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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대출 횟수 0회, 첫 독자를 기다리는 책 10

2025.06.27.김은희

전지적 독자 시점.

첫 주자는 2023년 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이 개최한 <대출 0회 도서전>이다. 당시 부산대학교는 대출이 집중되는 베스트셀러와 달리 각광받지 못하는 도서를 조명하고자 대출 0회 도서 3백15권을 모아 전시했다. 이 얼마나 깜찍한 시도이자 이제서야 ‘도서관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한 책이 있다니!’ 깨닫는 몽매한 독자를 위한 우아한 회초리인가. 실제로 2025년 6월 1일 기준 서울 남산도서관은 소장서 45만4천2백50권 중 6만2천4백80권, 부산 다대도서관은 소장서 20만2백14권 중 6만4천9백70권이 단 한번도 독자 집에 놀러 가보지 못한 대출 0회 도서들이다. 특히 두 도서관을 기준 삼은 이유는 서울 남산도서관은 숲속에, 부산 다대도서관은 바다 앞에 자리하기에. 이 여름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치는 파도 앞에서 누군가의 첫 독자가 되어보시기를 바란다. 잠자코 기다리는 중인 다른 많은 책에 대면 여기 고른 10권은 눈썹 한 올 수준이다. 고르게 쓰다듬어줄 다음 손길은 여러분에게 맡긴다.

① 바다 앞 부산 다대도서관
부산 사하구 다대낙조2길 9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도보 5분 거리. 도서관 창문 너머 어디서든 바다가 틈틈이 보이지만 물결이 훤히 보이는 옥상에서 책을 읽어도 좋겠다.

<개를 잘 기르는 법>, 1988
전원 편집부 엮음, 전원문화사

전원 생활의 이모저모를 전하던 출판사 전원문화사의 책. 강아지별 성격부터 건강한 식단 설계, 문제 행동 해결 방법, 강아지와 함께 즐거운 생활을 하기 위한 팁이 담겨 있다. 개가 나를 잘 성장시키는 법이기도 할 책.

<있잖아, 꼭 말을 해야 돼?>, 1992
로이스 로우리, 산하

키가 큰 주근깨 소녀 열 살 아나스타샤의 시선이 담긴 미국 동화책. 변덕은 심해도 거짓말하면 배가 아파오는 진실한 아나스타샤는 녹색 노트에 자신만의 좋아하는 것 목록과 싫어하는 것 목록을 써 내려간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지만 정작 말로 꺼내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것 또한 배워가는 중이다.

<와아, 쓸 거리도 많네>, 1993
이오덕, 지식산업사

2003년 타계하기까지 40여 년간 초등학교 선생님이자 아동문학가로 맑은 글을 전했던 이오덕 선생의 책. “이런 모든 소리를 기계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 듣고, 그렇게 들은 것을 그대로 옮겨 적으면 그 글은 살아납니다.” 선생은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라고, 자기 말로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이 곧 좋은 글이라고, 날마다 겪는 평범한 일이 가장 좋은 글감이라고 썼다.

<글을 몰라 이제야 전하는 편지>, 2025
권정자, 김명남, 황지심 등 14인, 남해의봄날

자신이 먹고사는 일보다 일가족 먹여 살리느라 바빠 이제야 글을 배운 순천 할머니들의 편지글과 그림 모음집. ‘그리운 엄마에게’, ‘둘째 딸아 미안해’, ‘그리운 친구 김명례에게’···,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마음들에 편지 앞머리만으로도 먹먹해진다.

<이 집은 누구인가>, 2000
김진애, 한길사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상이 단절되며 집이라는 공간에 머물고 나서야 집이 단순히 먹고 자는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현대인이 많을 것이다. 그보다 20년 전에 ‘사람 사는 집이 어떻게 하면 따뜻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고찰한 건축가 김진애 교수의 책. “자기만의 구석”을 찾아 나간다.

② 숲속 서울 남산도서관
서울 용산구 소월로 109

서울 하얏트 호텔 근처 남산 공원 입구로 들어서서 전국 팔도에서 온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팔도소나무단지를 지나 백범관장 방향으로 숲길을 느긋이 걸어가면 중간쯤 남산도서관이 나타난다. 나무들이 품은 푸르고 선선한 공기가 정수리에 쌓인 먼지를 씻겨준다. 녹음 속에서 영영 앉아 있고도 싶지만 도서관에서 소월길 방향 출입구에 기다리고 있는 엉클조 소시지 가게에 들르는 일도 놓치면 곤란하다. 다독의 하루, 수제 소시지와 시원한 생맥주로 마무리하면 이보다 뿌듯한 완독이 따로 있을까.

<넥서스>, 2025
유발 하라리, 김영사

부제는 이러하다. 석기 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 챗GPT를 쏙쏙 뽑아 먹는 프롬프트를 어떻게 짜야 할까, 희번득하는 물음표들 앞에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근원을 돌아본다. 인공지능과 우리가 계속 대화할 수 있을까? 정보란 무엇일까?

<클래식 좀 들어라>, 2025
망둥어, 해달

제목 그대로 “클래식 좀 들어라”라고 가르치듯 말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하지만 들어보면 좋아할 거예요. 강한 제목과 달리 저자도 이런 마음을 담은 듯하다. 공부하는 대신 즐기고 감상하며 취향을 발견하길 바라는 염원을 담은 클래식 플레이리스트.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1999
박지원

<열하일기>를 남긴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문장가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엮은 책. 세상을 경험적 지식이나 감각,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얽매여 보지 말고, 차라리 눈을 감고 마음의 ‘평등안’으로 보라고 연암 박지원 선생이 18세기부터 말했거늘.

<민들레를 먹었어>, 2024
이유민, 다정자감

민들레를 후우 불어야 하는데 호옵하고 먹어버려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을 타고 떠오르게 된 민아의 이야기. 산, 바다, 사막, 달 모험을 떠나는 민아의 모험담을 담은 동화책에 붙은 당시 광고 문구: “오히려 좋아!”

<남자의 가계부>, 1990
옥형길, 보림

당시 23년간 농업과 녹지 분야에서 근무해온 공무원이자 월간 <문학공 간> 수필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한 문인 옥형길 선생이 10년 동안 기록한 용돈 지출서. 책 발간 후 인터뷰에서 수험생인 딸아이의 공부 뒷받침에 신경이 쓰일 때면 종이학을 접는다고 말했는데, 그 종이학이 어디 할 일 없어 접은 것일까. 1990년대 소시민의 사회생활 기록.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같고 어떻게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