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한 맛. 실패한 맛. 그리하여 배운 맛.
옥수수라는 근본
진우범ㅣ에스콘디도*

[연구 주제]
1. 왜 이 옥수수를 쓰는 것인가?
note “색깔이 다르잖아.” 멕시코에서 일할 때 현지 셰프 친구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다. 그러나 단지 색 때문이라면 색을 내는 다른 방식을 써도 되지 않나? 왜 여러 옥수수 품종 중에서 이것을 사용하고, 그것은 무엇이 다를까? 개인 성향이겠으나 나는 보다 명확한 이유가 궁금하다. 왜 이 옥수수를 쓰는가?
2. 어떻게 하면 옥수수의 개성을 잘 살려서 멕시코 음식의 형태에 맞게 낼 수 있을까?
note 음식을 볼 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 → 정의 Definition, 멕시코 음식을 정의하는 가장 큰 카테고리이자 근본** → 어떻게 옥수수를 활용했는가? 즉, 옥수수를 어떤 식으로 사용하고 조리했는가?
집중 연구 대상ㅣ찰옥수수
note 찰기가 강한 찰옥수수는 차진 식감을 선호하는 한국과 일본, 동아시아권에서 주로 쓰인다. 멕시코 전통 음식 레스토랑을 이끌고 있지만 여기에 지역성과 공간성, 계절성을 담는다면 새로운 멕시코 음식을 탄생시킬 수 있지 않을까? 찰옥수수는 멕시코에는 없는 종이다. 멕시코 토종 옥수수는 아닐지언정 탐구해보자. 미식에서 이미 완벽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발전의 여지는 항상 있다.
[중간 결과]
메뉴화 실패. 현재로써는.
REASON
강한 찰기. 찰옥수수는 전분 성분 중 아밀로펙틴이 높아 차지다. 예상보다 강한 찰기 때문에 떡 같은 식감이 나온다. 반죽인 마사*** 형태까지는 완성했는데, 이를 어떻게 음식으로 발전시켜야 할까.
CASE STUDY
메옥수수
– 색상: 노란색. 강원도 산간 지역에서 많이 재배해온 토종 옥수수.
– 특징: 단맛과 고소한 향이 강해 직관적이다.
– 선행 연구: 텍스처 역시 강해서 타코를 만들 때는 지양한다. 타코 안에 곁들이는 여러 좋은 재료의 합을 해칠 때가 있다.
– 결과: 타말레스 Tamales에 활용. 옥수수 반죽과 소를 잎에 싸서 찌는, 한국의 증편과 비슷한 음식 타말레스에 사용하면 찌는 조리법을 통해 메옥수수의 퍽퍽함이 보완되고, 옥수수의 강한 풍미는 오히려 살아난다.
카카우아신틀레 Cacahuazintle
– 색상: 하얀색. 멕시코에서도 옥수수 중의 옥수수로 불리는 토종.
– 특징: 식감이 가장 부드럽다. 입자도 가장 곱게 갈리며, 반죽을 잡으면 제일 가볍다.
– 선행 연구: 하여 가장 기본적인 토르티야만으로도 충분히 맛있게 느껴진다.
– 결과: 갓 구워 따뜻한 토르티야와 찍어 먹을 수 있는 소스를 함께 내는 중.
[목표점]
찰옥수수의 꾸덕한 질감, 재료의 장점을 살려줄 만한 요리
– 소페스와 고르디타스****방식 고안해보기
일반적인 토르티야보다 약 4배 두꺼운 음식이다. 탄수화물 함량이 높다는 면에서는 한국 손님들이 선호할 만한 음식은 아니지만, 질감을 더 명확하게 느낄 수 있어 찰옥수수의 식감을 매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고찰]
본질 → 재료에 대한 파악
– 현재 우리가 탐구 중인 찰옥수수보다 찰기가 덜한 종류는 없을까?
실상 언제나 맨 처음에 해야 할 일은 재료에 대한 파악이다. 진도에서 키우는 대파 맛이 다르듯 같은 찰옥수수라도 기후와 땅, 산지에 따라 특성이 다를 수 있다. 그 어떤 실험보다 중요한 것은 재료에 대한 연구. 본질에 대한 탐구는 항상 수반한다.
