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추락하는 투수에겐 날개가 있을까?

2014.07.23GQ

요즘 한국 프로야구는 야구 같지가 않다. 3할 타자도 명함을 못 내민다. 10점을 내도 안심하지 못한다. 극심한 타고투저의 원인을 전방위로 쫓았다.

Sports판형

투수만 문제인가? 메이저리그는 지금 ‘투수의 시대’다. 7월 7일 기준, 평균자책점 3.00 이하 투수만 23명이다. 리그 평균 타율은 지난 1971년(0.249) 이후 최저인 0.251다. 한국 야구는 정반대다. 2점대 평균자책 투수가 NC의 찰리(2.90) 하나뿐이다. 대신 3할 타자는 34명이나 된다. 리그 전체 타율은 0.290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한 1999년(0.276)을 훌쩍 뛰어넘었다.

하지만 문제의 모든 원인을 투수에게만 돌려서는 안 된다. 당대의 야구 통계 전문가들은 일단 공이 타자의 배트에 맞고 나면, 그 타구가 안타가 될지 아웃이 될지 여부는 투수의 통제 영역을 벗어난다고 말한다. 통계 전문가 탐 탱고의 분석에 따르면 타구의 안타 확률은 “44퍼센트가 운, 28퍼센트가 투수, 17퍼센트가 수비, 11퍼센트가 구장”에 의해 결정된다. 실제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투수들이 득세하는 원인으로 포수들의 프레이밍(미트질) 능력 향상, 수비력의 발전, 전력 분석과 수비 시프트를 거론한다. 이런 연구 결과를 정반대 양상을 보이는 한국 프로야구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포수와 수비수들에게 뭔가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 적지 않은 야구 관계자들이 현재 프로야구의 가장 큰 약점으로 수준급 포수의 부재를 꼽는다. “2루 송구는 둘째 치고 기본적인 포구와 블로킹이 안 되는 선수도 많아요. 아마추어 야구에는 포수 전문 지도자가 없다 보니 프로에서 처음부터 가르쳐야 돼요.” 한 퓨처스팀 코치의 얘기다. 메이저리그에서 최근 각광받는 프레이밍은 고사하고, 스트라이크를 볼로 만들지나 으면 다행이다. 낮게 들어오는 공은 떨구면서고, 옆으로 휘는 공은 스트라이크존 밖으로 미트를 채면서 잡기 일쑤다. 자연히 볼넷이 늘어나고 무더기 실점으로 이어진다. 프로야구 통계사이트 ‘KBReport’에 따르면 프로야구 통산 9이닝당 볼넷은 3.5개지만, 올 시즌엔 3.9개다.

‘ESPN’의 필자 해리 파블리디스는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볼에 가까운 공이 ‘미트질’ 덕분에 삼진으로 처리됐을 때, 이것은 팀의 실점을 0.6점 막아내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 기록을 메이저리거들이 1년간 치르는 경기수(162)로 치환하면, 미트질이 뛰어난 포수가 연간 최대 50점가량을 막아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팀 승수로 환산하면 무려 5승의 가치가 있다. 순전히 수비만으로 이만큼 팀에 공헌할 수 있는 포지션은 포수뿐이다. 하지만 국내 야구에서 이만한 존재감을 지닌 포수는 박경완 이후로 맥이 끊겼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리그 전체 수비력의 붕괴도 심각하다. 단순히 실책 숫자만 놓고 보면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국내 야구 기록원들은 수비수에게 실책을 주는 데 인색한 편이다. 그보다는 타자가 쳐낸 타구가 안타로 연결된 비율인 BABIP 수치를 살펴보는 편이 낫다. 통상적으로 BABIP는 2할 9푼에서 3할 사이에서 형성된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1931년 이후 단 한 번도 BABIP가 3할 4리를 넘은 적이 없다. 올 시즌에도 리그 BABIP 수치는 0.298에 불과하다. 반면 올 시즌 프로야구리그 BABIP는 0.327로, 메이저리그보다 약 3푼가량 높다. 간단하게 말해 배트에 공만 맞았다 하면 MLB보다 3푼가량 높은 확률로 안타가 됐다는 얘기다. 타자들의 타격 기술이 메이저리그 보다 뛰어나서, 또는 타구 속도가 더 빨라서일까? 그보다는 수비수들의 실력 부족에서 원인을 찾는 편이 나을 것이다. 특히 2012년 0.300이었던 BABIP가 올해는 0.327까지 폭등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구단 확장으로 인한 선수 부족과 경기력 저하가 안타 확률의 비정상적인 증가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전력분석과 수비 시프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구단은 여전히 적다. 시프트를 쓰더라도 내야보다는 외야수의 위치를 옮기는 소극적인 수준에 그친다. 올 시즌 수난을 겪는 건 투수들만이 아니다. 포수도, 수비수도, 그걸 지켜보는 관중도 마찬가지다. 한국 야구 전체의 수난시대다. 배지헌(야구 칼럼니스트)

