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ing

둘보다 나은 셋

2012.01.10GQ

그 몸은 하나인데 벗은 여자가 둘이려니 그 손이 하, 분주했다 하더라.

오늘 밤에 대한 예측은 극과 극이었다. 너무 어렵거나 지나치게 명확했다. 그냥 넘어갈 리는 없었다. 아무 일 없을 수도 있었다. 새벽 2시, A와 나는 강남 어디 주상복합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술이 없었다면 이런 밤을 어떻게 버텼을까? 두개골과 뇌가 따로 도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포켓볼 소리에 자지러지게 웃을 정도는 됐다. 우린 밤 9시쯤부터 서울에 있는 모든 종류의 술을 양껏 마신 후였다. 샴페인으로 시작해 맥주로, 거기에 소주를 섞었다가 와인을 마시던 참이었다. 하지만 이 건물 앞에서,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한 곳에서 4시간 동안 그 다양한 종류의 술을 다 마실 수 있었던 것도 평범하진 않았는데, 음악은 더 인상적이었다. 글렌 굴드니 밥 딜런이니 어쨌든 볼륨은 시종 작았지만 퇴폐적인 구석이 있었다. 우리가 하는 얘기가 카운터에 앉아 있던 두 여자에게까지 들리진 않았을까? 아무렴 어때? 다시 올 가게 같지 않았고, 우리 얘길 들은 그들 마음이 조금이라도 동한다면 더 재밌는 일이 벌어질 참이었다. 둘 다 다리가 곧았고, 그중 한 명은 맨다리였다. 우린 여자 둘의 얼굴이 의외로 가깝게 붙어 있는 걸 보고 음탕한 상상을 했다. 이날, 재떨이는 그와 내가 하나씩 썼다. 다 탄 담배꽁초 여덟 개비가 투명한 재떨이 안에서 꺾여 있었고, 우린 어딘가 안달 난 열일곱 살 남자애들 같았다.

“말도 안 돼.” 나는 A의 말을 듣고 눈을 흘겼다. 뒤로 한껏 기대서 재를 털었다. A가 말했다. “진짜라니까? 바로 지난주. 어린 여자애 둘. 클럽에서 걔네 집으로. 그러고 셋.” A는 꽤 잘생긴 남자였다. 얼굴선은 기둥처럼 굵은데 눈매에는 소년이 남아 있었다. 몸은 탄탄한 근육질인데,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다. 태권도 선수였으면서 피아노를 7년이나 쳤다고 했나? 여자들은 그의 남성성을 예찬하거나 의외로 소년 같은 구석을 귀여워했다. 클럽에선 주로 가만 앉아 있는 쪽. 용기 있는 여자가 다가와서 “저 친구가 당신을 맘에 들어해” 말하면 “그럼 이리 오라고 전해. 내가 가?” 묻는 비현실적인 쪽. 일주일 전에도, A에겐 그런 일이 있었다 했다. “그래서 셋이 잤어? 했어?” “들어봐. 아는 형이랑 위스키나 마시면서 앉아 있었어. 나 클럽 별로 안 좋아하거든. 거기 음악 들으러 가는 여자가 몇이나 될 것 같아?뻔하잖아. 뻔한 건 재미없잖아. 그냥 친구랑, 이렇게 둘이 앉아 있는 게 난 더 좋….” “됐고. 셋이었냐고. 여자 둘에 너 하나?” “그럼 남자 둘에 여자 하나겠냐?”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는 사실 없는 게 아닐까? 엘프나 고블린이 등장하는 게 아니라면, 인간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항상 상상을 초월한다. 다만 한 명이 인지할 수 있는 범위에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을 뿐. 오늘은 그걸 조금은 넘어 서려는 밤이었다. A가 말을 이었다.“키가 큰 여자가 나한테 왔어. 눈에 띄는 얼굴, 니트 미니 원피스. 감이 오지?” “안 와.” 부럽다 말한다고 지는 건 아닐 텐데. “하하. 그 여자가 말했어. ‘제 친구랑 같이 왔는데요, 그 쪽이 맘에 든다고….’ 저쪽에 좀 작은 여자가 앉아 있었어. 섹시하기보단 귀엽고 둥근 타입. 난 사실 그쪽이 더 맘에 들었어. 안았을 땐 그렇잖아, 알지?” “몰라.” 안다 말해도 지는 건 아닐 텐데. 하지만 보기에 좋은 몸과 안았을때 충만한 몸은 따로 있다. 연애, 사랑 같은 단어가 낄 틈이 없는 공간, 몸이 곧 언어인 공간에서라면 더욱.

“아는 형은 자리 비운 지 오래고, 술은 남아 있었고. 걔들이 마시던 술을 갖고 내 자리로 왔어. 마셨지. 키가 큰 여자애는 강남에서 흔한 얼굴이었는데 손을 댄 것 같진 않았어. 귀여운 애는 내내 좀 조용했고.” A의 양쪽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한 명은 누가 봐도 벗기고싶은 여자였다. 나머지 한 명은 A의 취향에 닿아 있었다. 먼저 다가온 건 큰 쪽이었다. 그 여자가 왼손을 뻗어 A의 허벅지에 얹었다. 나이 서른에 장난끼가 필요하다면 이런 순간이 아닐까? A는 왼손을 뻗어 조용한 여자 어깨에 둘렀다. 키가 큰 여자가 다 안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가요, 우리. 지혜(가명)야, 같이 나가자. 우리 집에 가서 셋이 더 마시자. 음악도 우리집이 더 좋아.” 작은 쪽의 이름이었다. 내가 물었다. “그래서, 집으로 갔어? 셋이?” “갔지. 취해서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어떤 건물 펜트하우스였어.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바로 거실. 집 안에 수영장 있는 거 본 적 있어? 우리가 들어갔던 방, 거기가 바로 클럽이었어. 디스코볼 돌아가고, 디제이 부스 있고, 술은 종류별로. 거기서 계속 마셨지.”

