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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안의 향수가 이토록 매혹적인 이유

2024.05.09임채원

‘임페리얼 티’ 출시를 기념해 창립자 킬리안 헤네시가 서울을 찾았다. 그는 부드러운 억양과 세밀한 서사를 가진 남성이었다. 킬리안이 매혹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시간을 거스르는 향기와 이야기에 있다.

GQ 킬리안의 향수는 항상 매혹적으로 속삭인다. 당신도 자유롭고 싶던 것이 있나?
KH 마이 라스트 네임. 어린 시절, 나는 내 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알다시피 헤네시라는 이름을 입는다는 건 매우 무겁지 않나. 하지만 갖고 태어난 성으로부터 도망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 어른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은 내 이름(first name)을 날리는 일이다.

GQ 그런 거라면 이제 킬리안이란 이름은 충분하지 않나?
KH 아니다 아직은. 어쩌면 언젠간.

GQ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조향사의 길에 영향을 준 점은.
KH 사실 영감이란 건 서로 다른 많은 공간에서 온다. 클림트의 페인팅에서 느낀 감상으로 킬리안 향수 ‘우먼 인 골드’가 탄생했고 이스탄불의 언덕에서 터키식 커피를 마시다가 ‘인톡시케이티드’가 그려졌다. 방콕의 디저트는 ‘문라이트 인 헤븐’의 영감이 되었다. ‘킬리안’이란 브랜드를 시작할 당시, 니치 향수 시장은 들어간 재료로 향수의 이름을 짓는 게 유행이었다. 하나의 재료, 예를 들어 패츌리, 상탈, 장미에 관해 다르게 표현하는 방식을 볼 수가 없었다. 답답했다. 모두가 재료 그대로의 이름으로 네이밍했다. 시중에 비슷한 장미 향은 널리고 널렸다. 그렇다면 난 어떤 종류의 장미 향을 원하는지, 마음속에 그려지는 서사가 필요했다. 나는 이야기 말하는 걸 좋아했다. 성분의 이름에서 연상되는 감정을 표현하면서 조향을 완성해 나간다.

GQ 독서를 사랑하는 프랑스인이다.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문학가는 누구인가?
KH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우리는 사물에 동의했기 때문에 단어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Il ne faut pas craindre les mots parce qu’on a consenti aux choses)’라는 문장을 가장 좋아한다.

GQ 당신은 향수를 유혹의 무기, 동시에 보호를 위한 갑옷이라고 정의한다.
KH 사람들은 낮보단 밤에 향수를 더 많이 뿌린다. 친구들과 놀러 나가거나 데이트하러 간다거나. 대부분의 사람은 향수가 언제나 유혹의 무기로 쓰이길 바란다. 향수가 매력의 일부가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반면 출근하는 아침엔, 이런 매혹적 기능을 추구하지 않는다. 사무실에 마음에 둔 누군가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일 외출하기 전, 눈을 감고 아침에 향수를 뿌려보자. 그리고 어떤 기분이 드는지 느껴보자. 개인적으로 집을 나서기 전에 향수를 뿌리면 버블을 감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를 둘러싼 방패. 나와 외부 세계 사이. 밤엔 타인과의 거리를 좁히는, 나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면 낮엔 다른 사람들로부터 내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향수다. 이러한 관점에서 킬리안 보틀의 옆면은 방패에서 모티프를 얻어 조각되었다.

GQ 사람들이 잘 모르는, 당신만 아는 레이어링이 있다면.
KH 난 향을 레이어하지 않는다. 킬리안의 향수는 이미 그 자체로 복잡해서 레이어를 하게 되면 향의 결이 지나치게 많아진다. 섞어 뿌리기 쉬운 화학적 구조를 가진 브랜드도 있다. 킬리안의 향기는 충분히 얽혀있어서 두 가지 이상 레이어링 할 필요가 없다.

GQ 그렇다면 향수 말고 당신이 사랑하는 것은. 코로 감각할 수 있는 것 중에. 이를테면 위스키, 식물, 요리 같은.
KH 신제품을 준비하는 기간엔 후각의 환경을 되도록 깨끗하게 한다. 그래서 종종 향기 없는 꽃을 둔다. 큰 녹색 줄기와 흰색 꽃이 특징인 칼라 릴리는 향이 나지 않지만 아름다워서 좋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튜베로즈를 두는 걸 아주 좋아한다. 장미도 많이. 아, 와인의 냄새도 사랑한다. 매일 밤 레드 와인을 즐겨 마신다.

GQ 이번엔 재스민꽃이다. 새로 출시되는 ‘임페리얼 티’는 어디서 시작되었나?
KH 향수를 창조하는 과정에는 정말 무수한 길이 있다. 그중 하나는 세상에 있는 향의 구조를 하나 골라, 분해한 다음 현대적으로 재조합하는 방법이다. 그 작업을 푸제르, 시프레, 타바코, 티 어느 구조로도 할 수 있다. 티 구조는 전설적 조향사 장 끌로드 엘레나의 불가리 ‘그린티’를 통해 개발된 방식이다. 주로 4~5개의 재료가 포함된다. 그렇다고 진짜 찻잎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차라는 착각을 일으킬 뿐. 향수 업계에는 피라진이라는 새로운 성분이 있는데 원재료의 실제 향에 훨씬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상자에 든 차의 향을 재현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약간의 여성성과 럭셔리를 창조하기 위해 재스민 앱솔루트(농축된 향료)를 더했다.

GQ 대중들이 임페리얼 티를 뿌렸을 때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KH 차를 모티프로 출시된 이전 향수들과의 차이를 느낀다면 정말 기쁘겠다. 그리고 진실에 한층 가까운 향수라는 것을 직감했으면 좋겠다.

GQ 럭셔리란 영원히 지속되는 것. 킬리안의 향수 역시 그렇다.
KH 맞다. 우리가 모든 향수병을 리필할 수 있게 만드는 이유다. 하나의 향수를 구매하면 잃어버리지 않는 한 계속 충전해 사용할 수 있다. 영원히 지속된다.

GQ 럭셔리란 개념에 새롭게 추가된 내용이 있다면?
KH 럭셔리란 경험하는 것. 그 새로운 정의가 점점 더 분명해진다. 브랜드가 독특하고 새롭고 설레는 경험을 제공하지 않으면 소비를 하는 사람들에게 럭셔리로 다가갈 수 없다는 것. 이번 팝업 스토어를 바 컨셉으로 준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의 감각을 발견하는 바. 믹솔로지스트가 만드는 칵테일처럼 당신의 후각과 팔레트에 따라 취향에 맞는 향기를 발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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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안 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