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어야 의미가 있는 시간이 아니다. 혼자 보내도 충분히 괜찮고, 오히려 이때만 가능한 하루도 있다.

09:00 | 늦은 기상, 일정 없는 아침
눈을 뜨자마자 시간을 확인하지 않는다. 오늘은 늦어도 되는 날이다. 커튼을 조금만 열어 햇빛의 밝기를 가늠하고,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허락한다. 세수를 하고 물 한 컵을 마신 뒤, 커피를 내리거나 차를 내리며 괜히 바쁘게 굴지 않는다. 연말엔 느려도 된다.
10:30 | 집 근처 목적 없는 산책
집 근처를 천천히 걷는다. 관광지도, 공원도 굳이 필요 없다. 연말의 도시는 평소보다 속도가 느리다. 문 닫은 가게, 한산한 골목, 조금 일찍 켜진 가로등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머릿속이 정리된다. 이어폰을 끼더라도 라디오나 팟캐스트는 피한다. 생각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시간이 필요하다.
12:30 | 혼자라서 가능한 점심
혼밥하기 좋은 곳을 찾을 필요도 없다. 오히려 혼자라서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식당이 좋다. 메뉴를 고를 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평소엔 잘 시키지 않던 메뉴를 고르는 것도 가능하다. 음식을 먹으며 스마트폰을 계속 보지 않아도 되고, 봐도 된다. 이 느슨함이 혼자의 점심을 특별하게 만든다.
14:00 | 낮잠이나 멍 때리기, 혹은 아무것도 안 하기
집에 돌아와 소파나 침대에 눕는다. 꼭 잠들 필요는 없다. 스마트폰은 손 닿지 않는 곳에 두는 게 좋다. 창밖을 보거나,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이 흐트러지도록 둔다. 연말에는 이런 비생산적인 시간이 오히려 회복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죄책감으로 남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16:00 | 한 해 돌아보기
이제 올해를 정리해본다. 다이어리나 메모장에 ‘잘한 일 세 가지’만 적는다. 크지 않아도 된다. 버틴 것, 포기하지 않은 것, 도망치지 않은 것. 길게 쓸 필요 없다. 이 시간의 목적은 반성이 아니라 확인이다. 나는 이만큼을 지나왔다는 확인.

18:00 | 저녁 준비, 혼술 한 잔
배달을 시켜도 좋고, 간단히 요리를 해도 된다. 중요한 건 속도다. 빨리 먹지 않아도 되고, 굳이 상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위스키 소량, 와인 한 잔을 곁들인다. 조명을 조금 낮추고, 음악도 틀어둔다. 연말 저녁의 분위기는 음식의 수준보다 환경에서 만들어진다. 혼자라서 가능한 이 느긋함을 충분히 누린다.
20:00 | 혼자 보는 콘텐츠 한 편
영화 한 편이나 시리즈를 고른다. 굳이 명작일 필요는 없다. 졸리면 중간에 멈춰도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끈다. 혼자 보는 콘텐츠의 장점은 선택을 바꿔도 미안하지 않다는 점이다. 혼자라서 가능한 중간 정지, 되감기, 졸다 깨도 이어보기. 이 자유가 생각보다 크다.
22:30 | 하루 마무리, 걱정은 내일로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 하루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오늘은 편안했다” 정도면 충분하다. 새해 계획은 내일의 나에게 넘긴다. 오늘을 잘 보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연말 밤의 역할은 결심이 아니라 휴식이다. 연말을 혼자 보냈다는 기억보다, 편안했다는 감정이 오래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