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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다부터 칼하트까지,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사랑하는 브랜드 7

2025.11.03.송민우

작가들이 사랑하는 건 책뿐만이 아니었다. 오래 입어도 멋이 사는 칼하트, 정체성을 잃지 않는 프라다, 발가락 사이로 세계를 느끼게 하는 마르지엘라 타비 슈즈까지. 작가들의 옷장은 그들의 문장처럼 뚜렷한 결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가진 일상 속 취향을 들여다보자.

마르지엘라 – 타비 슈즈

최근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 ‘무궁무궁’을 출간한 유계영 시인은 메종 마르지엘라의 타비 슈즈를 사랑한다. 1989년 첫선을 보인 이 상징적인 신발은 일본 전통 발가락 양말 ‘타비’에서 영감을 받아, 발끝을 둘로 나눈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알려져 있다. 신는 순간 평소와 다르게 벌어지는 발가락의 감각이 너무 재미있게 느껴졌다는 유계영 시인은, 이후 나이키의 에어 리프트 라인과 일본 브랜드 소우소우까지 이어가며, 형태와 감각의 변주를 즐겨 보고 있다고 한다. 단 하나의 감각에서 또 다른 세계로 확장되는 그 취향의 흐름이, 그의 시처럼 유연하고 섬세하고 재미있다!

칼하트 WIP – 디트로이트 재킷

평범한 순간에서 비범한 생각을 찾는 영감 수집법에 대한 책, ‘헛소리의 품격’을 쓴 이승용 작가는 칼하트의 디트로이트 재킷을 즐겨 입는다. 1889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시작된 칼하트는 본래 철도 노동자들을 위한 워크웨어 브랜드였다. 튼튼한 오버올과 덕 캔버스 소재로 유명하며, 시간이 지나 해져도 멋으로 남는 브랜드다. 이승용이 칼하트를 설명하며 말한, 몇 년을 입어도 튼튼한, 낡더라도 빈티지로 취급되는, 거칠지만 신뢰할 만한. 어쩐지 이 모든 수식어가 카피라이터로 활동하며 책을 써내는, 에너지 넘치는 그의 삶과 닮게 느껴진다.

블루 엘리펀트 – EGGHEAD

아무튼, 술집’의 김혜경 작가가 사랑하는 브랜드는 블루엘리펀트(Blue Elephant) 안경이다. 특히 스테인리스 재질의 EGGHEAD BLACK. 이 브랜드는 고급 수제 안경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선보이는 국내 브랜드로, 김혜경 작가는 “작가처럼 보이고 싶을 때 잔고를 존중해주는” 안경테라고 설명한다. 그의 얘기를 듣고 나니 유행보다 얼굴의 개성을 살리고, 실용성과 미감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 브랜드가 일상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태도로 글을 쓰는 김혜경 작가와 닮아 보인다.

프라다 – 나일론 백

Prada

박상영 작가가 사랑한 브랜드는 바로 프라다(Prada)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을 준 건 프라다의 나일론 백이다. 누구나 아는 브랜드지만, 나일론 백은 가방은 가죽이어야 한다는 통념을 뒤집은 혁신이었고, 이 선택은 지금의 프라다를 만든 기반이 되었다. 프라다는 때문에 단순한 고가 브랜드가 아니다. 미학적 긴장감과 실험적 감수성으로 자신을 혁신해 왔고, 유행에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시대의 감각을 읽어왔다. 박상영 작가가 프라다를 “명품 중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역시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신하는 작품이니까.

아레나 – 파워스킨

이종민 시인은 글을 쓰며 수영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그런 그의 취향을 딱 맞춘 브랜드는 아레나. 1973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아레나는 세계 수영 선수들의 퍼포먼스를 위해 태어난 브랜드로, 기술력과 전통이 공존하는 스윔웨어의 상징이다. 전통의 깊이 위에 첨단을 더하며, 한 줄의 시가 세계를 포착하듯 찰나를 스치는 물결의 힘을 이해한다. 그는 특히 레이싱용 수영복인 파워스킨 라인을 선호한다. 물 위에서의 집중과 글 속의 몰입, 그 두 세계에서 <동시존재>하는 데 아레나 파워스킨은 완벽한 균형점을 제공한다.

나나미카 – 후디드 재킷

nanamika

7개의 바다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나나미카는 최근 <어떤 가정>을 출간한 민병훈 작가가 사랑하는 브랜드다. 기능성과 클래식 디자인을 결합해,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는 실용미로 사랑받는다. 민병훈 작가는 나나미카의 후디드 자켓을 특히 좋아한다며, 일상의 리듬에 스며드는 그 정직한 실루엣이 이 브랜드의 장점인 것 같다고 전했다. ‘One Ocean, All Lands’라는 물리적 경계가 해체되는 듯한 나나미카의 메시지를 떠올리면, 정서적 경계가 해체되는 듯한 민병훈의 소설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