[메뉴화 목표 시점]
여러 조건을 바꾸어가며 시도하는 과정 속에서 원하는 완성도의 마사가 나온다면, 그 요소가 필요한 순간은 언제든 있을 것이다. 에스콘디도에서 꼭 파인 다이닝 형태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렇기에 찰옥수수 마사 메뉴화 목표 시점 → 언제든
* 멕시코 셰프 엔리케 올베라가 이끄는 파인 다이닝 푸욜 Pujol에서 4년여 근무 후 한국으로 돌아와, 2021년에 문을 연 캐주얼 다이닝 엘몰리노부터 2022년 타코집 라까예, 2023년 시작한 파인 다이닝이자 현재 미쉐린 1스타 에스콘디도를 통해 멕시코 식문화를 선보이는 중이다.
** 옥수수 기원지 = 멕시코. 기원전 7,000년경인 지금으로부터 약 9천~1만 년 전, 멕시코 발사스강 The Balsas River 유역 일대에서 원주민들이 야생 식물 테오신테 Teosinte를 개량한 역사가 옥수수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멕시코 음식 이름을 살펴보면 옥수수 반죽을 눌러서 동그랗게 구우면 토르티야 Tortilla, 토르티야에 무언가를 올려 먹으면 타코 Taco, 토르티야에 재료를 넣고 돌돌 만 뒤 소스에 적셔 먹으면 엔칠라다 Enchilada, 토르티야에 재료를 얹어 그대로 접어 먹으면 퀘사디아 Quesadilla다.(다만 안에 치즈를 넣어야 한다, 넣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이 멕시코 내에서도 분분하다.) 멕시코 음식의 근본이자 기반은 이견 없이 옥수수다.
*** 마사 Masa 스페인어로 반죽이란 뜻의 마사. 멕시코에서는 특히 옥수수 반죽을 일컫는다. 우리는 멕시코 전통 방식인 닉스타말라이제이션 Nixtamalization(말린 옥수수를 알칼리성이 높은 석회수로 삶고 이를 세척한 후 맷돌로 갈아 반죽을 만드는 방법)을 따른다.
**** 소페스 Sopes는 두껍게 만든 토르티야의 가장자리를 올리고 토핑을 올려 먹는다. 고르디타스 Gorditas는 통통한 토르티야라는 뜻. 토르티야를 도톰하게 구운 뒤 가운데를 갈라 속을 채워 먹는다.
흔한 것과 흔하지 않은 것
이원석 | 매튜*

[연구 주제]
1. 흔한 재료인데 이 요리에서는 다른 맛이 나네?
2. 이런 식재료가 있네?
note 프렌치의 기본 엔지니어링*은 어떻게 하면 식재료에 손이 더 많이 가게 하고, 조리 공정을 더 복잡하게 하고, 그만큼 정성과 시간을 더 쏟으면서,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드는가라고 생각한다. 한편 스시 셰프를 꿈꾼 때가 있을 만큼 일식도 좋아하는데, 일식의 기본 엔지니어링은 어떻게 하면 원물의 좋은 상태를 그대로 전하며 재료 본연의 맛을 끌어올리는가라고 느낀다. 둘은 상충하는 듯 보여도 맞물린다. 이들의 교집합으로 제철이 되면 흔하게 느껴지는 식재료와 일반적으로 흔하지 않은 식재료를 섞어서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맛을 전하고자 한다.
[선행 연구]
1-1. 장어
yes 최근 공급 과잉으로 저렴해진 편인 가격대 및 새로운 생선 코스로 활용하고자 테스팅 중. 가령 장어를 튀긴 후 된장으로 만든 베어네이즈(프랑스식 버터 허브 소스)에 토마토소스를 곁들여내는 요리.
but 튀김이라는 흔한 방식에 대한 의구심 + 색감과 담음새 같은 미적 감각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하는 데 반해, 깔끔하고 예쁘게 정형화하기 어려운 장어의 물성 + 무엇보다 간장을 바르고 숯불 석쇠에 구워내는 가장 보편적이고도 기본적인 장어의 맛을 이길 수 있는가?···. 메뉴화 보류.