스트라이크존의 넓이, 잦은 오심 등 심판의 판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스트라이크존을 좁히겠다는 공식적인 공고는 없었다. 그보다 요즘 텔레비전 중계엔 PTS, 투구 추적 시스템을 이용한 사각형의 스트라이크존이 나온다. 투수들의 공이 모두 어디에 꽂히는지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심판들에겐 충분히 부담이 될 수 있는 장치다. 고정된 사각형 밖으로 빠지는 공을 스트라이크로 판정하면 논란이 생길 수 있으니까. 게다가 올해는 오심 논란이 유난히 많았다. 거기서 출발한 판정에 대한 부담이 스트라이크-볼 판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올시즌 스트라이크존이 좁아졌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심판들이 주위 시선을 의식하며 판정했다, 정도로 얘기하는 편이 적절해 보인다. 4월부터 6월까지는 타고투저가 심각했지만, 요즘은 다소 가라앉는 추세다. 심판진의 경직된 분위기가 다소 풀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스트라이크존이 좁아졌다고 투수들이 제 공을 못 던진다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만약 4월 한 달 정도쯤 극심한 타고투저 현상이 나타났다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5월, 6월까지 투수가 다소 좁게 느껴지는 스트라이크존에 적응을 못했다는 것은 변명처럼 들린다. 게다가 어떤 심판이 바깥쪽 공을 잘 잡아주고, 어떤 심판이 몸 쪽 공에 후한지 등의 정보는 이미 모든 구단이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투수는 그런 심판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쪽으로 경기를 운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올 시즌엔 투수들의 질적하락이 좀 더 눈에 띈다. 타자들은 연습량이 늘어나면 기술적으로 빠르게 발전한다. 타격감이 떨어지면 밤새도록 배트를 휘두른다. 극단적인 예지만 배트가 부러지면 다른 배트를 쓰면 된다. 투수는 어깨나 팔꿈치가 아프면 더 이상 던질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히 한국 야구엔 투수를 과보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투수는 많이 던지면 많이 던지는 만큼 내구성이 생다. 그런데 한국 야구계엔 투수를 아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연습량이 적다. 문제는 그저 투구수가 많은 게 아니라, 공을 많이 안 던지다 갑자기 많이 던지는 데서 발생한다.

심판의 권위 또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어른이 없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벌써 30년이 넘었지만, 심판진은 여전히 젊다. 스프링캠프와 시즌을 거치는 과정에 선수단과 심판진의 접점도 무척 많은 편이다. 그리고 전부 선수 출신이다. 그래서 심판과 선수가 가깝다. 판정에 사적인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꽤 있다. KBO에서 나서서 심판진을 좀 더 독립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김정준(‘SBS Sports’ 해설위원)

지도자들의 지도 방식과 경기 운영에 문제가 없나? 고양 원더스 김성근 감독은 “감독의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바로 투수진 운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올 시즌 감독들은 투수진 운용에 애를 먹고 있다. 선발진과 불펜진이 동반 붕괴한 까닭이다. 실제로 7월 9일 기준, 올 시즌 9개 구단 선발진의 평균자책은 NC(3.81)를 제외하면 죄다 4점대 이상이다. SK, KIA, 넥센은 5점대 후반, 두산과 한화는 아예 6점대 이상이다. 원체 선발진이 빨리 무너지다 보니 한화나 넥센 같은 팀의 선발투수 평균 투구 이닝은 4.2이닝에 불과하다. 선발진 조기 붕괴는 필연적으로 불펜진 과부하를 불러온다. 아니나 다를까, 올 시즌 KIA, LG, 넥센, 한화 불펜진은 경기당 평균 3.2이닝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프로야구 사상 가장 많은 불펜진 소화 이닝이다. 한화 김응용 감독은 “선발투수가 6이닝 이상은 던져줘야 경기 운영과 관련한 계산을 할 수 있다. 올 시즌처럼 투수진이 망가지면 매 이닝마다 작전을 새로 짤 수 밖에 없다”며 곤혹스러워했다.

이런 마운드의 몰락은 보수적인 마운드 운용에도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대개 감독들은 야수의 경우 신인, 투수는 베테랑을 선호한다. 그러나 올 시즌엔 기존 투수들이 죄다 무너지며 2군에서 대체 선수를 불러올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예년 같으면 신인 투수들의 1군 진입은 최소 2·3년, 길면 4·5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신인 및 2군 유망주들이 대거 1군 마운드를 밟고 있다. 하영민(넥센), 임지섭(LG), 최병욱(두산), 이인복(롯데), 이수민(삼성), 조영우(한화) 등의 어린 투수들이 대거 올 시즌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됐다. 신인 투수만 따져도 무려 15명.

문제는 신예 투수 대부분이 ‘땜빵 투수’라는 점이다. 모 구단 투수코치는 “대부분 2군급이라 좋은 성적을 기대하긴 어렵다”며, “역대 어느 시즌보다 경기당 평균 득점이 높은 것도 신예투수들이 대거 1군 마운드에 올라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올 시즌 타고투저 현상이 후반기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에디터
    글 / 박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