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는 눈에 보이게 하세요. 이렇게.

원데이클래스
친구랑 도자기 만드는 원데이 클래스를 예약했다. 친구가 다른 급한 일정이 생기는 바람에 어쩌다 보니 엄마랑 그 클래스를 가게 되었다. 처음엔 내가 무슨 도자기를 만드냐고 귀찮아하는 것 같더니 막상 가니까 엄마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더라. 엄마가 새로운 경험을 하는 일에 이렇게 열린 사람인지 몰랐다.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욕심내서 흙을 다듬고 집에 와서도 그 여운이 남는지 관련 클래스를 더 알아봐 달라고 했다. 나는 아직도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최유진, 32)
포토 부스
“휴대전화로 사진 찍으면 되는데 뭘!” 오랜만에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에 나와 아빠랑 커피를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길. 기분이 좋아 인생네컷 부스에서 즉석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아빠는 너 혼자 찍으라며, 느끼하게 무슨 사진을 찍냐고 하면서도 젊은이들로 북적북적한 내부 분위기에 놀란 것 같았다. 머리띠를 고르는 내 옆으로 다가와 웃기는 안경도 써보고 가면도 써보며 기뻐했다. 그날 찍은 우리 인생네컷 사진은 부모님 댁의 냉장고에 떡하니 붙어 있다. 다음에 또 찍으러 가야지. 최 욱, 35
영화 테마파크
가족끼리 떠나는 첫 해외여행. 코스를 짜면서 영화 테마파크 일정을 슬그머니 넣었다. 동시에 이게 부모님께 괜찮을까 우려가 됐다. 어린이들이나 좋아할 놀이동산에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다니, 혹시 몰라 일정은 반나절로 잡았다. 어머니, 아버지가 지루해하는 기미가 보이면 바로 숙소로 돌아와야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도착한 우리는 저녁 일정을 취소해야 했다. 영화를 즐겨 보던 청년 시절의 추억으로 돌아간 두 분은 열 걸음에 한번 꼴로 기념사진을 요청했고 기념품 가게에서 사 갈 물건을 고심해서 골랐다. 내가 또 이렇게 가족을 몰랐네. 김현진, 26

대형 카페
아빠는 평소 사람이 붐비는 곳을 싫어한다. 이벤트나 행사, 페스티벌 모두 질색이다. 병문안을 위해 서울 외곽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카페를 들렀다. 급하게 내비게이션 검색을 이용하느라 몰랐는데 도착하고 보니 대형 카페였다. 사람이 많아서 아빠가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지 고민이 됐다. 햇살이 쏟아지는 통창에 3층, 널찍한 테이블과 가득찬 사람들, 베이커리와 케이크류가 늘어선 매대를 지나 주문을 하러 가는 내내 아빠 눈치를 봤다. 날씨 좋은 주말이라 데이트하는 연인과 가족들로 카페가 붐볐다. 테이크아웃 할까. 아빠는 연신 주변을 둘러보더니 자기 몫으로 달콤한 커피를 주문해 달라고 했다. 자리를 찾아 앉아서는 말했다. “요즘 애들은 다 이런 데서 커피 마시나 봐. 분위기 죽이네.” 민용신, 30

호캉스
엄마는 가성비를 엄청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 세 남매가 무리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건 엄마의 생활력 덕분이었겠지. 문제는 모두가 독립한 지금도 매사에 가성비만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엄마가 특히 아끼는 것은 숙소와 밥값. 매번 “집에 가서 먹으면 되지 돈 아깝게.”, “뭘 돈을 내고 남의 집에서 자냐? 집에서 자면 공짜인데!” 라며 산통을 깬다. 엄마 환갑 기념으로 호텔을 예약했다. 엄마가 아무리 물어도 절대 방값을 말해주지 말아야지. 체크인과 동시에 엄마의 정신을 쏙 빼놓기 위해 호텔 카페, 도서관, 수영장, 헬스장, 마사지룸, 스파를 보여줬다. 아침 요가와 다도 프로그램도 등록해줬다. “호텔 예약하면 밥은 공짜야.” 조식을 먹으며 엄마 표정을 살폈다. 의외로 만족한 표정? “되게 나 공주 된 것 같다. 이런 날도 있네.” 얘들아. 엄마도 민박 말고 친척 집 말고 감성 숙소 좋아한다. 고신형,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