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민, 이희준이 보여준 적 없는 맛.
LEE SUNG MIN
GQ 예전에 한 밸런스 게임에서 ‘얼굴 천재 vs 연기 천재’ 중 주저 없이 얼굴 천재를 고르셨단 말이죠. 얼굴 천재 하고 싶다고 하시면서.
SM (빙그레) ‘잘생겼다’는 의미로 한 말이 아니었어요. 저는 늘 평범한 인상의 배우라고 생각해서 어떤 확실한 캐릭터를 지닌 ‘얼굴 천재’를 의도한 거였죠.
GQ 오늘 보여주신 것 같은데요, 얼굴 천재의 면모.
SM 오늘처럼 파격적으로 찍어본 건 처음이에요.
GQ 저희도 놀랐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주실 줄이야···.
SM 절박함이죠.(미소)
GQ 개봉을 앞둔 배우의 절박함?
SM 그렇죠. 나만을 위한 화보가 아니니까. 보통은 화보 찍을 때 멋있고 진지하게 했는데, 오늘은 나도 모르게 잊혀졌던 캐릭터에 빙의되어 발현된 것 같아요. 한번은 배정남이랑 화보를 찍었는데, 그 친구는 옷에 맞게 표정이랑 캐릭터가 나오더라고요. 와, 이게 모델이구나. 그 친구를 딱히 리스펙하지는 않는데 그때는 리스펙이 되더라고요?(웃음) 오늘도 옷에 맞게 빙의가 된 것 같아요.
GQ <핸섬가이즈>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죠? 올 것이 왔다?
SM 나보고 ‘핸섬가이’를 하라고? 미친 거 아니야?(웃음)
GQ 아까 영상 콘텐츠 촬영에서 “코미디는 예민한 장르다”라고 말했어요.
SM 관객을 울리는 것도 쉽지 않지만, 울리는 것보다 웃기는 게 더 어렵다고 생각해요. 호흡, 앙상블, 타이밍이 중요하고 여러 가지가 잘 맞아떨어져야 의도한데서 웃음이 나오죠. 굉장히 예민한 장르인 것 같아요. 관객을 만나봐야 알겠지만, 보통 시사 때 생각했던 지점이 아닌 엉뚱한 데서 웃음이 터질 때가 많아요. 시사 때 웃음 포인트가 대개 실제 관객의 반응으로 이어지고요. 그래서 의도한 바대로 관객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는 미지수예요. 까봐야 알겠죠.
GQ 작품 선택할 때마다 ‘이 캐릭터를 내가 할 때 다르게 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를 고민한다고 하셨죠. 재필이란 인물이 이성민이라서 어떻게 달랐을까요?
SM 많은 감독과 작업해본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이 멱살 잡고 만들어가는 캐릭터가 있는가 하면, 배우가 캐릭터에 살을 붙일 여지가 있는 경우가 있죠. <핸섬가이즈> 캐릭터를 만드는 데는 저희의 의견이 많이 들어갔어요. 특히 재필의 외모, 머리 스타일, 태닝 상태는 제가 의견을 냈는데 남동협 감독이 의견을 잘 수용해주셨어요. 제가 아니면 이 외모가 아니었을 거예요.
GQ 재필을 만나서 어땠어요? 이성민에게 무엇을 남긴 것 같아요?
SM 후련했어요. 충동대로 연기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속 시원했죠. 역할을 할 때 내가 계획한 크기, 질량, 강도, 심도를 찾아가는 과정이 있다면, 재필이란 캐릭터는 이렇게 가볼까? 저렇게 가볼까? 비교적 열려 있는 부분이 꽤 있었어요.
GQ 그간의 인터뷰에서 다큐멘터리 언급을 많이 하셨어요. 논픽션을 통해 실제 인물을 관찰하는 일이 캐릭터를 빚는 배우의 상상력에 도움이 많이 되나요?
SM 저희는 드라마를 만드는 일을 하잖아요. 픽션을 만드는 일이니까 논픽션에 오히려 더 관심이 가더라고요. 지금도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는 하지만 직업병이라고 해야 할지, 어릴 때보다는 덜 보게 돼요. 잘하는 배우, 멋진 작품 보면 나의 초라함이 마구 드러나는 것 같고 마음도 아프고···.
