와 같은 명칭이 적힌 것이 레지오날급이며, 쉽게 말해 지역 단위 와인이다. 등급에 따라 와인 가격이 달라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 그러나 우수한 생산자의 와인은 등급을 넘어서는 파괴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중 가격까지 착한 와인을 골랐다. 비슷한 가격의 빌라주급 와인들보다 이게 더 맛있을 거다.

띠보리제 벨레르부르고뉴그랑샤이오

가족경영 와이너리가 많은 부르고뉴의 특성상 와인 품질을 가늠하기에 가계도를 파헤치는 것만큼 좋은 기준은 없다. 띠보 리제 벨레르는 부르고뉴를 대표하는 최상급 생산자 중 하나로 꼽히는 꼼뜨 리제 벨레르의 사촌이다. 둘의 두드러지는 차이점을 꼽는다면 꼼뜨 리제 벨레르가 5배쯤 더 비싸고, 그들의 본거지는 본 로마네 마을, 띠보 리제 벨레르는 뉘 생 조르주라는 거다. 띠보의 “레 그랑 샤이오”는 뉘 생 조르주와 샹볼 뮤지니 마을의 피노누아를 블렌딩해 만든다. 둘 다 부르고뉴에서도 손꼽히게 좋은 와인이 생산되는 마을이기에 품질은 일정 수준 이상 보장될 수밖에 없다. 포도나무의 수령도 최소 35년이 넘는다. 그래서인지 이 와인은 솜씨 좋은 생산자의 뉘 생 조르주 와인처럼 느껴진다.
🍷 동물적인 뉘앙스와 잘 익은 과실 캐릭터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오픈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의 폭도 큰 재미를 선사한다.

뱅상 르디부르고뉴 오뜨 꼬뜨 바슈로뜨

공교롭게도 뱅상 르디 역시 뉘 생 조르주에 자리 잡은 와인메이커다. 2018년부터 본격적인 유기농법을 도입한 그는 혼자서 포도 재배와 양조, 마케팅까지 모든 걸 다해내는 슈퍼맨이다. 이 와인은 포도 줄기를 모두 제거하고 열매만을 재료로 써 5년 이상 사용한 오크통에서 18개월 숙성한다. 보통 이러한 양조방식은 포도 품종의 순수한 캐릭터를 추구하는 생산자들이 선호한다. 라벨과 가격이 공개되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유명하지 않은 생산자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가격 접근성이 높다.
🍷 나는 이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했을 때 뛰어난 균형감과 견고한 인상 때문에 본 로마네 빌라주급이라고 생각했었다.

도멘 로베르 시뤼귀에부르고뉴 꼬뜨 도르

<신의 물방물> 제 10사도로 선정됐던 그랑 크뤼 와인 그랑 에세조를 만들어 본 로마네 마을의 전설적인 생산자 중 하나로 꼽히는 로베르 시뤼귀에이지만, 엔트리 라벨인 부르고뉴 꼬뜨 도르만큼은 아주 착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무려 본 로마네와 에세조의 포도를 포함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여기에는 또 다른 지역인 지이 레 시토의 포도가 함께 블렌딩 되어 있다. 그래서 표기 등급이 낮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에세조, 샹볼 뮤지니, 모레 생 드니에 둘러싸인 곳이다. 와인 애호가이자 제주에서 와인 바를 운영하고 있는 나는 이 와인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러나 와인 입문자에게도 큰 감동을 선사할 것 같진 않다. 왜냐하면 직관적으로 맛있다기 보다 섬세하고 우아한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뛰어난 가성비를 느끼게 만드는데 초심자들은 이보다 더 잘 익은 과일의 맛이 강조되고, 감칠맛이 동반되어야 맛있다고 느끼기 쉽다. 그래서 이 와인은 고급 부르고뉴 와인들도 접해 본 사람에게 더욱 추천한다.
🍷 이 와인이 보여주는 장미 아로마, 유려한 산미, 매끄러운 질감, 레드 베리의 복합적인 풍미 같은 요소들은 샹볼 뮤지니나 본 로마네의 고급 와인들에서 경험할 수 있는 특징이다.

* 글쓴이 김창규는 제주에서 이탤리언 와인 바 바코 제주를 운영하는 와인 칼럼니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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