2-1. 흉선
yes 스위트브레드 Sweetbread라고도 부른다. 어린 양이나 소의 가슴샘 부위다. 프랑스에서는 흔한 식재료지만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다. 가슴살보다는 푸아그라 같은 간류, 내장류처럼 부들부들하고 지방질이 풍부한 식재료로, 스테이크류에 가니시나 서브용으로 내고 싶어 테스팅 중이다. 간장에 마리네이드 → 숯으로 훈연 → 버터와 허브로 팬 프라잉하는 클래식한 조리법을 우선시한다. 흉선만 신선하다면 그 맛을 살리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맛있는 방법이다.
but 한국에서 구하기 힘듦 + 그만큼 높은 편인 비용 + 무엇보다 낯선 식재료에 대한 손님들의 심리적 거부감···. 메뉴화 보류.
[고찰]
‘흔한 재료인데 이 요리에서는 다른 맛이 나네?’, ‘이런 식재료가 있네?’ 요리에서 내가 지향하는 두 가지 전제 조건에 맞추어 과연 나 자신도 맛있게 먹은 음식은 무엇인가?
note 밍글스에서 근무하던 시절 스타지로서 경험한(스타지로 근무하던 시절) 미국 베누 레스토랑에서 맛본 이것은 그간 해당 재료에 품은 인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메추리, 자그마한 한국 메추리와 달리 닭과 유사할 정도로 큰 크기와 그래서 보다 풍성한 지방질, 마치 오리로 만든 햄처럼 무척 맛있던 베누의 메추리 스테이크다. 왜 한국에서 맛본 메추리 요리는 맛이 없었을까? 당시 강민구 셰프님이 “미국과 메추리종 자체가 다르고, 그 종이 맛있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셨고 분명 맞는 말이지만, 이 기회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종의 차이는 극복하기 어렵더라도, 맛의 정점을 향해 함께 가보는 것으로.
[도출]
레스토랑 매튜만의 메추리 구이 탄생**
간장 양념에 하루이틀 재운다. → 마리네이드 된 메추리를 기름에 튀겨 겉을 바삭하게 만든다. → 숯불에 구워 마무리한다.
note 족히 1백 마리는 넘게 실험했다. 미국 메추리보다 크기가 작고 지방질이 적은 한국 메추리의 맛을 보완하기 위해 재우는 간장 양념의 배합을 조율하고, 버터와 양송이를 많이 넣어 만든 버섯 소스 등 ‘헤비’한 소스와 그 ‘헤비’한 맛의 균형 또한 잡아줄 귤류의 상큼한 소스도 곁들인다. 현재는 레스토랑 매튜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가 됐다.
[후속 연구]
흔한 장어를 비롯해 흉선, 아귀 막창, 소와 양과 돼지의 내장 주변을 감싸는 지방막인 크레핀 같이 흔하지 않은 식재료도 언젠가 매튜에서 메뉴로 선보일 것이다. 시간 낭비, 재료 낭비, 에너지 낭비란 없다. 지금은 실패했을지언정 언젠가 다른 과정에라도 그간의 시도는 분명 도움이 된다. 불가능한 것은 없고, 끝나는 것 또한 없다.

* 2016년부터 밍글스에서 근무하며 얻은 수많은 경험 중 하나, 익힌 생선은 입에 대지도 않던 내가 생선 요리를 먹게 됐다. 베샤멜 소스(프랑스 5대 기본 소스 중 하나로 버터와 밀가루, 육수를 넣어 만드는 흰색의 묽은 소스)에 대구를 중탕으로 천천히 익히는, 듣도 보도 못한 강민구 셰프님만의 조리 기법으로 완성된 그 요리 덕분에 생선에 대한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졌다. 밍글스에서의 경험은 맛과 도전에 대한 지평을 넓혀준 터닝 포인트다.
