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까르띠에 이미지, 스타일, 헤리티지 디렉터 피에르 레네로와의 인터뷰

2024.06.14박나나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그 너머의 천천히 흐르는 어떤 것.

GQ 우선 <지큐> 독자들에게 당신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까르띠에 서울 전시를 앞두고, 이 전시를 기획하고 책임진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다들 크니까요. 2003년부터 당신이 까르띠에에서 맡고 있는 직책인 ‘이미지, 스타일, 헤리티지 디렉터’란 타이틀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어요?
PR 저는 까르띠에 이미지, 스타일, 헤리티지 디렉터 피에르 레네로입니다. 타이틀처럼 많은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직무는 스타일과 관련된 것이에요. 까르띠에에서 스타일에 관해 논할 때는 헤리티지를 빼놓을 수 없거든요.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거죠. 아마 다른 브랜드에는 없을 고유하고 독특한 포지션일 거예요. 그만큼 까르띠에는 브랜드의 존재와 제품 면면에 스타일과 헤리티지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GQ 첫 커리어가 오길비& 매더 광고 회사였죠.
PR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게 있어요. 저는 경영대학원을 졸업했지만 그건 실수였지 싶어요(웃음). 예술사에 더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에콜 뒤 루브르에 가서 예술사를 배웠죠. 이후 경영대학원에서 제안한 직종을 다 거부하고 광고 분야로 진출했습니다. 광고와 커뮤니케이션을 선택한 이유는 문화, 심리학, 사회심리학을 고려한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게 첫째였고, 인간과 문화를 모두 다룬다는 점에서 광고가 아주 흥미로웠기 때문이에요.
GQ 인문학에도 관심이 많으시죠? 이번 전시를 보니 단순히 까르띠에 주얼리 제품을 소개하기보다는 다른 문화, 문명과 관련된 어떤 지점을 보여주려 한다는 걸 느꼈어요.
PR 저에겐 주얼리가 지닌 예술적 차원을 대중과 공유해야 하는 임무가 있어요. 그래서 전시를 통해 많은 사람과 상냥하게 소통하고 싶었고요. 스기모토 히로시와 신소재연구소의 공동 창립자인 사카키다 토모유키를 통해 더 깊고 넓은 메시지를 온건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뭐랄까, 어떤 면에서는 거의 철학에 가까운 메시지였어요.
GQ 그럼 이번 전시의 주요 포인트는 예술과 철학이겠네요.
PR 처음엔 예술이었고 점차 철학에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GQ 까르띠에 이탈리아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디렉터로도 일했죠. 도시별로 까르띠에 고객들의 특성이나 요구가 달랐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PR 도시별 차이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도시마다 각자 라이프스타일과 문화가 다 다르죠. 저는 이게 오히려 좋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에 문화적 풍성함과 즐거움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차이 때문이니까요. 하지만 세대, 지역, 문화의 경계를 넘는 공통된 관점도 있습니다. 바로 아름다움에 관한 것이에요. 까르띠에는 아름다운 오브제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진솔한 얘기를 줄곧 전했어요. 이번 전시에서 스기모토 히로시가 만든 타원을 우리는 하나의 세계(One World)라고 부르는데, 이것도 결국 같은 맥락입니다.

전시장 내 트레저 피스 파트 ©Cartier ©Victor Picon

GQ 까르띠에처럼 성공한 브랜드도 리더들이 파악하는 약점과 위협 요소는 있겠죠?
PR 어려움은 물론 있어요. 창의적인 부분은 명확히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인데요. 까르띠에 제품을 고객들이 이해 못하거나 완전히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은 늘 있어요. 저명한 주얼러이자 유명한 워치 메이커이며, 가죽 제품과 오브제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브랜드니까 그런 어려움은 타고난 셈이고요. 게다가 독보적인 독창성까지 지녔으니 그 풍부한 창의성을 전달해야 하는 도전 과제가 있는 셈입니다. 이건 약점일까요, 아닐까요? 알 수 없습니다(웃음).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까다로운 과제라는 점은 맞습니다.
GQ 서울 전시의 주제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 역시 헤리티지와 연관이 깊습니다.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까르띠에의 예술 전시’ 이후 서울에서는 두 번째죠. 2008년과 2024년, 16년의 세월이 있습니다. 그사이 까르띠에 헤리티지는 당연히 더 쌓였지만 서울은 어떨까요.
PR 개인적으로는 한국에 더 익숙해졌어요. 그사이 주기적으로 여러 번 왔었거든요. 동네 구경도 많이 했고요. 한국은 정말 재미있는 나라예요. 고향에 온 것처럼 편한 건 왜일까요(웃음). 사람들은 궁금하면서도 친절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죠. 아주 조용하고 여유로운 도시고요. 그러면서도 굉장히 현대적이에요.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모순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을 사랑하고, 즐기고, 맛있는 것들을 먹고, 라틴어의 ‘카르페디엠(Carpe Diem)’처럼 다가오는 나날을 즐기겠다는 여유를 다들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에 있으면 굉장히 기분이 좋아지고,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GQ 온지음과의 협업은 어땠나요. 이번에 한국의 헤리티지를 전시에 녹여낸 방법은 참 아름다웠죠. 세노그라피에 한지, 장판 등을 사용하고 옛 직물인 ‘라’를 복원했고요.
PR 온지음과의 협업도, 한국 작품을 전시하기로 한 것도 전부 스기모토의 생각이었습니다. 스기모토와 사카키다는 한국과 공감할 수 있는 전시회를 선보이려고 했고, 온지음과의 협업은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어떤 까르띠에 작품을 전시할지에 대해서는 논의했지만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건 큐레이터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까르띠에 작품을 통해서 그 속에 있는 의미와 매력, 장인 기술, 젬스톤 자체가 지닌 특별한 부분을 전달하는 것을 맡고, 관람객들과 더 좋은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쉽게 소통하는 것은 전적으로 스기모토의 큐레이션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전시장 내 챕터 1 뚜띠 프루티_ 파트 ©Cartier ©Victor Picon