GQ 자신에의 불만족, 후회와 갈증이 계속 작품을 하게 하는 것 같다고 하셨었죠.
SM 아까 유튜브 콘텐츠 찍을 때 “언제 완생이 될까요?”라고 물었잖아요. 완생이 되려고 마음먹어 되었다면 배우를 안 했겠죠. 더 이상 의미가 없었을 테고요. 내가 출연한 작품을 여러 번 보지 않는 이유도 당시 촬영한 영상을 보면 나만 알고 있는 떨림, 긴장감이 되살아나서 그렇기도 해요. 사람들이 좋다고 해도 나는 아니까, 보이니까. 그래서 더 완벽해지고 싶고, 더 후회 없이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 내 스스로 이 일을 선택하고 삶을 살아오면서 생기는 갈증, ‘이번에 못했으니 다음에 또 해봐야지’ 그런 심정으로 계속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GQ 예전에는 “왜 연기를 하나요?”라는 질문이 싫었다고요.
SM 어릴 때 같이 연극하던 친구들도 자주 물었어요. “왜 연기해? 왜 배우를 해?” 특히 20대 초반 때는 시골 아이가 아무도 안 하던 작업을 하니까 (주변에선)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설명을 못 하겠더라고요. 이 작업을 왜 하는지, 나에게 어떤 매력과 의미가 있는지. 그냥 할 뿐인데. 나에겐 “왜 연기를 해?”라는 질문이 “왜 살아?”라는 질문과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지금도 그래요. 어떤 배우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볼 수 있어서’ 같은 이야기를 하던데,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나한테 주어진 숙명이고, 내 팔자고, 먹고사는 내 일이고, 그런 것 같아요.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그래서, 완생은 없다.
GQ 요즘은 한국의 원로 배우들 보면서 미래를 그린다고요?
SM 저희가 어릴 때는 한국 영화, 드라마의 완성도가 지금만큼 높지는 않았어요. 연기도 더빙 연기가 많았고요. 그때는 매일 보던 게 외국 영화였으니까, 고등학교 때는 16절지 공책에 좋아하는 외국 배우 이름을 빼곡하게 적을 정도였어요. 연극을 시작한 20대 때는 누가 “어떤 배우 좋아해?” 물으면 늘 로버트 드 니로, 알파치노 같은 배우를 말했죠. 연기를 오래 해오면서 연기에 대한 생각, 바라고 그리는 배우의 모습, 어떤 배우가 좋은 배우이고 어떤 연기가 좋은 연기인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것 같아요. 생각이 좀 더 성숙해졌죠. 요즘 MBC <수사반장>, KBS1 <달동네> 같은 작품이 유튜브에 떠서 종종 보거든요. 흑백 텔레비전 시절의 최불암 선생님, 기라성 같은 레전드 배우들이 배경으로 나오는데 연기를 너무 잘하시는 거예요. 철없는 어릴 때는 천지를 모르고 한국 작품을 평가 절하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훌륭한 배우들이 가까이 있었는데 나는 왜 서양 배우를 리스펙하며 살았을까? 영어로 연기하는 배우도 아닌데? 반성이라는 말은 좀 웃기고, 아무튼 요즘 그런 깨달음을 추구하고 있어요. 작년에 신구 선생님 공연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죠. 신구 선생님, 이순재 선생님, 박근형 선생님, 정동환 선배님처럼 연극으로 시작해 TV, 영화 연기하다 다시 연극 무대로 가는 좋은 사례를 보여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아, 이분들이 가는 길이 내가 갈 길이구나.
GQ 후배들이 연기 조언을 구하면 어떻게 조언하세요?
SM (툭 던지듯이) 그냥, 해.
GQ 머리 올려준 후배도 꽤 된다고요. 골프 조언은 어때요?
SM 룰만 가르쳐주고 스윙에 대해서는 코치하지 않아요. 그게 제 철칙이에요. 본인 스윙은 본인이 찾아가야 하니까요. 답을 못 찾고 헤매고 있으면 에둘러서툭 말해요. 질문하지 않으면 굳이 말하지 않고요. 제 스타일이 그래요.
GQ “그냥, 해”라는 연기 조언과도 결국 비슷하네요?
SM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내 스타일이 그런 것 같아요. 내가 하는 조언이 그 친구 연기, 스윙의 근간을 흔들면 안 되니까요.
