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 해안의 강렬한 햇살 아래, 볼보의 플래그십 전기 세단 ES90이 도로 위에 섰다. 이 작은 공국의 우아함과 품격은 ES90이 지닌 북유럽의 고요함과 세련된 지속 가능성과 자연스럽게 공명한다. 스케일과 상징을 넘어, 두 존재가 만나는 순간 이동의 의미와 경험의 본질은 한층 깊고 새롭게 다가온다.

도어를 여는 순간부터 볼보 ES90은 북유럽의 고요한 자연이 모나코의 햇살 아래 배어든 듯, 무채색의 차분함과 현대적인 감각이 동시에 내재된 공간을 펼쳐낸다. 지중해의 푸르른 바다를 가까이 둔 모나코, 이 작은 나라의 좁고 굽이진 도로 위에서 천연 울과 친환경 가죽으로 마감된 시트, 오크 우드 패널, 손끝에 닿는 크리스털 기어 다이얼은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경험을 위한 오브제다.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절제와 온기가 깃든 실내에 앉는 것만으로도 ES90은 운전자를 인지하며 시동 버튼을 누를 필요도 없이 운전대 뒤편에 달려있는 기어를 D로 내려놓기만 하면 자동차와 도로, 그리고 모나코의 빛이 어우러진 절경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실내는 단순한 인테리어 디자인 수준을 넘어서 완전한 이동형 거실, 프라이빗 라운지를 보는 듯하다. 파스텔 톤의 차분함과 고급스러운 조명이 공간에 온기를 더하며, 넓은 공간은 나만의 안식처를 구현해냈다. 하나 특이한 건 계기판이 작다. 다른 플래그십 세단과 비교해도 반의 반 크기 수준. 이건 ‘볼보 카 UX’의 철학과 관련 있는데, 볼보는 운전자가 주행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정보나 시각적 혼란을 최소화하는 심플 UX를 추구한다. 비록 계기판은 작지만 속도나 주행 보조, 내비게이션과 같은 핵심 정보들을 제공함으로써 운전자 시선과 손의 동선을 최소화해 정보 과잉 없는 주행 몰입을 최우선으로 한다. 작은 계기판 하나에도 볼보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ES90이 고요함의 프리미엄을 어떻게 실현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그 유명한 F1 서킷의 일부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동안 초고강성 프레임과 두터운 이중 접합 유리가 창밖의 소음까지 모두 가둬버린다. 전기차가 조용한 건 당연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 엔진 소음이 없으면 다른 소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ES90은 여러 소음을 잘 틀어막았다. 모나코의 혼잡한 중심가, 항구의 활기, 언덕길의 연속 헤어핀 코너도 실내에서는 마치 밖의 세계를 잊은 듯한 완벽한 정적만이 흐른다.

완벽한 정적을 깨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면 바워스앤윌킨스의 하이 피델리티 오디오 시스템을 켜면 된다. 첫 곡을 재생하는 순간 25개의 스피커가 실내 곳곳을 음악적 질감으로 가득 채운다. 운전석 옆 발 밑, 대시보드, 도어트림, 루프 라이너, 심지어 헤드레스트까지. 특히 ‘애비 로드 스튜디오 모드’는 모나코의 도로를 지나치던 순간을 영화 속 한 장면으로 재구성한다. 스튜디오 컨트롤 룸의 섬세하고 밀착된 사운드부터 스튜디오 라이브 룸의 크고 개방적인 공간감까지 다양한 음향을 구현하는데, 볼륨을 높여도 노이즈나 왜곡 없이 투명하게 울려 퍼지고, 음악의 디테일은 섬세하게 살아난다.

