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동안 들었던 마이클 피트에 대한 소문은, 전부 틀렸다.
뉴욕 맨해튼 서쪽의 허드슨 스튜디오는 채광 좋은 현대식 건물 13층에 있다. 엘리베이터가 제 층에 도착한 걸 알리는 “땡” 소리는 쾌활한 프런트 맨이 팁을 잔뜩 받았을 때 울리는 벨 소리 같았고, 뉴욕의 맑은 초가을에 어울리는 사운드였다. 예정대로라면 마이클 피트는 아홉 시 정각에 스튜디오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아홉 시가 지나고 몇 번의 경쾌한 벨 소리를 흘려 보낸 후, 어떤 기척도 없이 마이클 피트가 나타났다. 단정한 검정색 셔츠와 폭이 좁은 검정 팬츠, 파란색 컨버스 차림. 야구 모자의 챙을 옆으로 돌려 쓰고, 손에는 커다란 갈색 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매니저도 없이 혼자였다. 그는 예상했던 것보다 얼마쯤 살이 빠져 보였고, 그 때문인지 눈은 더 파랗고 입술은 더 붉었다. 모자를 벗자, 결이 가느다란 금발 머리가 폭포처럼 이마 위로 쏟아졌다. 마이클 피트는 스튜디오 안의 모든 사람과 차례로 인사를 했다. 악수를 하면서 “마이클”이라고 작게 얘기하는 게 그의 인사 방식이었다.
그는 빠뜨린 사람이 없는지 주변을 꼼꼼히 둘러본 후, 의자에 앉아 바나나를 먹기 시작했다. 셔츠도 팬츠도, 심지어는 운동화 끈까지 모두 깨끗하고 좋은 냄새가 났다. 마이클 피트는 한때 그런지 룩의 슈퍼 아이콘이었다. 티셔츠의 솔기를 일부러 찢고 멀쩡한 운동화를 흙탕물에 굴리던 일군의 무리는, 마이클 피트의 룩을 브루클린에서 온 ‘농염한 그런지’라고 추앙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지 룩의 역사를 마이클 피트 전과 후로 나누어 기록했다. 마이클 피트는 그 시절과 지금은 달라졌다고 말했다.
“변한 것 같아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입은 것 같은 룩을 좋아해요. 하지만 요즘은 말끔한 수트와 셔츠들도 좋아하게 됐어요. 전엔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옷들도 이젠 우아하거나 고상하다는 다른 관점이 생겼거든요. 제가 달라 보인다면 그건 옷을 고르는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일 거예요.” 그런 그에게 오래전 선댄스 영화제에 입고 왔던 혁명적인 티셔츠의 행방을 물었다. 그 티셔츠에는 흘려 쓴 글씨로 ‘폭탄보다 오르가슴이 낫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라고 적혀 있었다. “그 티셔츠요?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몰라요. 하지만 난 지금도 오르가슴이 폭탄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해요.” 바나나를 다 먹고, 첫 번째 컷을 찍을 때 마이클은 회색 버버리 스리피스 수트에 어떤 셔츠가 어울릴지 궁리하는 눈치였다. “셔츠 없이 입어보는 건 어때요?” 했을 때 마이클은 “그거 좋네요, 아니면 바지 없이 입어볼까요?” 하는 시시한 말로 사람들을 웃겼다. 그러다가 카메라 앞에서는 느릿느릿 조금씩 몸을 움직였는데 어깨를 숙였을 때 라펠이 기울어지는 각도나 팔을 벌렸을 때 소매의 모양 같은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럴 때의 그는 한밤중에 천천히 움직이는 수상한 동물처럼 보였다. 모니터에 뜬 마이클 피트의 모습은 낯선 감각을 부추겼다.
그는 블론드 헤어, 아름다운 파란 눈, 벌에 쏘인 것처럼 관능적인 입술, 전통적 기준의 미적 요소를 모두 가졌으되, 전형적이거나 일반적이지 않았으며, 흔하지 않게 아름다웠다. 촬영장의 스태프들은, 바로 그 특별함 때문에 요즘 패션계에서 모두들 마이클 피트를 원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데이비드 심스가 찍은 프라다의 광고 캠페인과 이브 생 로랑 옴므의 컬렉션 필름, 앤 드뮐미스터의 이미지 필름 등에 참여했다. 그중 앤 드뮐미스터의 아방가르드한 필름은 직접 연출했다. 당시 연인이었던 제이미 보체트를 모델로 사막에서 촬영한 그 필름은 느리게 흐르다가 번개처럼 빨라지고, 흑백으로 고요하게 움직이다가 채도 높은 적나라한 색으로 돌연 바뀌었다. 도무지 잠깐도 마음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영상에 대한 저마다의 감상 평은 “정말이지 마이클 피트답다”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이 말이 모호하거나 불분명하지 않은 이유는, ‘마이클 피트다운 것’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청년 마이클도, 배우 마이클 피트도, 그가 찍은 영상도, 그가 만든 밴드 ‘파고다’의 노래들도, 모두 시적인 동시에 선정적이라는 점에서 마이클 피트다웠다.