** 매튜의 메추리 구이는 발 부위를 제거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낸다. 이는 우리가 직접 손질한 신선한 식재료를 보여드린다는 개념이다. 낯선 재료에 대한 손님들의 심리적 거리감을 줄여가나가는 일은 파인 다이닝 셰프의 큰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방법으로는 낯선 재료를 단순히 피하고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맛의 완성도를 높여 거리를 좁혀나가는 방향성이 주효할 것이다.
발효의 미학
박성배 | 온지음*

[ 연구 배경 ]
버리지 않는다.
note 겨울이 되면 제철 맞아 살이 오른 대구를 많이 쓴다. 쓰고 남은 머리와 뼈, 부산물은 매운탕으로 만들어 스태프밀로 먹는다.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물리고 마는 입맛에 결국 대구의 잔재들은 버려지곤 한다. 아깝고 귀한 식재료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 연구 주제 ]
장 → 쓰고 남은 대구의 머리와 뼈, 부산물로 장을 담가본다. 일명 대구장 만들기.
[ 연구 과정 ]
재료 대구 육수를 끓여 걸쭉하게 만든 진액(위에 뜨는 기름기를 제거하고 준비한다), 메줏가루, 찹쌀가루, 조청.
방법 준비한 재료를 모두 섞는다. → 페이스트처럼 걸쭉해진 혼합물에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다. → 숙성시킨다. → 대구장 완성. 대구 육수가 추가됐을 뿐 고추장 만드는 방법과 같다.
[ 중간 결과 ]
곰팡이의 습격
REASON
대구가 품은 감칠맛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대구장을 담그며 간을 볼 때 짠맛의 정도를 ‘이 정도면 괜찮겠다’ 예측했으나 그 이상 간을 해야, 즉 염도를 더 높였어야 했다. 우리의 혀는 간혹 감칠맛을 간으로 착각할 때가 있는데, 대구는 감칠맛을 품고 있었으며, 이에 염도를 낮게 잡은 대구장에서는 곰팡이가 피어났다.
CASE STUDY
장 고치는 방법* → 끓여보기
곰팡이가 난 장을 고치는 해결책으로 끓여보는 방법이 전해져 온다. 끓여서 튀어오른 산미를 없애고 소금 간을 더한 뒤 다시 발효시킨다.
note 홍합 삶은 물을 오랫동안 졸여서 만드는 바닷가 지역의 합자장, 삶아 말린 소고기를 넣어 만드는 천리장, 꿩이나 닭을 삶아낸 육수를 졸여서 만드는 육장 등 지역별로 다채로운 장은 물론, 가가호호 저마다의 조리법을 지닌 집장이 있을 만큼 우리나라는 장의 역사가 깊다. 이 장에 곰팡이가 피는 등 탈이 났을 때 장을 고치는 방법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중 하나가 끓이는 것이다.
[ 연구 결과 ]
장 고치기 성공 → 다시 발효가 시작되고 감칠맛이 폭발적으로 풍겨져 나오는 대구장 완성
↳ 대구장이 품은 해산물의 풍미를 살려 해물떡볶이 만드는 데 쓰는 등 맛있게 활용하고 있다. 올해 담글 때는 첫 번째 시도에서 배운 경험을 살려 처음부터 발효가 잘되게끔 염도를 보다 높일 예정이다. 원래 첫 번째보다 두 번째 만든 게 맛있고, 세 번째는 더 맛있다. 그렇게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 번외 ]
발효의 또 다른 영역, 술 | 본래 많은 양의 식재료를 폐기 처분할 때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술, 특히 소주를 담그는 것이다. 증류해서 맑은 술만 우려 쓰는 것인 만큼, 100만큼의 재료로 만들면 소주는 20어치 탄생한다. 그렇게 만든 소주는 향이 진해 디저트 등 요리에 쓰기 아주 좋다.
note 미림이라 불리는 일본의 요리술이자 단술을 대신할 술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돼지고기 수육을 삶을 때 잡내를 잡기 위해 된장을 넣는 데서 착안해 된장 청주를 만들어보았다. 된장의 구수한 향이 스치면서 아주 맛있게 익었는데, 온지음 정혜경 공방장님이 알려주시기를 된장술은 실제로 북한, 연길에 존재한다고 한다. 재밌는 일이다. 역시 음식은 무엇으로든 확장 가능하고, 우리의 된장술 역시 이렇게 만들어두었으니 언젠가 적절한 시기에 쓸 때가 있을 것이다.