얼마 달리지 않아도 큼지막한 타이어가 노면을 지그시 누르며 매끈하게 구르는 게 느껴진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충격을 차체 무게로 꾹꾹 눌러 만들어내는 진득한 승차감, 고급차들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아주 유용하면서 효율적인 방법이다. 물론 차체 무게만으로 만들어낸 승차감은 아닐 거다. 타이어에 무게를 가한다고 해도 노면에서 올라오는 모든 충격을 완벽하게 억누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충격은 이중 챔버 에어 서스펜션이 담당한다. 모나코의 구불구불한 언덕길, 해안의 각종 요철과 급경사 구간, 해변을 따라 달리는 고속 구간 등 모든 상황에서 일관되게 평평함, 그리고 볼보 특유의 하체 강성이 또렷하게 살아난다. 대용량 배터리가 차체 하부를 단단히 눌러주고 이중 에어 서스펜션은 노면 상태와 차의 하중을 초당 500회로 감지해 최적의 감쇠력을 찾는 것인데, 덕분에 부드러움 그 이상의 안정감과 도로에 촘촘하게 붙은 밀도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고요함과 안정감이 흐른다고 ES90이 마냥 부드럽고 온후한 차는 아니다. ES90은 굉장히 빠르다. 시승차는 트윈 모터 퍼포먼스 모델인데 앞뒤에 달린 모터가 680마력의 힘으로 네 바퀴를 밀어내는 순간 ES90이라는 거대한 차체를 아주 우아하게 가속시킨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4초, 2000kg이라는 차체 무게를 생각하면 아주 고무적인 수치다. 발끝에서 느껴지는 전기의 민감함이 날카로워질 뿐만 아니라 힘을 응축했다가 쏟아내는 느낌도 난다. 볼보와 퍼포먼스 두 개념이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겼던 운전자들에게 꽤 충격적인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도심 출퇴근길 속도를 넘어, 모나코 바깥 산악구간을 오르는 와인딩 구간에 진입하면 ES90은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코너를 공략해도 좌우 롤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노면 변화에도 서스펜션이 즉각적으로 반응해 차체를 단단히 지탱한다. 이 차의 하체 강성은 독일의 플래그십 세단 못지 않게 단단하면서도 북유럽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마무리된다. 동시에 완성도 높은 회생제동 시스템 덕분에 복잡한 다운힐 구간에서도 브레이크 페달 사용이 적고, 오히려 운전이 쉬워진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왜 굳이 와인딩 코스를 플래그십 세단의 시승 코스에 넣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지점이다.

모나코의 수많은 초입과 교차로, 바쁘게 움직이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ES90은 강력한 ADAS 시스템이 선사하는 안전의 신뢰감, 7개의 카메라·12개의 초음파·라이다가 만들어낸 움직이는 방패의 위용을 만끽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볼보의 안전에 대한 집착은 지중해 연안의 복잡한 도시에서도 또렷하게 빛난다. 한적한 항구에서부터 고급 부티크와 카페가 늘어선 골목길, 숨막히는 F1 헤어핀 커브까지, ES90은 이동하는 모든 순간이 완벽한 휴식이며 든든한 보장이다.

볼보가 단순히 좋은 전기차 제작에만 집중했다면 전통적인 자동차 브랜드 최초로 디젤 엔진 차량 생산 중단이라는 시대가 부여한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을 거다. 볼보는 좋은 전기차뿐 아니라 좋은 전기차를 만드는 친환경적인 방법 또한 여느 브랜드보다 앞서 있다. ES90은 브랜드가 지향하는 지속 가능성 철학이 가장 직접적으로 녹아든 모델이기도 하다. 생산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친환경적 접근을 적용하며, 볼보가 내세운 ‘2024년까지 탄소 순배출 제로(Net Zero)’라는 비전을 실현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차체에는 재활용 알루미늄 29%, 재활용 강철이 18%, 그리고 재활용 폴리머와 바이오 기반 소재가 16% 사용돼, 제작의 근본에서 자원 순환과 환경보호를 실천한다. 특히 볼보의 혁신적 바이오 소재라고 부르는 노르디코(Nordico)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지속 가능한 산림에서 얻은 바이오 재료와 FSC 인증 목재로 만들어져 프리미엄 전기차에 진정한 친환경과 윤리적 가치를 더한다.

시승의 마지막 포인트인 에즈빌리지에 도착했다. 도로의 끝, 세상의 끝 같은 타이어 사이로 스며드는 한 줄기 산들바람, 바다의 에메랄드빛, 그리고 바로 옆 곡선을 그리는 희뿌연 해안도로 등 이 모든 요소가 ES90의 고요함과 맞닿는 순간, 북유럽 감성의 차분함과 모나코의 화려함, 첨단 전기차의 미래, 그리고 친환경이라는 시대 정신이 한데 맞물린다. ES90과 함께 한 모나코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좋은 전기차의 체험을 넘어, 경험과 감성, 그리고 미래적 라이프스타일까지, 프리미엄의 정수를 모두 담아낸 순간이다. 이 차가 보여준 조용한 힘, 섬세한 센스, 환경을 배려한 기술, 그리고 장소와 시간,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감동의 긴 여운은 새로운 프리미엄 전기 세단의 정의, 바로 그 찰나의 절정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ES90은 이동의 미래, 그리고 경험의 지평을 넓히는 진짜 새로운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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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텐츠 에디터
- 신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