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art

웹툰·웹소설 업계가 ‘문산법’ 재검토를 요구하는 이유

2024.03.16김은희

웹툰 · 웹소설 문화계를 향한 규제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소 잃었으니 외양간 고치라는 속담이 외양간 문까지 없애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글 / 선정우(번역가, 출판기획사 코믹팝 대표)

최근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이하 문산법)을 제정하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움직임에 웹툰·웹소설 업계에서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법률 조문에 규제 대상은 모호하게 표현한 반면, 시정 명령에 따르는 처벌 조항에는 과태료만이 아니라 강력한 형사 처벌까지 명시했다는 점에 대해 반대 목소리가 높다. 당초 작년 3월 만화 <검정고무신>의 작가 고 이우영 씨와 출판사 사이에 벌어진 저작권 분쟁 사례 방지 등을 목적으로 콘텐츠 창작자를 보호하려는 법률이라고 홍보했으나,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추진되고 있었다는 보도도 있다. 창작자와 중소 콘텐츠 기업 보호라는 명목을 내걸고, 실제로는 업계에 대한 규제 목적이 더 큰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는 말이다. 이미 웹툰·만화 분야 여러 단체에선 재검토 요구 성명을 냈다. 기존 공정위·방통위의 규제에 이어 문체부의 규제까지, 정부의 과도한 통제로 인한 역효과를 걱정하는 것이다. 산업계뿐 아니라 창작자 측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은 이유에는 웹툰·웹소설 분야의 특수성도 존재한다. 법안의 몇몇 항목으로 인해 중요한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은 ‘기다리면 무료’ 시스템의 운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콘텐츠 분야에서 ‘규제’는 항상 문제가 되었다. 오래전 군사 정권 시절에는 작품에 대한 규제는 물론이고, 예를 들어 출판사나 언론사를 개업하려면 ‘허가’가 필요했다. 비판적인 언론이나 출판물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정부에선 그런 허가 제도를 이용했다. 워낙 출판에 대한 규제가 심하다 보니, 그 반작용인지 출판사 등록이 자유화된 1987년 이후 한국의 출판사 수는 폭증했다. 21세기 이후에는 ‘1인 출판사’까지 늘어나면서 2009년 3만 5천1백91개이던 출판사 수가 2021년 7만 1천3백19개로 늘었다. 물론 이 가운데 ‘발행 실적이 있는 출판사 수’는 2021년 8천9백75개밖에 되지 않아 전체의 87퍼센트 이상이 그해에 책을 한 권도 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사 등록은 취소되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출판사 등록을 자유롭게 만든 이유는, 1980년대까지 정부가 출판을 강압적으로 통제했던 반작용이 아니겠는가. 정작 한국보다 출판 시장 규모가 훨씬 더 큰 일본의 경우, 2021년 자료를 보면 2001년 4천4백24개에서 2020년 2천9백7개로 감소했다. 즉, 한국의 출판사 수는 일본의 10배에서 24배로 늘어났고, ‘발행 실적이 있는 출판사 수’만도 일본의 3배나 된다. 출판 시장 규모는 작은데 출판사 수가 더 많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한국은 비교적 소규모 출판사가 다양한 책을 내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최근에는 일본에 나오지 않은 번역서가 한국에 먼저 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다못해 ‘만화의 나라’라는 일본에서 지금까지도 출간되지 않은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가 한국에선 2004년에 이미 번역판이 나왔고, 그 책을 본 봉준호 감독이 2013년 영화화할 수 있었다는 사례도 드문 일이 아닌 것이다. 물론 일본에만 번역판이 나온 책도 여전히 수두룩하지만, 일본의 출판 시장 규모가 한국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출판 시장 규모 차이가 큰데도 한국에만 출간된 책이 의외로 많다. ‘규제’가 아닌 ‘자유’야말로 문화 분야에선 그 어떤 진흥책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정부나 공공의 지원이 중요한 분야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 대표 격이라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역사에서도 볼 수 있는 아카이브, 고려 시대 ‘팔만대장경 목판’을 조선 시대에 불교를 경시하면서도 보존한 것이나 <조선왕조실록>의 사본을 여러 장소에 보관함으로써 소실되는 일을 막고자 했던 사례 등이다.

