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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잘까? 따로 잘까? 침대가 좁아도 나는 이렇게 한다

2025.06.25.조서형, A.J. Daulerio

우리 부부가 분리수면을 하지 않는 이유?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나를 부모의 침대에서 쫓아냈고 나는 힘든 시기를 겪었다. 내 아이들에게 그런 감정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

Kelsey Niziolek; Getty Images

내가 네 살에서 여섯 살 무렵엔 악몽을 심하게 꿨다. 옷장 안에 괴물이 있다고 믿었고, 벽 속엔 유령이 있고, 죽은 사람들이 내 위에 누워 있다고 느꼈다. 나는 엄마를 부르며 울었고, 엄마는 방으로 와 나를 안아줬다. 아침까지 불을 켜둬도 된다고도 했다. 그러다 아홉 살이 되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잠자리에 들기 전 공황발작을 겪었고, 밤에는 주기적으로 멘붕 상태에 빠졌다. 부모님의 방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며 같이 자도 되냐고 묻곤 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너무 컸다. 엄마는 가끔 내게 침대 옆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아주기도 했지만, 부모님은 점점 지쳐갔고,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버지가 개입했다. 그는 엄마에게 더는 나를 도와주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나는 강제로 철이 들어야 했다. 부모님은 어디선가, 아마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책에서 내가 분리불안을 겪고 있다고 받아들였고, 아버지 눈엔 그건 세상에서 가장 한심하고 유약한 불안 증세였다. 부모님은 나를 소아정신과에 데려갔고, 의사는 그냥 참아내게 두라고 조언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일찍 자라고 하고, 따뜻한 우유를 마시게 했고, 불안을 느낄 때 스스로 되뇌라는 주문을 여러 개 알려줬다. 어느 것도 효과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부모님 침대에 들어가려 했지만, 그들은 문을 잠그기 시작했다. 나는 침실 문 앞 복도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기도 했다. 한 번은 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와 소리쳤다. “방으로 돌아가서 자, 이 자식아!” 그러곤 다시 문을 쾅 닫고 잠가버렸다.

우리 부부에겐 일곱 살, 여섯 살, 다섯 살짜리 아이 셋이 있다. 첫째는 제대로 수면 훈련을 하지 않았다. 처음 낳은 아이라 너무 귀여웠고, 우는 소리를 듣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냥 울기도 전에 안아 침대에 데려왔다. 가끔은 그 아이가 밤새 잘 자면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둘째는 쉽지 않았다. 울게 두고 방에 혼자 있게 했는데, 이것도 똑같이 힘들었다. 하지만 45분쯤 지나면 훌쩍이다가 어느 순간 코를 골며 잠들었다. 지금은 밤새 깨지 않고 자는 아이가 되었다. 졸리면 스스로 2층 침대로 올라가 자고, 아침엔 제일 먼저 일어나 옷 입고 아침을 먹는 아이다.

셋째는 2020년 2월에 태어났고, 한 달 뒤 RSV(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로 입원했다. 팬데믹 봉쇄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생후 한 달 된 아이가 상기도 감염으로 병원에 입원한 건 정말 무섭고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그는 가족 거실에서 무서운 발작을 일으켰다. 아내와 나는 너무나 충격을 받아, 지금도 “얘가 37살 될 때까지 우리 침대에서 자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지금 다섯 살인 이 아이는 여전히 신생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잔다. 우리는 거의 매일 셋이 같은 침대에서 잔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이 작고 소중한 아이. 우리는 이 아이를 제 침대로 돌려보낼 계획이 없다. 그가 겪은 발작은 대부분 밤잠 자는 중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침대가 조금 좁긴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1년 사이, 일곱 살 첫째도 수면 문제가 생겼다. 새벽 두 시쯤 깨서는 방에서 걸어 나와 우리 침대로 올라온다. 이 아이는 또래보다 크고 무겁다. 다리도 길고 발도 크다. 요즘은 일주일에 몇 번씩 네 명이 한 침대에 눕는다. 이론적으로는 킹사이즈 침대지만, 체감은 트윈이다. 배를 걷어차이고, 목을 맞고, 자다가 웅얼거리는 걸 듣거나 방귀 소리에 깨는 일도 다반사다. 나는 가끔 아내에게 “우리도 좀 편하게 자야 하는 거 아냐?”라며 불평한다. 우리 침대를 더 단호히 지켜야 하지 않냐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없다. 어린 시절, 잠을 잘 못 잤을 때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걸 떠올리면, 절대 내 아이들이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 갈 때까지 아버지가 무서웠다. 아버지의 발소리, 화장실 물을 트는 소리, 퇴근하고 열쇠로 문 여는 소리도 싫었다. 내 악몽의 원인은 괴물도 귀신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악몽이 되어 버렸으니까.

성인이 되어 아버지에게 내 수면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그는 이렇게 변명했다. “너를 독립적인 어른으로 키우기 위해서였어. 스스로 잘 수 있어야지!” 하지만 그 방식은 처참히 실패했다. 나는 성인이 되고도 혼자 침대에서 잠드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밤새 뒤척이다가 TV를 켜놓은 소파에서야 겨우 잠들곤 했다. 혹은 약을 먹고 강제로 잠들어야 했다. 나는 점점 더 불안하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버림받는 것과 관계 맺는 것 모두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고, 거의 모든 것에 대해 공포를 느꼈다. 지금은 수면제를 먹지는 않지만, 여전히 극심히 피곤해도 잠을 못 자고 제이슨 스타뎀 영화 같은 걸 노트북으로 보다 잠들 때가 많다.

치료는 나를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리페어런팅’이라는 개념을 통해, 나는 내 안의 아홉 살짜리 나를 돌아보고,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대부분은 사랑과 친절, 그리고 안전함이다. 나는 안전하다고 느끼고 싶다. 아이들이 우리 침대로 들어올 때, 가끔은 그들을 밀어내고 “겁쟁이처럼 굴지 마!”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그렇게 굴면 혼자 못 자는 어른이 될 거야!”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아버지가 내 눈 앞에서 문을 닫는 소리와 고함을 떠올린다.

나는 아이들이 안전하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길 바란다. 어쩌면 나는 이 아이들을 평생 우리 침대에서 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될 걸 나는 안다. 언젠가는, 아이들은 스스로 침대에 눕는 게 편해질 것이다. 그게 뭐가 급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