지속 가능한 먹거리의 또 다른 영역, 건조 | 과거와 달리 현대에서는 잘 먹지 않는 음식 중 하나가 건전복***이다. 유통이 발전하면서 생생한 전복의 가치가 더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기후가 변하고 생태계가 요동치면서 지속 가능한 먹거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홍콩은 10년 된 무청, 100년 된 보이차처럼 재료를 잘 건조해 시간이 주는 맛을 중요시한다. 깨끗이 건조하면 오랜 후에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당장 다음 여름에 어떤 재료가 귀해질 지 알 수 없는 지금, 맛을 지키고 보존하는 길을 떠올려본다.
* 2013년부터 온지음에서 식재료를 연구하고 원형의 맛을 탐구해왔다. 그 과정에서 배우고 지키고자 한 가치 중 하나는 버리지 않는 것.
** <제민요술> 등 옛날 조리법 고서에 보면 장 고치는 법, 밥이 쉬었을 때 고치는 법, 망가진 고기 먹는 법 등 식재료를 ‘고쳐 쓰는’ 방법이 나온다. 간혹 이게 될까 싶은 방식이나 주술에 가까운 방법도 보여서 웃음이 나곤 하는데, 이렇게라도 먹으려고 했던, 아끼려고 하는 그 마음을 배워간다.
*** 옛날과 똑같이 만드는 것이 좋은가? 또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은가? 크게 두 가지를 고민하면서 여러 방법으로 건전복을 만들어보았다. 첫 번째는 전통 방법으로 삶아서 말리기. 두 번째는 생으로 말리기. 세 번째는 전복을 간장 넣은 물에 삶은 후 말리기. 결론은 간장으로 삶은 세 번째 방법이 가장 맛있게 나왔다. 우리나라 반가 음식의 특징은 간장이다. 어란을 예로 들면 소금으로 염장하면 깔끔한 맛이 나고, 간장으로 담그면 녹진하고 깊은 맛이 난다. 그 기록을 떠올리며 간장 넣은 국물에 삶아서 말려본 건전복도 풍미가 훨씬 좋아서 앞으로 1년 차, 2년 차, 10년 차 지켜보며 시간이 주는 맛을 보고자 한다.
메밀의 맛
박주성 | 소바쥬*

[ 연구 배경 ]
의미 없이 내는 요리는 하고 싶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게 무엇일까 생각할 때 지난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시장에서 팔고 남은 메밀묵. 메밀가루로 만든 전병. 메밀에 쌀을 섞은 밥. 우리 형제를 먹여 살렸던 어머니의 음식. 그때는 무척 먹기 싫었지만 이제는 소중한 추억이 된 그 기억을 나의 요리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많이 먹어보기만 했을 뿐, 잘 아루는 것은 아니었던 메밀. 그 맛을 찾아가본다.
[ 연구 주제 ]
메밀 → 먹자마자 ‘메밀 향 엄청 난다, 메밀 맛이 난다’ 싶은 경우가 있던가?
씹어야만, 씹으면 씹을수록 곡향과 단맛을 비롯해 복합적인 풍미가 피어오르는 메밀**은 매우 섬세한 재료다.
[ 선행 연구 ]
Mind Map – 세계 메밀 요리로 영감 얻기
러시아 – 블리니 Blini – 메밀로 얇게 만든 팬케이크. 대개 캐비어, 연어, 사워크림 등을 함께 낸다.
프랑스 – 갈레트 Galette – 햄, 치즈, 달걀 등과 함께 브런치처럼 즐기는 메밀 크레이프.
일본 – 소바가키 Sobagaki 메밀가루 자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익혀 먹는다.