파자마 파티 같은 걸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클럽에서 입고 있던 옷 그대로, 그들은 바닥에서 마셨다. 키가 큰 여자가 얇은 다리를 모로 두고 앉아서 다시 손을 뻗었다. A는 지혜라는 여자를 봤다. A의 허벅지에서, 점점 올라가고 있는 손을 보면서 그녀는 난감해하다 얼굴을 붉히다 웃다 했다. 어쩌자는 건지. “그래서 어쨌어? 복잡한데?” “복잡할 거 없어. 큰 여자애한테 그냥 물어봤어. ‘셋이 할래?’” “쿨한 새끼….” “근데 일어나서 홱 나가던데?” “옳지, 옳지. 지혜 잘한다.” 그 방에 있던 세 명의 감정선과, 질투와 관음 사이에 있는 내 마음중 더 복잡한 건 어느 쪽이었을까? 그날 밤은 끝나지 않았다. 이날 밤도 마찬가지다. 멀었다, 끝나려면. “키 큰 애가 지혜를 따라 나갔어. 도란도란하고 다시 오더라? 이때부터 지혜가 술을 빨리 마시기 시작했어. 10분 동안 샴페인을 몇 잔이나 들이키던지….” 결국, 셋 다 나체로 뒹굴고 싶은 밤이었던 셈이다. 곧 지혜가 A의 무릎에 쓰러졌다. 키 큰 여자가 다시, 오른손으로 A의 뺨을 잡고 키스했다. A는 왼손으로 쓰러진 여자의 브래지어 후크를 풀었다. 잠든 줄 알았던 여자 몸이 조금 떨렸다. 나는 숨을 내쉬면서 물었다. “이게 다 네가 잘생겨서 벌어진 일이냐?” “아니, 그냥 타이밍이 맞은 거지. 근데 그날은 좀 포르노 같았어.”

2010년, 샤넬 봄/여름 컬렉션에선 모델 프레야 베하, 라라 스톤, 밥티스트 지아비코니가 건초더미 위로 쓰러졌다. 돔 페리뇽의 어떤 에디션은 딱 세 병의 샴페인이 들어 있다. ‘스리섬’은 이런 식으로 대개 은유이거나 관음이거나, 일상적인 세계에선 둘 중 하나다. 이날 A의 경우는 명백히 그 바깥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걔들 종종 그렇게 노는 것 같던데? 지혜인가 하던 애도, 취하기 전에나 아닌 척하고 있었지 벗기고 나니까 아주 활발했어.” “활발?” 세 명의 입술이 각각 두 명의 입술에 닿았고, 세 개의 혀가 세 개의 가슴에 각각 닿는 식이었다. 두 명의 여자가 A에게 매달리는 형식이 아니라, 셋 사이에 가능한 모든 조합이 A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A는 입과 손을 쉴 틈이 없었다. 생각할 틈도 없었다. 한 명의 여자가 엎드려 있는 동안 또 한 명과 키스하고, 한 명의 가슴을 만지는 동안 들리는 건 누군지도 헷갈리는 숨소리뿐. “그래서, 좋았나?” “왜, 부럽나?”

한바탕 지났을 때, A는 지혜 손을 잡고 수영장으로 갔다. 쓰러져 있던 한 명이 비척비척 따라왔다. 셋은 수영했고, 그 안에서 한 번씩 더 했다고 A가 말했다. 여기서부턴 정말이지 거짓말 같았다. 아무리 서울에 부자가 많다지만 20대 여자애들이 그런 펜트하우스에 산다고? 실내에 수영장이 있는 집에서 셋이 나체로 놀았다고? <컬러 오브 나이트>나 <쇼걸> 같은 영화를 볼 때, 우린 다 어렸다. 그런 신은 거기서나 가능한 거 아니었나? A는 당황하다, 고민하다, 전화기를 들었다. “왜, 누구한테 전화하냐 이 시간에?” “기다려봐. 여보세요? 집? 그때 거기가 어디였지? 아, 그래, 가깝네? 알았어. 기다려.” “뭘 기다려, 누굴?” “가자. 주소 알았다. 걔네도 술 마신단다.” “걔네가 누군데? 야, 여보세요?”

그래서 새벽 2시. A와 나는 거대한 주상복합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정문 앞에 서서 올려다보니 몇 층인지 가늠하는 것도 힘들었다. 어지러웠다. 높이 때문인지, 취기 때문인지, 꼭대기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상상해서인지. 안엔 누가 있는지도 몰랐다. 우린 여자 두 명에 대해 얘기하다, 당연한 의심을 드러내다 여기까지 왔다. 그럼 여자 둘에 남자 둘? 파티가 열리는 중이라면 더 많은 경우의 수를 조합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런 밤은 그래야만 끝나니까. 건물은 위압적이었다. 내 안에서 쌓여 있던 어떤 경계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들어간다고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알면서, 취한다고 다 벗고 노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 나이에. A가 짙은 눈썹을 씰룩거리면서 회전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가 태우던 담배는 아직 남아 있었다. 집게손가락으로 불씨를 털어낼 때, 손가락이 얼어있다는 걸 알았다. 안에서 A가 손짓했다. 빨리, 들어오라고.

 

    에디터
    정우성
    아트 디자이너
    Illustration/ Finger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