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안의 감각은 바다를 건너 여행한다.
킬리안 파리의 신제품 ‘임페리얼 티’는 중국 황실의 전통과 지역 문화에서 재료를 따왔다. 여행의 영감과 고유의 미학이 만나 또 하나의 매혹적인 향수가 탄생했다. 제품 출시를 기념해 한국을 찾은 창립자 킬리안 헤네시. 퍼퓸 바 콘셉트의 팝업 스토어와 ‘킬리안 파티 인 서울’ 이벤트로 대중과 만났으며, 바쁜 일정 사이, <지큐>와의 인터뷰에서 향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시간과 바다를 가로지르는 감각의 힘. 부드러운 억양과 세밀한 서사를 지닌 그가 자신이 사랑해온 것들에 대하여 말한다.
GQ 당신의 오랜 과거로 가볼게요. 어린 시절 갈망하던 자유가 있었나요?
KH 제 성(last name)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어요. 헤네시라는 이름을 걸친다는 건 알다시피 무거운 일이잖아요. 하지만 갖고 태어난 성에서 도망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보다 더 유명한 이름(first name)을 갖는 것이겠죠.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한 점이 독특합니다. 킬리안 파리의 향수 네이밍을 보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요. 문학도라는 배경이 조향사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브랜드를 시작할 당시, 니치 향수 업계는 단순히 성분 이름으로 네이밍하는 게 유행이었어요. 같은 재료를 써도 다르게 표현해야 하는데 그런 방식을 볼 수가 없었어요. 시장엔 장미향이 널렸지만 제가 원하는 장미는 어떤 종류인지 마음속에 그려지는 서사가 필요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고, 향수 이름을 지을 때도 성분과 향에서 연상되는 감정을 표현하면서 조향을 했어요. 영감은 무수히 많은 공간에서 옵니다. 클림트의 페인팅을 보고 ‘우먼 인 골드’를, 이스탄불 언덕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인톡시케이티드’를, 방콕의 디저트를 맛보면서 ‘문라이트 인 헤븐’을 떠올렸죠.
GQ 게다가 프랑스인은 문학을 사랑하는 걸로, 다독하는 걸로 유명하잖아요. 당신 마음속 1호 작가와 문장은요?
KH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와 “우리는 사물에 동의했기 때문에 단어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Il ne faut pas craindre les mots parce qu’on a consenti aux choses)”라는 문장을 가장 좋아합니다. 단어가 있기 전 사물이 존재한다는 말이에요. 관념보다 존재가 먼저라는 거죠. 킬리안 파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해석과 상상을 즐기길 바라는 제 기대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GQ 향수를 유혹의 무기, 동시에 보호의 갑옷이라고 칭한 당신의 해석이 생각납니다.
KH 우리는 낮보단 밤에 향수를 더 많이 뿌리는 것 같아요. 타인이 내게 매력을 느끼길, 향수가 내 매력의 일부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반면 출근하는 아침엔 이런 ‘매혹 모드’를 잠시 꺼둡니다. 회사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 한요. 저 개인적으로는 외출 전 향수를 뿌리면 버블이 나를 감싸는 기분이 들어요. 나와 외부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방패 같은. 밤에는 타인과의 거리를 좁히고 상대를 나의 세계로 끌어당기는 역할이라면, 낮에는 타인으로 하여금 내 영역을 침범치 못하게 하는 것이 향수입니다. 향수병의 옆면에 방패 모티프 문양을 음각한 이유기도 합니다.
GQ 향수 말고 당신을 매혹하는 것이 있나요? 이를테면 위스키, 식물, 요리처럼 코로 감각할 수 있는 것 중에서.
KH 당연히 꽃이죠. 집 안 모든 곳에 둡니다. 신제품 준비 기간에만 예외적으로 칼라 릴리같이 향기 없는 꽃을 놔요. 깨끗한 후각 환경을 유지해야 해서요. 평소엔 튜베로즈를 사랑해요. 장미도요. 아, 와인 냄새도! 매일 밤 레드 와인을 마셔요. 보르도 팬은 아니고 부르괴이 쪽을 선호합니다.
GQ 수많은 꽃 중 이번엔 재스민을 선택했고요.
KH ‘임페리얼 티’를 뿌리는 사람이 차 베이스의 다른 향수들과 차이를 느꼈으면 해요. 보다 진실에 가까운 향수입니다. 중국 여행에서 경험한, 선물 상자에 든 차의 향을 재현하는 데서 시작됐어요. 약간의 여성성에 거칠면서도 럭셔리한 느낌을 내고자 재스민 앱솔루트(농축된 향료)를 더했습니다. 차라는 환상을 심지만 실제 찻잎의 냄새가 나진 않죠.
GQ “럭셔리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라 한 기존 정의에 추가된 내용이 있나요?
KH 럭셔리란 경험하는 것. 브랜드가 독특하고 새롭고 설레는 경험을 제공하지 않으면 대중에게 럭셔리로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감각을 인지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일입니다. 이번 팝업 스토어를 바 콘셉트로 준비한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믹솔로지스트가 만든 칵테일처럼 후각과 팔레트에 따라, 취향에 맞는 향기를 발견할 수 있길 바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