GQ 영화 개봉이 한 달 남은 지금을 라운딩으로 비교한다면, 어디쯤 와 있나요?
SM 한 타 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16번 홀 티 샷이 페어웨이 벙커 깊은 데로 들어갔어요. 벙커 턱이 높아서 핀을 보고 쏠 수 없고, 일단 벙커를 잘 탈출해서 보기를 하든, 파를 해서 헤쳐나가야 돼요.
GQ 왜 하필 벙커예요? 아직 뚜껑도 안 열었는데.
SM 벙커를 잘 탈출해서 파를 하면 한 타를 유지할 수 있고, 거기서 실수하면 두 타, 세 타를 까먹을 수 있거든. 집중력이 필요한 굉장히 예민한 상황이에요. 골프는 16, 17, 18홀이 중요해요. 15번 홀부터 집중력이 떨어지거든요.
GQ 듣기만 해도 손에 땀나는 상황이네요.
SM 비유 괜찮죠?
GQ 연기 인생에 비유하면 이성민은 몇 홀쯤 와 있어요?
SM 15번 홀 정도? 슬슬 마무리를 해야 하고, 그럼에도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죠.
GQ 드라마 <골든타임> 직후 인생의 골든타임을 20대로 꼽은 적이 있어요. 그후 여러 빛나는 순간을 맞이하셨는데, 지금 그 골든타임을 다시 쓴다면요?
SM 여전히 20대 때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골든타임이 아니라, 개와 늑대의 시간이에요. 드라마 <골든타임>의 메시지도 그래요. 골든타임은 그 인물이 가장 빛날 때가 아니라, 빛나는 시간으로 가기 위한 수련의 시간을 의미하죠. 20대가 내 인생에서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가장 힘든 시간이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순간이었어요. 경주마처럼 연극 연기에만 집중했던 시기였고, 겁 없이 실험도 모험도 할 수 있었죠. 안 돼? 그럼 한 대 맞고 다시 시작하지 뭐. 그 20대가 내 인생을 여기로 데려온 것 같아요. 그런 시간들이 제게 주어졌다는 게 감사해요. 내 딸에게도 요즘 그런 얘기를 해요. 그리고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고요. 실험하고 도전해보라고, 겁내지 말고. 아니면 한 대 맞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예요.
GQ tvN 10주년 시상식에서 “스태프들을 위한 상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한 수상 소감이 인상적이었어요. 이성민이 상을 만들 수 있다면요?
SM 배우가 배우에게 주는 상을 만들고 싶어요. 다수의 배우가 그해에 리스펙트하는 배우를 투표하고, 수상자는 객석에, 다른 배우들은 무대에 나와 그 배우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미국에 실제로 그런 상이 있더라고요. 굉장히 멋진 상인 것 같아요. 한국엔 왜 없지? <지큐>에서 만들어주실래요?
LEE HEE JUN
GQ 작년에 한 배우와의 인터뷰 중 이희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희준이 캐릭터 분석하는 과정을 보고 굉장히 감명 받았다고, “형은 아직도 연기가 그렇게 재밌어요?” 아이 같은 눈으로 그렇게 물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궁금했어요. 연기의 어떤 점이 그토록 재미있어요?
HJ 글쎄···. 인물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이 되게 재밌어요.
GQ 왜 재미있는 것 같아요?
HJ 어렵네요. 재밌는데, 왜 재밌냐고 하니까.(웃음)
GQ 재미를 느끼는 건 자연스럽지만 내가 왜, 하필, 특히 거기서 재미를 느낄까?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이유가 있기도 하더라고요.
HJ 음···. 하면 할수록 계속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어서 재밌는 것 같아요. 저는 뇌과학에도 관심이 많은데, 매일 같은 공연을 해도 어떤 생각을 하면 눈물이 많이 나고, 어떤 생각을 하면 눈물이 적게 나요. 감정이 생기는 과정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이를테면 똑같은 엄마 생각이라도 엄마와의 기억을 잘 상상하면 더 눈물이 나더라고요. 얼마 전에 뇌과학 박사 정재승 선생님이 공연을 보러 오셔서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감정은 우리 뇌에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인데, 단 한 부분 감정과 연결되어 있는 게 바로 기억이에요.” 그 말씀이 제 경험과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굉장히 놀랐어요. 결국 ‘사람’인 것 같아요. 연기는 사람에 대한 탐구이고, 계속 탐구하는 그 과정이 되게 행복해요.