GQ 헤리티지를 담당하는 입장으로서, 이번 전시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한국 유산이 있었나요?
PR 장인정신과 다양한 기법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챕터 1 공간에는 온지음이 발견한 한국의 패브릭이 전시되어 있어요. 전통 장인 기술에 주의를 기울이고, 생명력을 불어넣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아이디어가 참 대단하죠. 까르띠에의 제품이 어떤 식으로 전통적인 요소를 통합하고,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요소를 받아들여 발전해 나가는지 생각해보면, 온지음과 까르띠에의 창작 방식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GQ 전시는 소재의 변신과 색채, 형태와 디자인, 범세계적인 호기심. 이 3가지 챕터로 구성됩니다. 이 중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챕터는 어떤건가요?
PR 전시를 3가지 챕터로 나눈 이유는 전시 관람의 편의성 때문입니다. 챕터를 나눴으니 관람객이 까르띠에의 방식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모든 챕터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챕터는 없어요. 3가지 챕터를 통해서 설명하고자 하는 최종 목표는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형태, 형상, 양식의 창조입니다. 결국 모든 챕터가 아름다운 오브제를 만들기 위한 까르띠에의 목표를 설명하는 것이죠. 먼저 소재와 컬러, 두 번째 챕터에서는 영감이 형상화되는 방식을 다루고, 세 번째 챕터에서는 문화와 자연을 다뤄요. 챕터를 모두 보셔야 까르띠에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어요(웃음).
GQ 까르띠에가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소재는 없다는 얘기가 있죠. 하지만 아직 모르는, 알려지지 않은 어떤 여지나 상상 속의 무엇일 수도 있는, 꿈꿔왔지만 여태 이루지 못한 것이 있을까요?
PR 소재를 선별하는 기준은 최소한 2가지 관점에서 맞아야 하는데요. 하나는 미학이고,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 표현은 아니지만 편의성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즉, 편안한 착용감, 가벼운 무게, 인체공학적인 디자인, 그런 것들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소재의 진귀함과 고급스러움에 대해서도 항상 생각해야 하고요. 여기에 장인 기술의 수준도 탁월해야 합니다. 제 꿈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누구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젬스톤을 발견하고 싶습니다(웃음). 탄자나이트나 모르가나이트와 같은 젬스톤은 상당히 최근에 발견했어요. 새로운 컬러의 투르말린도 찾았고요. 그러니까 어느 날 제가 실제로 발견할 수도 있죠!

전시장 내 챕터 3 전경 ©Yuji Ono

GQ 그렇다면 당신이 발견한 뉴 젬스톤의 디자인 모티프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요. 동물이나 자연, 어쩌면 우주가 될 수도 있겠죠.
PR 어떤 디자인이든 가능합니다. 유니크 피스 같은 경우에는 젬스톤에서 영감을 받기도 합니다. 손에 젬스톤을 들고 있으면 ‘동물 디자인에 통합할 수도 있겠다’, ‘기하학적인 구조 안에 넣을 수 있겠다’는 상상을하염없이 하게 됩니다.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는 알 수 없죠. 이건 까르띠에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까르띠에는 추상, 구상, 양식화, 해학과 같은 다양한 표현 영역에 활짝 열려 있죠. 그러니까 실제로 젬스톤을 쥐어 봐야만 영감과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GQ 이미지와 스타일 디렉터이기도 하니 묻고 싶네요. 5월의 서울, 젊은 남자에게 권하고 싶은 까르띠에의 시계와 주얼리가 있을까요?
PR 마침 에디터께서 까르띠에 탱크를 차고 있군요. 제가 생각하는 탱크는 가장 순수한 디자인의 시계입니다. 아주 심플하죠. 처음 봤을 때 이런 게 바로 디자인이구나 싶었고요. 수십 년 전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저를 꿈꾸게 하고, 컬렉션에서 가장 좋아하는 제품이기도 해요. 그렇지만 까르띠에는 탱크뿐 아니라 산토스, 똑뛰 등 모든 시계에 간결한 디자인이라는 원칙을 적용하고, 덕분에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습니다. 가장 간결한 것이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는 법이니까요. <지큐> 독자들께는 본인이 원하는 것을 우선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드리고 싶습니다. 원하는 걸 자유롭게 선택하고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남성성에 대한 오래된 생각도 버려야죠. 까르띠에는 ‘좋은 디자인은 성별의 경계를 뛰어 넘는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름다움 앞에 구분이나 차이는 무의미해요.
GQ 결국 이번 전시를 통해 전하고 싶은 스토리는 아름다움일까요?
PR 맞습니다. 이번 전시는 창작과 아름다움에 대해 얘기합니다. 아주 현대적인 방식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