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새빌로의 남자

2012.02.15GQ

노튼 & 손스, 이타우츠의 디자이너 패트릭 그랜트를 만났다.

이렇게 수북한 수염을 가졌을 줄 몰랐다.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수염을 기른다.

그게 도움이 되나?
그럼. 난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런던의 동쪽에 사는데 한 50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가면 회사에 도착한다. 겨울엔 찬바람이 어찌나 쌩쌩한지 꼭 수염을 길러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50분이면 회사에 도착한다고?
런던이 워낙 작은 도시니까. 군복에 사용하는 소재로 만든 아주 두꺼운 코트가 두 벌 있는데, 겨울엔 이 코트나 바버 재킷을 입고 자전거를 탄다. 별로 춥지 않을 때는 트위드 재킷을 입기도 하고. 라파라는 사이클링 브랜드를 좋아한다. 지퍼가 숨겨져 있는 디자인이 아주 깔끔하고 단정해서 주로 이곳 트리커를 입고 일하러 간다. 자전거 탈 때 유니폼이다.

자전거를 탈 때도 옷에 신경 쓰나?
물론이다. 트레이닝복 같은 건 입어본 적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언제부터 옷 입기를 좋아했나?
전공은 엔지니어링이었다. 원래 엔지니어나 건축가가 되려 했다. 그러다 대학원 과정 이수 중에 우연히 새빌로의 노튼 앤 손스를 알게 됐다. 보자마자 맞춤복과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집과 차를 팔고, 친구에게 빌릴 수 있을 만큼 돈을 빌렸다. 결국 은행에서까지 돈을 빌려 친구들과 함께 파산 직전의 새빌로 노튼 앤 손스를 샀다. 그리고 천천히 이 회사를 다시 일으켰다. 이게 6년 전 일이다.

그럼 이타우츠는?
1960년대 후반에 또 다른 재단회사인 노튼 앤 손스가 이타우츠 앤 손스를 샀다. 우린 이 컬렉션을 일종의‘ 레디 메이드’ 라인으로 만들었다. 전통적인 방식의 재단에 단순한 양감을 더해 깔끔한 룩을 만든다. 영국적인 무늬의 옷감을 중심으로 아주 소량만 생산한다. 그럼 아주 짱짱한 직물이 만들어지는데, 이렇게 실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 우리 옷의 큰 특징이다.

킴 존스나 헨리 홀란드, 크리스토퍼 케인, 자일스 등의 많은 신예 런던 디자이너와 함께 일한 걸로 알고 있는데, 특히 런던은 디자이너들끼리 서로 긴밀하다는 인상을 준다.
신인들은 서로 힘들기 때문에 늘 좋은 관계를 가지고 함께 협업 컬렉션을 통해 일한다. 조나단 선더스와 크리스토퍼 케인은 절친한 친구고, 우린 다 같이 자주 본다. 킴 존스와 처음 컬렉션을 함께했고, 지금 내 여자친구도 그의 소개를 통해 만났다. 사적으로 긴밀하고 서로가 가진 고유의 디자인을 존중한다.

새빌로는 이제 더 이상 새롭거나 신선하지 않다는 얘기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 같은 사람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새빌로는 아직까지 빨간 코를 지닌 남자가 빨간색 트위드 재킷을 입고 옷을 만드는 곳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 그래서 요즘 영국의 오랜 남성복 컬렉션을 부흥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40년 전 런던 남성복을 재건축하는 일인데, 런던 패션 위크 중 3일을 남성복 패션 위크로 정했다. 버킹엄 궁전에서 리셉션도 한다.

어떤 사람은 재단사를 심리 치료사라고도 말한다.
우리는 의사나 다름없다. 고객들은 지나가다가도 우리 새빌로 매장 소파에 앉아서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다. 한 번은 조니 바로우라는 런던 뮤지션과 한 시간 반 동안 계속 옷과 그의 옷장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버버리 모델이기도 했던 그의 여자친구 이티 캠블이 대체 남자끼리 뭐 하는 짓이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걸.

어떤 사람들이 이타우츠나 노튼 앤 손스를 찾는가?
농부부터 왕자까지 고객층이 다양하다. 알렉산더 맥퀸도 우리 옷을 입었다. 1945년부터 2009년까지 온 오랜 단골 손님이 있었는데, 죽기 전까지 우리 매장을 찾았다. 그 사람이 입었던 옷만으로 우리 역사를 한 번에 말할 수 있다. 한 브랜드의 옷을 꾸준히 오래 입는다는 건 참 중요한 일이다.

왜 그런가?
그건 옷을 완벽히 잘 만들었을 때만 일어나는 일이니까. 우린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닌 초크와 줄자 테이프로 작업하고, 아직도 편지는 잉크 펜으로 쓴다. 새빌로는 오래되고 느린 세계다.

지루하진 않고?
이런 차분한 세상에 있어서 행운이라 생각한다. 소재를 살리는 단순한 재단, 허리가 약간 들어가고 조금 긴, 독특한 균형과 비율을 맞추는 걸 연구하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지.

그럼 그렇게 멋진 옷을 입은 새빌로의 신사가 갖춰야 하는 건 뭘까?
예의 아닐까? 그건 새빌로뿐 아니라 세계 어느 도시, 서울에서도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에디터
    김경민
    포토그래퍼
    한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