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멀쩡한데 기분만 계속 가라앉는 날, 체온계를 꺼내보자. 생각보다 많은 감정의 실마리가 체온과 얽혀 있을지도 모른다.

감정의 온도, 체온에 기록된다
UC 샌프란시스코 연구팀은 약 2만 건에 이르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우울 증상이 심할수록 평균 체온이 높아지고 하루 동안의 체온 변동 폭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감정과 자율신경계, 체온 조절 기능이 뇌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나 부수적 현상이 아니라, 뇌가 감정 상태를 체온으로 표현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몸의 자가 냉각 기능이 무너지면
우울은 종종 뇌와 몸 사이의 조율 실패로부터 시작된다. 스트레스나 우울함이 쌓이면 자가 냉각 기능이 저하되고, 몸은 불필요하게 높은 체온 상태를 유지한다. 문제는 이 체온이 다시 감정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결국 체온은 신체와 감정이 서로를 자극하는 ‘악순환의 회로’가 되기도 한다.
뜨거운 물이 기분을 식힌다
높은 체온이 감정 상태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찬 물에 몸을 담가야 할 것 같지만 반대다. 오히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 체온 안정에 도움이 된다. 40도 온탕에서 주 2회씩 8주간 목욕한 사람들은, 같은 기간 운동을 한 사람들보다 우울 지수가 더 크게 낮아졌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고열 자극은 뇌에 ‘이제 열을 식혀야 한다’라는 신호를 보내며, 자가 냉각 시스템을 작동시켜 이후에는 오히려 안정된 체온 상태를 유지하게 돕는다. 기분 역시 이 과정에서 함께 가라앉는다.
냉수 샤워가 효과를 볼 때
냉수 샤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분을 끌어올린다. 짧은 시간의 찬물 자극은 교감신경을 자극하고, 아드레날린, 노르에피네프린, 엔도르핀 같은 각성 호르몬을 분비해 잠시라도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고 기분을 반전시킨다. 2016년 네덜란드 연구에서는 30초 냉수 샤워만으로도 삶의 활력과 만족도가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찬물은 일종의 ‘신경계 리셋 버튼’인 셈이다.
평소와 감정 상태가 다르다면 체온을 한번 재보자
체온 변화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신호다. 기분이 이유 없이 흐릿할 땐, 체온을 한번 재보자. 그리고 필요하다면, 뜨거운 물이든 찬물이든 작은 온도의 변화로 하루의 결을 바꿔보자. 기분이 축 처지고 잠이 오지 않는 밤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가보자. 반대로 하루를 시작하기 힘든 아침엔 짧은 냉수 샤워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의도적인 체온 변화’가 뇌에 새로운 감각 자극을 준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