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도 먹어도 생각나는 치킨. 서울시의 내로라는 모든 치킨집을 다녀왔다.
왕천파닭 단어 하나를 한자나 영어로 바꾼 집은 맛도 말장난 수준일 것 같다. 하지만 ‘파닭’은 다르다. 혀끝을 자극하는 짭짤한 튀김과 ‘샤프한’ 파채의 조합은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 왕천파닭은 조치원에서 문을 연 지 10년도 넘었다. 원조답게 ‘오리엔탈 소스’ 나 ‘소이 소스’ 는 없고, 레몬만 하나 올린다.
삼우치킨센타 프랜차이즈의 공습에도 끄떡 않고 대림동 터를 40년 동안 지켰다.두어 번 바꿔도 여전히 낡은 간판과, 30년전통이라고 쓴 10년 된 현판이 이 집 저력을 가늠케 한다. 육즙을 튕기며 탄력있게 찢기는 전기구이 통닭의 허벅다리는 신사 숙녀 침샘에 홍수 경보를 울린다.
한강 치킨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동네에서 아이를 낳으면 어릴 때부터 한강 치킨을 먹이는 행운을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큼직한 닭은 튀김옷이 얇아 한입 뜯으면 껍질이 줄줄 딸려오는데, 그래서 맨얼굴처럼 더 담백하고 부드럽다. 이 맛 때문에 닭 값보다 더 비싼 퀵 서비스를 시키는 사람이 서울 시내에 숱하다.
원조마늘통닭 다진 마늘즙만 슬쩍 묻혀 튀기는 마늘통닭을 보고 문래동 사람들은 한쪽 입꼬리로 웃을지도 모른다. 제목이곧 내용인 이 가게에는 테이블마다 다진마늘이 한계령 폭설처럼 올라간 닭을 먹고 있다. 밥숟가락 위에 생김치를 올려먹듯, 닭고기 살 위에 마늘을 펑펑 올려먹는다. 마늘 특유의 단내가 담백한 닭과얼씨구나 잘도 논다.
길목 바비큐치킨 시흥동은 닭 중에서도 바비큐 양념치킨 냄새가 진동하는 동네다.지난 30년 동안 닭집이 하나 둘씩 프랜차이즈로 변해도 길목 바비큐치킨은 그 길목을 뚝심 있게 지켰다. 주문을 하면, 초벌한 닭에 다시 양념을 바르고 숯위에서 연신 부채질을 해가며 닭을 굽는 장인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닭 앞에 경건해지는 이유다.
경발원 영화 세트장 같은 중국집 경발원에는 상상에도 없던 깐풍기가 있다. 주문하면 주방에서 생닭을 치는 소리가 턱턱 나고, 이윽고 마른 고추와 부추를 맵게 절인 깐 풍기가 나온다.매운맛이 혀에 직선으로 꽂히고, 닭은 튀겼다고는 믿을 수 없이 촉촉하다. 노부부가 40년간 회기동에서 생계형으로운영하고 있는 이 중국집이 제발 대대손손 그대로였으면….
벌떼치킨 홍대 앞에는 ‘3대 치킨집’ 이 있다. 사람에 따라 5대가 되기도, 완전히 다른 3대가 되기도 하지만 벌떼치킨은 안 빠진다. 기름이 잘잘 흐르는 짭짤한 튀김옷과 탱글한 육질 덕이다. 여름이면 “치맥(치킨에 맥주)치맥”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벌떼치킨에서라면 생맥주 5만리터도 거뜬하다.
꼬꼬순이 홍대 근처 꼬꼬순이는 간이 강한 만큼 중독성도 강하다. 바싹 튀긴 닭껍질에 코를 들이대면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밀도 있게 풍긴다. 먹어보면 살짝달큰하기까지 한 고소함이다. 들깨가루가 들어간 양념치킨은 중독성의 정점을 찍는다. 그래서 꼬꼬순이에 가면 “반반무요(양념 반, 프라이드 반, 무 많이 주세요)” 를 자꾸 외치게 된다.
무봤나 촌닭 맛있는 음식이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같다면, 맛있는 통닭집은 지방의 재래시장 숫자와 같다.무봤나 촌닭은 부산에서 시작한 맵고 짜고 단 경상도식 치킨이다. 최근 신촌에도 분점을 열었다. 품위 생각할 것 없이 열손가락에 묻혀가며 먹어야 맛이다. 이제서울 사람들도 “무봤다!”
카도야 망원동 카도야에는 공들인 일본식 안주가 그득하다. 닭 튀김인 ‘도리가라아게’ 는 청어회와 함께 이 집을 떠받치는 대들보 메뉴다. 셰프가 술맛살리는 튀김 요리에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소스 없이 아사히 생맥주 한 잔과먹기에 좋도록 간도 적절하다. 여름밤이 더 길면 좋으련만.
레게 치킨 레게와 카레가 희한하게 잘 어울리는 건, 내키는 대로 밀어붙이는 레게 치킨만의 자신감 때문이다. 창고를 개조한 곳에 제멋대로인 헝겊을 두르고, 레게 음악을 틀고, 희미한 조명을 올려도 분위기가 산다. 카레가루를 듬뿍 뿌려 튀긴 치킨은 처음엔 ‘뭐, 이런 이상한 맛이…’ 하다가도 한번 맛들이면 쿵짝쿵짝 레게 리듬 만들어도 상수동으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치어스 치킨 부암동의 소슬한 정취 속에서 치어스 치킨 맛은 갈수록 명확해진다. 엄마가 집에서 간식으로 튀겨준 것처럼 깔끔하고 담백하다. 주인 할머니의 유쾌한 기운에 발길이 절로 간다. 꽃무늬 앞치마를 두른 직원들도, 양념장이 담긴 코렐 접시도 모두 꾸밈이 아니다. 먹으면 안다.
- 에디터
- 손기은
- 포토그래퍼
- 김종현
- 스탭
- 어시스턴트 / 홍서진,어시스턴트 / 김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