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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있게 상대에 맞춰 술 선물하는 법

2024.03.21김창규

술이라는 건 애초에 기호식품이라서 상대의 기호를 저격했을 때 최고의 선물이 된다.

술에 큰 흥미가 없는 사람에
생제르맹

딱히 술을 즐기지 않는 이를 위한 선물이라면 다음의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 오픈한 날 다 비우지 않아도 변질되지 않고, 보관이 편해야 한다. 둘,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아야 한다. 셋, 음료수처럼 직관적으로 맛있고, 무겁지 않은 성향의 술이어야 한다. 마지막, 병이나 라벨이 예쁠수록 좋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술이 생제르맹이다. 생제르맹은 상온에서 장기간 보관하더라도 변질의 가능성이 적은 거의 최저의 알코올 도수인 20%이고, 한 병에 엘더플라워를 1천송이 가량 사용해 만든 리큐르라서 화사한 꽃향기가 폭발한다. 맛도 달콤하고, 탄산수나 스파클링 와인, 사과 주스, 진저 에일 등과 섞어 더욱 도수를 낮춘 칵테일로 즐겨도 좋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다. 또 장식장이나 테이블 한 켠에 올려두어도 아름답게 보일 정도로 디자인이 뛰어나다. 꼭 향수병처럼 생겨서 향도 향수 못지 않으니까. 이 술을 선물하며 “따고 다 못마시겠으면 뚜껑 닫아서 냉장고에 넣어놔도 안 상하는 술이야. 도수 높은 것 같으면 탄산수 같은 거 타 마셔도 되고, 아이스크림 위에 뿌려 먹어도 돼. 케이크랑 잘 어울리니까 그럴 때 한 번 마셔봐”라고 말한다면 모처럼 한 잔 마실 때마다 당신의 세심함에 감격할 거다.

예술과 와인을 애호가
마주앙 간송 에디션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프랑스 와인 싫어하는 이는 드물다. 게다가 예술에 대한 관심까지 높다면 아트 레이블에 호감도 갖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런 사람을 위해 마주앙이 출시한 간송 에디션을 준비해보자. 마주앙은 국내 와인 브랜드 중 가장 긴 세월 사랑받아 왔으며, 한국의 전통 유산을 묵묵히 지켜 온 간송미술관은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갤러리로 꼽힌다. 마주앙은 부르고뉴의 마을 단위 와인인 뉘 생 조르쥬와 뫼르소, 보르도의 라랑 드 포므롤 와인을 담고, 라벨에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보물 1950호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을 새겼다. 뉘 생 조르쥬는 2021 빈티지로 압구정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고, 뫼르소는 2020 빈티지로 송파진, 라랑 드 포므롤은 2019 빈티지로 남산을 그린 목멱조돈을 감상할 수 있다. 보르도는 600병, 부르고뉴는 각 300병씩 출시되어 높은 소장가치를 지닌다. 특히 한국의 고전 미술 애호가라면 이 와인을 너무 아껴 오픈하지 못할 정도로 고맙게 여길 거다.

매운 음식 마니아
나가 칠리 보드카

눈 뜨고 일어나자마자 빈 속에 불닭볶음면을 먹고, 점심은 마라탕, 저녁은 창신동매운족발, 야식으로 동대문엽기떡볶이를 선택하는 사람에게는 지구에서 가장 매운 술로 알려진 나가 칠리 보드카를 선물하자. 신라면의 스코빌 지수는 2,700. 불닭볶음면은 4,400. 청양 고추가 10,000인데, 나가 칠리 보드카는 엔트리 라인업이 100,000이고, 그 다음 라벨은 250,000. 최상급 라벨은 500,000에 달한다. 이 보드카는 한동안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고추 1위 자리를 지켰던 (현재는 갱신됨) 스코빌 지수 1백만의 나가 졸로키아로 만든다. 1리터를 만드는데 나가 졸로키아 고추 약 18kg을 사용한다. 한 병을 다 마시면 고추 한 포대를 먹는 수준인 셈이다. 전문 테이스터는 가장 높은 단계의 라벨을 마시고 “달콤한 과일이 지배적인 아로마를 갖고 있지만, 고추 냄새가 느껴진다. 입에 머금었을 때는 면도날을 삼킨 것 같고 딸꾹질을 멈출 수 없으며, 마시고 나면 치아에 이상이 느껴진다. 입술이 붓는데다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라는 미각보다 통각 위주의 시음평을 남겼다. 유튜브 채널 <주류학개론>에 따르면 가장 낮은 단계의 라벨은 한국 사람에게 부담스러울 정도의 맵기는 아니고, 두 번째 라벨은 핵불닭볶음면과 비슷하거나 한 수 아래라고 한다. 하지만 하승진은 자신의 유튜브에서 최상급 라벨을 맛보고 발을 동동 구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함께 마신 격투기 선수 박문호는 불닭볶음면 소스를 종이컵으로 한 컵 마신 것 같다는 시음평을 했다. 참고로 이 술은 ‘맵찔이’들의 나라 영국에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