GQ 재미라는 건 새로움을 수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시들해질 수도 있잖아요. 재미를 시들지 않고 신선하게 감각하기 위해 특별히 하는 노력이 있어요?
HJ 8년째 108배를 하고, 명상을 해요. 꼭 먹어야 하는 밥처럼 매일매일. 한 날과 안 한 날이 100퍼센트 달라서 할 수밖에 없게 돼버렸어요. 그래야 내가 정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더라고요. 지금 하는 공연에 이어 다음 공연도 준비하고 있는데, 그 중간중간에 예상치 못한 작품 홍보 활동도 있어서 사실은 몸이 너무 힘들어요. 좋아하고 행복하다고 한 작업도 번아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서 이럴 때일수록 명상을 하고 몸을 잘 챙기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GQ 바쁜 와중에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연극을 계속하고 있잖아요. 무뎌지지 않기 위해, 비우고 소진된 것을 채우기 위해, 혹은 연극 그 자체의 기쁨 때문에. 이희준이 연극을 계속하는 이유는 어디에 가장 가까운 것 같아요?
HJ 후자예요. 주어진 역할의 주어진 대사를 준비해 가서 내 역할에 보다 초점이 맞춰진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연극은 모두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함께 만들어나가는 작업이니까요. 상대 배우도 내 역할에 아이디어를 줄 수 있고, 후배가 선배에게 아이디어를 줄 수도 있고요. 공연에서는 어떤 배우가 더 돋보이기보다는 모두가 잘 보여야 하고, 그러면서 상대방이 잘 돋보이게 서로 도우면서 해야 공연이 아름다워지니까, 그런 과정이나 태도가 너무 좋아요. 가장 좋은 건 두 달간 리허설을 하면서 실패해볼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 지금 두 달째 공연하고 있는데 같은 공연이라도 매일매일 다르거든요. “밥 먹자”를 열 번 말하면 그 열 번이 모두 다른 것처럼요. 대사는 똑같아도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매일 완전히 다른 공연이 되는 것 같아요.
GQ 매일 다르다는 것은, 매일 더 나아진다는 걸까요?
HJ 글쎄요. 무엇이 더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더 나아진다기보다는, 매일 새로운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GQ 실패해본다고 한 말이 인상적으로 들리네요. 실패를 각오하는 것처럼 느껴져서요. 실패한다가 아닌, ‘실패해본다’는 건 이희준에게 어떤 의미예요?
HJ 그 길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시간이에요. 연극 연습하면서 머릿속 상상으로는 다 알 수 없는 것들을 충분한 실패를 통해 알 수 있어요. 이를테면 여기 앉아서 대사를 하면 지루하겠구나 하는 건 실제로 앉아서 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는 거니까요. 사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실패할 시간이 없어요.
GQ <핸섬가이즈>의 남동협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더라고요. “이성민 배우가 어떤 톤을 뽑아내든 이희준 배우가 거기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딱 맞는 리액션을 즉흥적으로 보여줬다”
HJ 그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 현장에서 특히 성민 형님한테 많이 배웠어요. 감독님이 어떤 요구를 하든 100퍼센트, 120퍼센트 그 상황에 바로 실현하려고 애쓰시는 모습을 보며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런 면에서 좀 생각이 많은 편이에요. 왜, 어떤 의도로 이런 말씀을 하실까? 뭘 원하시는 걸까?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거든요. 그 이유가 납득이 돼야 움직일 수 있고요.
GQ ‘Why’가 중요하군요.
HJ 맞아요. 그런데 최근에 < SNL > 촬영해보니 거기는 이유 따위 아무것도 없더라고요.(웃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무언가를 하는 데는 이유, 개연성을 갖고 연기를 해왔는데 그게 없으니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마치 농구공을 신성시하는 농구선수에게 “발로 차, 발로 차도 돼”라고 하는 느낌?
GQ 그렇다기에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셨단 말이죠. 특히 지하철 신이 엄청난 명장면이 된 거 아시는지.