[ 중간 결과 ]
1-1. 메밀가루 + 칡전분 + 물 = ?
의문 — 보통은 파슬파슬한 식감인 메밀묵 대신 쫀득쫀득한 메밀묵을 만들어본다면?
해소 — 주걱의 감각. 도움말: 어머니
밀가루와 달리 글루텐이 없는 메밀가루의 점성은 전분으로 조절할 수 있다. 메밀가루에 칡전분과 물을 섞어 냄비에 넣고 계속 치대면 묵이 되는데, 쫀득쫀득함의 정도는 치대다 주걱을 들었을 때 떨어지는 반죽의 점도에 따라 결정한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온전한 감각의 영역. 어머니의 조언: 주르륵 X / 주- 르- 륵- O
2-1. 넓적한 메밀면의 탄생
의문 — 메밀 100퍼센트로 만든 면이라고 해도 풍미가 전해지지 않는 경우는 왜일까?
해소 — 씹히는 면적을 넓힌다 → 메밀면을 얇고 넓게 만든다. 디너 평균 9가지 코스, 각기 달리 요리한 메밀 디시를 여는 시작은 메밀 본연의 맛을 명확히 느낄 수 있는 ‘넓적한 메밀면’으로 한다. 알덴테 식감으로 제면한 면을 계단처럼 접어 쌓은 형태에 피스타치오 오일 베이스의 소스***와 함께 낸다.
[ 데이터 ]
메밀 입자를 굵게 제분해서 면을 만들면 입자가 박혀 있는 게 보인다. 보이는 입자는 씹을 때 같이 으깨지면서 향을 퍼뜨리는 매개체가 되어준다. 이를 위한 적정한 입자 크기, 제분과 제면의 과정은 수많은 착오 끝에 얻어낸 결과다. 이는 그날그날의 메밀 상태, 날씨 등 환경에 따라 달라지지만, 늘 똑같고, 그렇기에 공개할 수 있는 조건이 하나 있다.
↳ 갓 나온 메밀, 방금 수확한 메밀 확보 → 사용하기 직전인 당일 제분 → 손님이 오시기 직전에 제면 → 손님이 오셨을 때 바로 삶아서 내어드리기
아무리 유통 과정이 발달해도 미리 갈아서 가루 형태로 옮겨지는 메밀은 수분이 날아가기 쉽다. 그만큼 향과 풍미도 달라지기 쉽다. 메밀을 다루는 데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메밀이 품은 그 섬세한 특성을 지켜내는 것.
[ 후속 연구 ]
메밀빵과 고등어초절임 | 메밀로 포카치아 같은 빵을 만들다가 산미가 있는 것과 함께 먹으면 더욱 맛있겠다 싶어 고안 중이다. 이제 고등어에 기름이 쭉쭉 차는 계절. 직사각형으로 자른 메밀빵 위에 기름진 맛과 산미를 더한 고등어초절임을 올린 핑거 푸드를 만든다면? 너무 맛있겠는데?

* 네기 장호준 셰프 사단으로, 네기 라이브 수셰프까지 7년여 간 근무한 이후 오너 셰프로서 2024년 레스토랑 소바쥬의 문을 열었다.
**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단메밀과 쓴메밀. 단맛이 나는 단메밀은 대개 면을 만들 때 많이 쓰고, 항산화 효과가 있는 루틴 함량이 높아서 맛이 쓴 쓴메밀은 차로 자주 활용된다.
*** 올리브 오일, 호두 오일, 아몬드 오일, 동백 오일, 아마씨 오일, 홍화씨 오일···. 나는 좀 무식해서, 하나씩 직접 맛보며 메밀과 가장 잘 어울리는 오일을 찾았다. 피스타치오 오일은 마치 들기름처럼 은은하게 받쳐준다. 다만 그릇 아래쪽에 깔리는 소스와 함께 맛보기 전에 메밀 본연의 맛을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위쪽에는 순수한 메밀면만 오도록 계단식으로 접어 낸다. 느끼게 해드리고 싶다. 메밀이 이렇게 맛있는 것이었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