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맞아도 좋아

2012.03.15유지성

한 대도 안 맞고 7초 만에 상대를 때려눕힌 UFC 선수 정찬성은 굽에 찍히고 볼을 꼬집혀도 웃기만 했다. 배를 맞으면 곤란하고, 눈싸움도 안 하지만 챔피언이 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의상 협찬/ 빨간색 부츠는 소보.

의상 협찬/ 빨간색 부츠는 소보.

탑 랭커 호미닉의 턱에 꽂은 펀치 한 방으로 스타가 되었다. 운일까?
나한테는 천운이 따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한 방을 위해 몇 달, 길게 보면 몇 년을 연습했지만.

끝까지 싸웠으면 어땠을까?
이겼을 거다. 전략을 많이 짜갔다. 연습도 많이 했고.

격투기는 한 방 제대로 맞으면 끝난다. 전략과 임기응변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전략이라기보다 그림이랄까? 1라운드는 체력 안배하고, 2라운드는 싸우고, 이런 식의 전략은 세워도 실행을 못한다. 대신 상대가 어떻게 나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그림을 그린다. 돌방상황이 엄청 많다. 몸에 익은 기술이 바로 반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가장 곤란한 상황은 언제인가?
배를 맞았을 때. 무릎이든 주먹이든 딱! 맞으면 욱! 한다. 티내면 상대가 들어온다. 숨을 못 쉬겠는데도 눈빛과 정신이 살아있어야 한다.

눈싸움이나 시선 같은 것도 연습했나?
그렇진 않다. 선수 나름인 것 같다. 난 싸우기 전에 눈을 안 본다. 시합 시작되고 나서 바로 본다. 평정심을 잃어서 경기에 도움될 게 없다.

이겨야겠다는 승부욕이나 분노보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쪽이 더 유리한가?
어느 정도는 분노가 있어야 한다. 너무 평온해서도 안 되고.

실제 경기에선 뭐가 제일 다른가?
깡. 수만 명이 지켜보는 링 위에서 훈련한 걸 고스란히 풀어낼 수 있는 건 바로 깡이다. 정신력! 담력! 말은 쉽지만 진짜 어렵다.

UFC 링 위에 서는 일은, 시합이 아니라 싸움이라고 생각한다는 기사를 봤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나?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 스포츠야, 스포츠가 이런 감정으로 싸울 수는 없어,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번 크게 지고 나니까 스포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훈련받은 걸 실천하려는 게 스포츠 아닐까? 지금은 반반이다.

섭미션과 KO 중 어떻게 이기는 게 더 짜릿한가?
KO. 상대가 쓰러지는 데서 희열을 느낀다. 재미있는 건, 사람들은 두 선수를 다 보지만 나는 딱 한 명밖에 안 보인다. 쓰러질 만한 펀치라고 생각하고 딱 때렸는데 상대가 진짜 쓰러지면 그 느낌은 말로 못할 정도다.

오히려 당신이 유명세를 탄 건 타격이 아니라 섭미션 기술 ‘트위스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의 복수전에서 UFC 출범 이래 처음으로 트위스터로 승리를 거둔 선수가 되며 인기를 얻었다. 아무도 해내지 못한 기술이지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스파링 때 많이 하던 기술이다. 바닥에서 가르시아의 백을 잡고 도는 순간 전광판이 보였는데 30초가 남아 있었다. 그대로 때리든, 잡고 있든, 기술을 걸다가 가르시아가 나를 올라타든, 이번 라운드는 점수에서 내가 이긴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뭐라도 해볼까 하다가 들어갔다. 진짜로 내가 트위스터를 걸 줄은 몰랐다. 말도 안 되는 기술이다.

인기가 급상승했다.
촬영이나 인터뷰 같은 게 들어오면서 좀 느끼긴 하는데,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진 않는다. 요즘엔 사람을 만날 때 넘치는 모습을 보이면 그게 끝이라는 생각을 항상 한다. 분에 안 맞게 행동하면 고스란히 돌려받는다.

멘토로 여기는 정부경 선수는 당신의 첫인상이 ‘거만했다’고 표현했다.
딱 그때 그랬다. 내가 최고인 줄 알고, 남들이 몰라줄 뿐이라고 생각했다. 크게 한 번 깨지고 정신 차렸다. 실신 패 당한 게 처음이었다. 누구한테 맞아서 넘어진 것도 처음이었고.

KO 당한 조지 루프와의 경기인가?
진 뒤에 내가 저지른 행동들이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선수들이 얼마나 날 욕하고 있을까? 얼마나 내가 우습게 보였을까?

싸우면서 가드를 단단히 올리는 편은 아니다. 맞는 게 두렵지 않나?
싸움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다. 올리면 앞이 잘 안 보이니까. 한 대만 걸리면 내가 눕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즘엔 고치려고 많이 연습하고 노력했다.

경기를 즐길 수도 있나?
경기를? 절대 못 즐긴다. 시합의 부담감이라든가, 준비 과정은 즐길 수가 없다. 이기고 나서 다른 걸 즐겨야지. 이런 촬영이라든가 돈, 명예, 여자…. 하하.

    에디터
    유지성
    포토그래퍼
    신선혜
    모델
    여연희
    스탭
    스타일리스트 / 박지석, 헤어 스타일링/ 동화(Suave17), 메이크업 / 이가빈, 어시스턴트/ 하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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