그 밖에도 학문적·기술적 교류라든지 해외에 한국 문화를 알리고 세계 문화의 일부로 보존하고자 하는 것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부와 공공의 지원은 필요하다. 그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님을 먼저 밝히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중심의 문화 ‘진흥’이 갖는 폐해도 존재한다는 점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중 하나가 일본을 필두로 한국 문화 발전을 국책의 덕택이라고 폄하하는 목소리다. 지난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이 아시아 영화 및 영어가 아닌 작품으로는 최초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뉴스는 즉각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되었고 일본에서도 속보로 보도했다.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SNS인 트위터에서 실시간 트렌드가 되었고, 여러 반응이 나왔다. 평소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대해 좋은 감상을 가졌던 많은 이가 한국 영화가 쌓아온 결과로 솔직하게 호평했다. 하지만 어째서 한국 영화가 (그들 기준으로는) ‘느닷없이’ 발전할 수 있었는지 의문을 갖는 이도 많았고, 그에 대한 답변으로 한국은 영화를 ‘국책’으로 지원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퍼지던 상황이었다.

사실 이미 2003년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방영되며 대히트한 시절부터 그런 주장은 있어왔다. 나는 2002년부터 일본 신문·잡지에 한국 만화 및 음악·영화 등의 문화 분야를 소개하는 칼럼을 기고하고 있었는데, ‘한국 문화의 발전은 국책 지원 덕분’이란 주장에 대한 반론에도 힘을 쓰고 있었다. 비단 영화나 드라마 분야만이 아니라 만화와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문화 국책론’은 지난 20년간 일본에서 상당히 보편화되었다. 일본은 정상적으로(?) 민간에서 열심히 노력해 작품을 만드는데 한국은 국가 예산을 쏟아 붓는 방식으로 지원한 것 아니냐는 이미지를 굳혀왔던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어느 정도 ‘꼬투리’가 될 만한 부분이 있긴 했다. 다름 아닌 한국 정부의 홍보, 특히 해외에서의 홍보다. 외국 매스컴이 한국 문화 분야를 취재할 때, 취재처로 방문하는 대상은 창작자와 관련 기업만이 아니라 각 문화 분야에서 아카이브를 만들고 교육·진흥을 하는 문체부와 각종 진흥원, 재단 등의 기관도 있다. 그런 곳들은 자연스럽게 지원 정책을 국내외에 ‘홍보’할 수밖에 없는데, 그 결과로 외국에서 한국의 문화 지원 정책이 중점적으로 보도되는 것이다.

그런 정책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문화 업계 종사자들은 대개 지원보다는 ‘규제’ 때문에 어려웠던 점을 누누이 토로해왔다. 관람자·독자·시청자들 역시 검열과 심의의 문제점을 오랫동안 실제 체험으로 겪어왔다. 하지만 그런 내용이 외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 지원만 강조된 것이 ‘한국 문화 국책론’의 주된 근거가 되어버린 셈이다. 처음에는 일본에서 나오던 주장이 확대 발전되어 이젠 중국 등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버렸다.

한류가 화제가 된 2000년대 기준으로, 영화·음악·출판 분야에서 ‘사전 검열’이 철폐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앞서 지적한 출판사 등록 자유화가1987년, 영화 사전 심의가 폐지되어 등급위원회가 설립된 것이 1998년이다. 얼마 전 에스파가 리메이크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곡 ‘시대유감’이, 공연윤리위원회의 가사에 대한 불가 판정으로 아예 보컬을 뺀 연주곡으로 출시한 것은 1995년의 일이다. 이처럼 창작자와 업계의 노력으로 심의 제도나 정부 규제가 철폐된 직후 창작에 새로운 발전의 토대가 마련되었고, 그 토대가 21세기 한류와 케이팝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점은 굳이 더 설명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을 반대할 리가 없을 웹툰·웹소설 업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를 더 걱정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역사 때문이다. 등급 분류 및 사후 심의 기관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문체부가 새로운 법률안으로 규제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이, 이중 삼중의 ‘옥상옥’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목소리도 보도되고 있다. 문화 분야의 ‘진흥’을 미끼로 내건 정부의 통제력이 너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업계의 우려에 아무 이유가 없다고 하긴 어려울 것 같다.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