HJ 그 신이 가장 개연성이 없었는데, 반응을 보고 저도 좀 놀랐어요. 여기는 원래 이렇게 하는 건데, 내가 너무 진지하게 한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유가 없어도 되는 곳에서 괜한 이유를 찾은 거죠.(웃음)
GQ 최근 을 비롯해 그 전에는 피식대학 <야인시대 외전 오디션>, 그리고 최근엔 <피식쇼>를 찍었다고요? 고봉수 감독의 영화에 자진 출연한 대목에서도 짐작했지만, 코미디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보입니다.
HJ 코미디 좋아해요. 피식대학 친구들도 좋아하고, <개그콘서트>도 엄청 많이 봐요. 개연성 없이 웃기는 것보다는, 연기를 잘해서 웃기는 걸 좋아해요.
GQ 스스로 좀 웃긴다고도 생각하시나요?
HJ 글쎄요. 저는 웃긴다고 생각하는데. (남들은 어떻게 볼지) 잘 모르겠습니다.
GQ 코미디 연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HJ 찍으면서 저희가 재밌어야 되는 것 같아요. 서로 편해야 농담과 위트, 장난을 할 수 있으니까.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GQ 이번에 맡은 상구 역 설명에 ‘섹시 가이’라고 쓰여 있던데, 혹시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HJ 없어요.(웃음) 저는 좀 무식해요. 그래서 맷 데이먼, 에드워드 노튼 같은 지적인 배우를 좋아했고, 책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어요. 손석구를 보고 섹시하다고 느낀 적은 있는데, 저는 아니에요.
GQ 첫 질문에서 말한 배우가 바로 손석구입니다.(웃음) 그래서 이희준이 이해한 <핸섬가이즈>의 상구는 어떤 사람이에요?
HJ 다들 행복했으면 하고, 안 싸웠으면 하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 싸움에 트라우마도 많고요. 자신 때문에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사람.
GQ 그리고 순정남. 영화 개봉이랑 생일이 단 3일 차인데, 특별한 계획 있어요?
HJ 마흔여섯이라, 이제 생일은 특별한 계획 같은 거 없어요. 아마 동네 사람들 불러서 맛있는 거 먹겠죠? 그런데 출연작 중 극장 개봉은 오랜만이라 감회가 새롭네요. 아무래도 영화를 사랑하니까, 극장에 대한 향수가 있거든요.
GQ 직접 연출하고 연기한 영화 <병훈의 하루>를 찍고 난 직후에는 차기작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지금 두 번째 영화의 촬영을 다 마친 상태라고요?
HJ <병훈의 하루> 끝나자마자 바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썼어요. 쓴 지 한 5년 됐어요. 지난달인가, 안 찍으면 후회하겠다 싶어서 바로 찍었죠.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대학살의 신>을 굉장히 좋아해서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우리나라엔 없잖아요. 제가 보고 싶은데 아무도 안 만들 것 같아서 제가 썼어요. 지금은 없어졌는데 BH에 대본을 읽어주는 팀이 있었거든요. 배우들에게 들어오는 대본을 1차로 거르는 팀이었는데, 제 이름을 빼고 제 대본을 보내봤어요. 그랬더니 혹평을 엄청 하던데요. 아하하하. 상업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GQ 상처 안 받았어요?
HJ 이러이러해서 의미가 없고, 그러그러해서 별로라는 피드백을 받았는데, 그게 제가 다 의도했던 거라서 오히려 기분이 좋았어요. 반대로 도움이 됐죠.
GQ 작품 제목 <직사각형, 삼각형>은 무슨 뜻이에요?
HJ 종이 있으세요? (A4 용지를 받아서 3등분으로 접어 옆면을 삼각형으로 만든다.) 이렇게 정면을 보면 직사각형이고, 옆에서 보면 삼각형이잖아요. 이게 직사각형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이거 삼각형이잖아”라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고 그러겠죠. 그런데 각자가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을 인정하면 오해하고 싸울 일이 없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연극 <그때도 오늘>도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고요.
GQ 이희준이란 배우를 도형으로 표현한다면 어떨까요?
HJ (한참 고민) 공이고 싶어요. 마사지 볼. 요즘 마사지 볼을 갖고 다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발로 밟기도 하고 등도 문지르고 그러거든요. (가방에서 다양한 마사지 볼을 주섬주섬 꺼낸다.) 만져보세요. 마사지 되죠?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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