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작가와 독보적 작가 사이, 임성한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못하는 게 없는 비현실적인 여자 주인공과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보다 더 복잡한 가계도, 무섭고 기이한 대사와 상황 설정 등의 이유로 임성한의 드라마는 퇴근 후 보게 되는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신기생뎐>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귀신이 등장하면서 임성한을 다시 보게 됐다. 그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세계를 가지고 있다. 무속신앙과 허술하기 짝이 없는 특수효과로 표현한 빙의와 귀신, 남자들의 잦은 여장, 갑자기 돌연사하는 주변 인물들, 겹사돈과 뒤틀린 가족 관계, 인물들의 추악한 욕망과 속물 근성, 인과관계 없는 전개.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들 아닌가?
그녀는 컬트 공포 영화와 범죄물, 혹은 B급 코미디 장르에 어울리는 코드를 잔뜩 갖고 있다. 빨래판같이 생긴 복근 위에서 진짜 빨래를 하는 장면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만 않는다면 임성한 드라마는 지상 최고의 코미디다. B급 영화의 제왕 로저 코먼이 임성한 드라마를 본다면 당장 그녀를 기용하고 싶어 난리 날 거다. 불행이라면, 그녀가 어떻게 하면 우리 몸에 좋은 영양을 섭취하는지와(호두는 불포화지방산이 있어 몸에 나쁜 콜레스테롤을 없애준다는 강의) 가난하지만 단아한 여자가 어떻게 하면 부잣집에 시집가 사랑받을 수 있는지를 다루는 드라마를 쓴다는 거다.
나지언(자유기고가)
임성한은 ‘어르신 세대’의 추종자다. <아현동 마님>에서 배우들이 앙드레 김 코스프레를 한 채 몇십 분씩 쇼를 한 것도 부모를 위한 재롱잔치였고, 독재자 같던 가장이 귀신에 씌여 눈에서 녹색 빛을 뿜어낸 뒤 개과천선의 여지를 보이는 건 <전설의 고향>의 한 대목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세대를 위한 재미에는 <무한도전>에 대한 일방적 비난이, 못생긴 여자가 곧 ‘건어물녀’라는 사실 왜곡이, 며느리는 하루 종일 시부모에게 음식을 갖다 바쳐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임성한은 고연령 시청자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자신이 전달하는 정보와 가치관을 모두 당연한 사실인 것처럼 강요한다. <인어아가씨>에서 “피고름으로 글을 쓴다”고 항변하던 그의 작가주의란 결국 한 세대에게 잘 보여 다른 세대에게 떵떵거리는 것뿐이다. 임성한의 드라마는 결국, 어르신들에게 요즘 유행어나 농담을 전해주고, 요리를 잘하며, 눈치 빠른 여자가 부유한 남자의 집에 가서 사랑 받는 걸까? 이 내용이 지난 10년 동안 공중파에서 계속 되어 왔다는 건 우리가 말 안 통하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과 같다. 임성한의 드라마는 “노인에게 표 주지 말자”와 “젊은 애들 투표하지 못하게 해라”라는 정치권의 대립을 그대로 옮겨온 것과 같다. 그리고 임성한은 그 사이에서 이득을 취하면서 작가주의자인 척하는 거간꾼일 뿐이다.
강명석( 편집장)
이번 귀신 빙의 논란은 시시하다. 어떤 면에서나<왕꽃선녀님>의 발꿈치도 못 따라 갔으므로. 그저 이슈 메이커 존재감을 확인한 정도? 임성한은 ‘불편한’ 작가다. 그 불편함이 싫으면 안 보면 되는데, 보긴 보면서 화를 낸다. ‘욕하면서 본다’는 말은 지겹지만, 사실이다. 요즘은 뭔가 낯설거나 이해할 수 없으면 일단 화를 낸다.
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걸 보게 만드냐고 항의한다. 손님은 왕이라는 논리가 이렇게도 통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임성한이 ‘불편한’ 작가라는 말은 여러 가지로 수정할 수 있다. 임성한은 기괴한 작가다. 임성한은 이상한 작가다. 임성한은 미친 것 같은 작가다. 임성한은 무조건 싫은 작가다. 어쨌든 임성한은 작가다. 그는 쓰고 싶은 걸 맘껏 잘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표현의 자유를 알면서, 표현의 이상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표현의 나쁨, 표현의 방자함, 표현의 외설, 표현의 어이없음 등은 모두 자유에 포함되지 않나? 작가의 책임은 별도다. 범법했다면 죗값을 치를 일이지만, 쓰고 싶은 대로 썼을 뿐인데, 방송국이 사과한다고 작가가 반성할 일인가? 사과를 하든 말든 방송국 사정이다. (사실 방송국의 눈치 보기 같지만.) 호오야 갈리겠지만, 그녀를 둘러싼 얘기가 ‘작가’를 향하기 보다는 ‘마녀’를 향한 건 아닌지. 확인하자면, ‘나쁜’ 작가도 작가다.
에디터/ 장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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