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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꼭 기억해둬야 할 이름, 윤가은 감독의 이토록 다정한 세계

2025.11.09.박예린

윤가은 감독의 6년 만의 신작 [세계의 주인]이 새로운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윤가은의 세계는 어디까지일까?

개봉 전부터 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인 플랫폼(Platform) 부문에 한국 영화 최초이자 유일한 작품으로 초청된데다 제9회 핑야오국제영화제에서 2관왕을 휩쓸고, 바르샤바 국제영화제, BFI 런던영화제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 연이어 초청됐다. 이는 얼마 전 개봉한 윤가은 감독의 6년 만의 신작 [세계의 주인]이 지금까지도 써 내려가고 있는 기록들이다. 윤 감독은 단편 영화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장편 데뷔작부터 꾸준히 해외 영화제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가장 세계적인 한국 감독 중 한 명으로 입지를 다졌다. ‘다정함’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와 밀도 높은 연출로 우리 사회의 가장 섬세한 균열 지점을 찾아내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인물의 강인한 생명력을 ‘관찰과 질문’이라는 방식으로 기록하는 윤가은의 세계는 계속 확장 중이다.

주체적인 개체로 존재하는 아이들

윤 감독의 영화는 아이들을 향한 깊은 존중과 관찰에서 시작된다. 영화 속 인물들을 어른이 되기 전의 미숙한 존재가 아닌 자기 삶의 주인으로 대한다. 어른들의 훈계나 감상적인 시선 없이 질투, 소외감, 연대, 사랑 등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들이 아이들의 작은 세상에서 얼마나 크고 치열하게 벌어지는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포착해낸다. 관계의 아픔, 가정 문제, 폭력 등 아이들 세계에서 생긴 균열도 피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코 절망에 머물지도 않는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되 그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물의 굳건한 의지에 초점을 맞출 뿐. 성장이란 상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와 함께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해 나가는 힘을 터득하는 과정임을 역설하며 다정한 위로와 희망을 건넨다.

아이들의 진짜 마음을 담다

윤 감독은 어른들이 쉽게 간과하는 ‘아이들의 진정한 세계’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아이들의 시선과 미세한 떨림을 미성년자의 눈높이에 맞춘 클로즈업으로 담아내며, 대사 없이도 인물의 내면적 갈등과 감정 변화를 관객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우리들>에서 친구들에게 외면당한 선이가 눈물을 참는 모습이나 <우리집>에서 엄마 아빠의 싸움을 지켜보는 하나의 불안한 얼굴에서 그 정수를 느낄 수 있다. 또 학교 복도, 방 안, 놀이터 등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사소한 말다툼이나 귓속말까지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그 안에 숨겨진 감정의 역동성을 끄집어낸다. 이러한 일상의 디테일은 어른들이 놓치기 쉬운 아이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강력한 도구로 작용한다.

아이들의 삶을 통해 어른의 세계를 비추다

감독의 영화들은 아이들의 감정과 관계를 단순하게 미화하거나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세계가 어른들의 사회만큼이나 복잡하고, 잔인하며, 생존을 위한 투쟁이 벌어지는 곳임을 보여준다. 영화의 표면적 분위기는 아기자기하거나 따뜻하지만 그 안에는 학교 폭력, 가정 해체, 사회적 편견 등 지극히 불편하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담겨있다. 따뜻함 속 불편한 현실을 다루며, 결코 동화 같은 결말이나 쉬운 화해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이런 아이들의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그들을 둘러싼 어른들의 세계를 반영한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과 관계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단면과 어른들의 편견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동화가 아닌 ‘진짜 삶’을 이야기하는 윤 감독 작품들

단편작 [손님], 2011
아빠와 불륜 관계에 있는 여성의 집에 들이닥쳐 분노를 폭발시키려던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 소녀가 복수의 대상 대신 그 집에 있는 어린 남매를 마주하면서 겪는 복잡한 내면과 성장통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해 내며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폭력과 상처 속에서도 아이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구원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단편작 [콩나물], 2013
일곱 살 보리가 콩나물을 사기 위해 난생처음 홀로 집 밖으로 나서는 이야기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용돈으로 자신의 공간을 확장하는 작은 ‘모험’이자 ‘성장’의 기록을 그린다. 이 작은 이야기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제네레이션 케이플러스(Kplus) 단편영화상’ 수상으로 이어지며 큰 주목을 받았다.

[우리들], 2016
윤 감독의 장편 데뷔작. 제66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제너레이션 케이플러스(Kplus)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신인 감독상과 각본상을 휩쓸며 윤가은 감독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초등학교 4학년인 선, 지아, 보라를 통해 아이들 사이의 우정과 질투, 소외와 배제 등 미묘한 관계 권력을 정면으로 다룬다. 어른들의 개입 없이 아이들끼리 관계를 맺고 깨지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어린 시절의 날카로웠던 감정들을 되새기게 된다.

[우리집], 2019
엄마 아빠의 불화로 균열이 생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12살 하나가 집 문제를 겪는 다른 아이들과 만나 임시적이고 잠정적인 ‘우리집’을 만들어가는 이야기. 아이들이 어른들의 문제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연대하여 ‘집’의 의미를 찾으려는 애달픈 분투와 꿈을 그린다. ‘집이 무너져도 우리끼리 힘을 합치면 괜찮다’는 아이들의 주체적인 연대와 희망을 다루며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세계의 주인], 2025
관객들의 자발적인 ‘無 스포 리뷰 챌린지’가 이어지며 현재 극장가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신작. 엄청난 반전이나 커다란 갈등이 있는 건 아니지만, 챌린지명처럼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는 채 관람하길 권장한다. 그래야 김의성 배우의 추천 코멘트처럼 “깊고, 아름답고, 재밌고, 무섭고, 슬픈 영화예요.”라는 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주요 장면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등의 영화 관련 내용들을 꼭 찾아보길!

사진
인스타그램 @barunsonena.contents, 공식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