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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도 신어도 돼요? 올여름 트렌드, 발레 스니커즈 진짜 맞음

2025.05.21.조서형, Tres Dean

발레의 도약 동작처럼, 발레 코어가 올여름을 가볍게 누빌 예정이다.

Photographs: Brands; Collage: Gabe Conte

차세대 스니커즈 트렌드를 예측하는 일은 늘 도박과도 같다. 물론 브랜드들은 특정 실루엣에 수백만 달러의 마케팅을 쏟아붓지만, 어떤 스타일이 실제로 유행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때론 아무런 이유 없이, 혹은 특정 유명인이 특정 신발을 특정 순간에 착용했기 때문에 트렌드가 시작되기도 한다. 혹은 트렌드를 쫓는 피로감이 극에 달하면서 단순한 블랙 앤 화이트 스니커즈가 오히려 각광받기도 한다. 지난 몇 달간 우리는 ‘그랜드파 슈즈’의 부상을 지켜보며 문화의 방향을 가늠해왔지만, 흥미로운 통계는 지금 스니커즈 신에 또 다른 흐름이 도래했음을 시사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지금은 바로 발레 스니커즈의 시즌이다.

요즘 트렌드에 발맞추려면 새틴 소재의 발레 플랫 슈즈를 당장 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원한다면 말리지 않겠다. 리본을 맬 준비가 됐다면 그렇게 하자. 여기서 말하는 ‘발레 스니커즈’란, 발레 슈즈의 미니멀한 구조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스타일의 운동화다. 슬림한 갑피가 발에 착 감기고, 아치 지지대가 강조되며, 밑창이 얇다. 그랜드파 슈즈의 미학적 정반대쯤 되는 셈이다.

이 트렌드의 중심에 있는 신발은 아디다스와 배드버니가 협업해 만든, 이름도 딱 맞는 발레리나 모델이다. 아디다스 태권도에서 시작해, 발레 플랫 슈즈의 요소들을 가미한 이 독창적인 실루엣은 배드 버니의 기존 협업작 중에서도 유례없는 성공을 거뒀다. 배드버니 즉 베니토라는 이름이 붙은 아이템은 대체로 빠르게 매진되지만, 이번 발레니나는 특히 세 가지 컬러웨이(블랙, 화이트, 브루스 리를 연상시키는 골드)에 대한 열기가 뜨거웠다. 트렌드가 유명인의 신발 선택만으로 좌우되진 않지만, 세계 최대의 슈퍼스타 중 한 명이 이 새로운 스타일에 공식 인증을 보냈다는 점은 확실히 한몫했다.

앞서 언급한 태권도 모델도 이번 트렌드의 수혜자다. 원래는 말 그대로 태권도용 신발이었지만, 그 실루엣은 발레 스니커즈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기능적인 면에서도 발레 슈즈와 유사한 목적을 지닌다. 발에 밀착되고 지면과 가까운 착화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어찌 보면 태권도도 ‘남자를 위한 발레’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디다스는 이 유사점을 활용해 태권도를 더 미니멀하게 변형한 메이 발레 모델도 선보였다. 이 신발은 발등이 많이 드러나는 갑피와, 발목을 감쌀 만큼 긴 끈을 사용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발레 스니커즈 시장은 아디다스만의 무대가 아니다. 푸마와 오니츠카타이거도 각각 스피드캣 발레, 멕시코 66 발레 모델을 출시하며 트렌드에 합류했다. 이 두 브랜드는 기존 인기 모델의 갑피를 얇게 만들고, 끈 대신 스트랩으로 교체해 발레 친화적인 디자인을 완성했다. 두 모델 모두 여성용 사이징으로 출시됐지만, 이런 트렌드를 즐기고 싶다면 사이즈 구애는 접어두는 게 좋다. 참고로, 푸마의 스피드캣 자체도 지난 1년간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비록 본래는 모터스포츠에서 유래했지만, 미니멀한 발레화 스타일과 디자인 철학을 공유하며 전반적인 시장의 ‘심플 & 슬림’ 지향성과 맞닿아 있다.

다른 브랜드들도 발레화의 영향력을 더 창의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살로몬은 샌디리앙과의 협업을 통해, 기존 스피드크로스 3의 전통적인 끈 시스템을 두꺼운 리본으로 대체했다. 브랜드 고유의 미학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발레 모먼트’에 합류한 방식이다.

말뿐이 아니다.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한다. 리셀 시장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겠지만, 스톡엑스는 여전히 스니커즈 트렌드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유효한 플랫폼이다. 스톡엑스에 따르면, 배드 버니 발레리나 모델 출시 시기인 2월부터 3월 사이에 이름에 “발레” 또는 “발레리나”가 들어간 신발의 판매량이 무려 1,000% 이상 증가했다. 단기간 내 수많은 제품이 판매된 셈이며, 이만하면 충분히 주목할 만한 흐름이다.트렌드는 트렌드일 뿐, 발레 스니커즈가 잠깐의 유행인지, 올해 내내 지속될 진짜 물결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최근 몇 년간 반복 재탕된 복각 제품들과 억지스러운 협업들로 침체된 스니커즈 신에서, 이건 확실히 신선한 변화다. 발레 스니커즈는 슬림하고, 섹시하며, 재밌다. 전통적으로 여성적인 신발로 여겨졌던 스타일을 남성복 중심의 스타일링에 자연스럽게 접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부담 없이, 누구나 신을 수 있다. 백조의 호수 오디션을 보지 않아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