마이클 피트는 뉴욕의 브루클린에 산다. 그 동네에서 마이클 피트를 만나는 건, 가을 공원에서 단풍을 줍거나 파리 골목에서 찌그러진 폭스바겐 자동차를 보는 것만큼이나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그는 숨어 지내는 슈퍼스타 대신 젊은 동네 주민으로 히스패닉, 아시안, 유태인들과 섞여 평범하게 산다. “브루클린 골목을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해요. 모르는 사람이어도 누군가 함께 걷고 있다면 안심이 되죠. 우리 동네는 언제나 재미있고 시끄러워요.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사람들의 표정이나 옷차림을 보면 좋은 생각도 많이 나요.
동네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은 ‘굿바이 블루 먼데이’예요. 그곳 주인이 음악을 정말 잘 틀거든요. 가끔씩 너무 번잡하지 않은 날엔 술 한잔 마시다 부탁을 해서 연주를 하기도 해요. 맛있는 걸 먹고 싶은 날은 ‘메종 프리미에’에서 굴 요리를 먹어요. 약속이 없는 친구는 죄다 불러서 다 같이 먹죠” 이런 말을 할 때의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천진해서, 서른이 넘었는데도 덜 자란 아이처럼 보였다.
데뷔 후 그를 줄곧 따라다닌 얘기들, 예를 들면 뉴저지의 고등학교 세 곳에서 모두 퇴학당한 난폭한 성장기, 인디와 아웃사이더를 적극적으로 표방하는 것 같은 영화 취향, “이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아. 꿈꾸는 것도 좋지만 언젠가는 깨어나야 해”라는 <몽상가들> 속 매튜의 대사를 비롯한, 새빨간 입술에서 나온 염세적이고도 멜랑콜리한 문장만으로는 마이클 피트를 분명히 설명할 수 없다. 심지어 “이미 나에게는 정열이 없다. 점점 소멸되어가는 것보다는 한꺼번에 타버리는 쪽이 훨씬 낫다.”는 커트 코베인의 유언은 영화 <라스트 데이즈>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그 문장이 마이클 피트의 말인 줄 아는 사람은 도처에 널렸다. 가장 흔한 얘기는 그가 LA에서의 반짝이는 삶을 버리고 척박한 브루클린으로 옮겼다는 것. “LA에 많이 가긴 했지만 거기서 산 적은 없어요. 나에 관한 소문 중 맞는 건 내가 고양이와 산다는 것 정도예요. 우리는 12년을 함께 살았어요. 내가 고양이를 키운다기보다는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사는 게 맞을 거예요. 쥐를 쫓아주니까, 우리 둘 다 괴롭지 않게 살 수 있거든요. 집에선 기타를 치고 글을 써요.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고 싶어요.”
그의 밴드 ‘파고다’는 꽤 부지런히 음반을 발표하고 공연을 연다. 마이클은 밴드의 보컬과 기타, 그리고 앨범 커버와 뮤직비디오 등의 아트 작업을 맡고 있다. 만약 ‘파고다’에 여자 멤버를 들인다면 그게 누구였으면 하는지 물었을 때 그의 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잔다르크는 어떨까요? 아, 전지현도 좋아요. 그녀가 노래를 잘하는지 혹시 물어봐 줄래요?” 그러고는 파고다 멤버들과 서울 투어를 꼭 가고 싶고, 이왕이면 하늘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라는 가을에 서울에서 노래하고 싶다고, 지금부터 공연장소를 추천 받겠다면서 페이스북 주소를 적었다. (www.facebook.com/Michael.Pitt.and.Pagoda)
그는 카메라 앞에 서는 것과 카메라 뒤에 서는 것, 누군가에게 찍히거나 뭔가를 찍는 것, 다 좋아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조각을 깎고 그림을 그리는 것 전부를 공평하게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렸을 땐, 지금 하는 것 말고 뭔가 다른 것 하나를 더 한다는 사실이 좋았어요. 그런데 그 기분은 아주 잠깐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일의 장르를 나누거나 더 집중하는 것을 고르지 않아요. 그 순간에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요. 행복하고 단순하게 살고 싶어요. 그런 게 진짜 성공한 삶인 것 같고요.”
촬영이 끝나고 마이클 피트와 헤어진 후, 스튜디오에선 다 못한 얘기들을 메일로 보냈다. 며칠 후 답이 왔다. 그는 구스 반 산트와 미카엘 하네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와 존 카메론 미첼 등 함께 작업한 감독에 대한 질문이나 그가 맡았던 영화 속 캐릭터, 찌질이, 악당, 살인자에 관한 질문은 빈 칸으로 남겨두었다. 대신 평범한 일상이나 브루클린에 대한 얘기에 대해선 길고도 구체적인 답을 보냈다.그가 보낸 메일의 마지막 구절을 싣는다. “나는 지금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어요. 검정 수트 팬츠를 입고 레이스업 부츠를 신었는데 모두 10년 정도 된 것들이에요. 비행기를 타기 전 집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어요. 여권이 감쪽같이 사라졌거든요. 하지만 결국엔 이렇게 찾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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