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보다 깊숙이 이해하면 요리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요리를 깊이 이해할수록 이에 대한 언어 표현 또한 풍부해진다.
글 / 김정아(The Hungry Tourist Korea 대표)
음식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중요한 문화적 표현이다.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음식을 함께 나누며 화합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과 음식을 같이하며 언어와 언어를 잇는 통역 역할을 하면서 필자 또한 언어가 다이닝 경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매번 실감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 메뉴와 음식 설명, 맛 표현까지 모두 언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요리의 언어는 사람들이 경험하고 즐거움을 표현하며, 식사 중 필요한 사항을 전달하고 음식에 대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도록 돕는다. 또 전문적인 맥락에서 요리 언어는 레스토랑 내 효과적인 의사소통과 요리의 전문성을 위해 필수적이다.
외국인들과 식사를 하거나 글로벌한 미식 행사 통역을 할 경우 정확한 뜻을 전달하기 힘들 때가 가장 어렵다. 다양한 요리가 있는 만큼 요리를 표현하는 언어들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감칠맛 난다, 담백하다, (맵거나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서) 시원하다, 구수하다 등 누구나 먹으면서 절로 나오는 감탄으로 흔히 사용하는 표현들이지만 다른 나라 언어로는 도무지 설명하기가 어려운 표현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식 관련 단어와 표현들이 해외에서도 점점 많이 사용되고 있다. 가령 20년 전에는 김치, 고추장, 반찬 같은 단어가 낯선 단어였고, 최근까지도 명동이나 관광지에 있는 식당에서는 외국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된장을 ‘코리안 미소(Korean miso)’라고 설명하는 곳들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해외에서 만나는 셰프, 푸디들이 종종 한식 관련된 단어에 빠삭해 놀랄 때도 많다. 심지어 집에서 김치를 직접 만들어 먹고, 한식당에서 반찬을 더 찾는 외국 친구들이 있을 정도. 그럴 땐 뿌듯함과 함께 음식의 세계화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느낀다. 한국의 요리 언어를 익힌다는 것은 단순히 김치라는 단어를 아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김치와 김장이라는 한국 고유의 식문화가 알려질 수 있는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요리와 그 요리를 지칭하는 다양한 언어가 자연스럽게 확산되어 왔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많은 요리와 관련된 단어들은 프랑스에서 유래했다. 예를 들어 셰프 Chef, 퀴진 Cuisine, 메뉴 Menu 등 전 세계 레스토랑에서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김치’처럼 요리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피자 Pizza, 스파게티 Spaghetti, 라자냐 Lasagna 등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이탤리언 요리들이 그렇다.
음식과 언어를 통해 한 문화의 풀뿌리 외교관(Grassroots Diplomat)이 될 수도 있다. 발효와 숙성을 바탕으로 한식을 풀어나가는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세븐스 도어 7th Door의 메뉴에서 한글 재료를 영어 발음 표기로 사용한다. 이를테면 된장 Doenjang, 간장 Ganjang, 고추장 Gochujang과 같은 장류나, 한국의 채소로 만드는 장아찌 Jangajji 그리고 액젓 Aekjot 등 요리에 들어가는 발효 재료가 그렇다. ‘한국의 발효는 선조들의 지혜’라고 말하는 김대천 셰프는 일본에서 요리 학교를 다니며 언어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또한 일본어 식재료 이름이 영어 공식 명칭이 되는 것을 보고 우리도 가능하겠다는 희망을 보았다.
실제로 영미 문화권에서는 일본의 고유 음식 문화인 스시(司, 초밥) 외에도 일본어에서 유래된 영어 표현을 다수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마미(旨味, 감칠맛)와 같은 맛 표현이나 두부(豆腐, Tofu), 송이버섯(松茸, Matsutake)과 같은 식재료도 일본어가 영어의 표준이 되었다. 김대천 셰프는 “요리나 식재료를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문화에 대해서도 전파할 수 있어 최대한 많은 한글 표현을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고 설명한다. 다녀간 손님들이 단지 식재료를 한국어 발음으로 읽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발효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매실청을 영어식 표현인 ‘plum syrup’ 대신 ‘maeshil cheong’이라고 쓰는 것을 보고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뉴욕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아토믹스 Atomix도 미국의 뉴코리안 바람을 이끄는 주역 중 하나로, ‘메뉴 카드’가 주목할 만하다. 시즌 별 메뉴의 요리와 조리 방법을 디자인해 담은 카드를 모으는 마니아층이 생길 정도다. 회 Hwe, 구이 Gui, 후식 Husik 등 한글 표기와 함께 메뉴 카드는 한식의 조리 및 식사 문화까지 전파한다. 아토믹스를 이끄는 박정현 셰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샘표 우리맛연구 중심 최정윤 셰프와 <한식 The Korean Cookbook>을 출판하기도 했다. 책에는 350개가 넘는 한식 레시피와 장, 김치 등 장인들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한식과 고유 표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미쉐린 2스타 밍글스 Mingles의 강민구 셰프는 <장 Jang>을 출판하면서 우리나라의 장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레시피를 집편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간장, 고추장, 된장을 손쉽게 구할 수 있으니 장을 이용한 레시피들을 통해 요리 고유의 명칭들, 한식이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권에 스미고 있다.
다양한 문화가 섞일수록 사람들은 더욱 ‘오센틱 authentic’한 경험을 찾기 마련이다. 싱가포르에서 모던한 방식으로 말레이 제도(동남아시아, 아시아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사이 해역에 있는 섬들) 요리를 선보이는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세로자 Seroja’의 케빈 웡 Kevin Wong 셰프와 최근 메뉴에 있는 표현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언어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감상과 상상을 창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요. 손님에게 참조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 때, 더 편안하고 즐거운 경험을 하고, 그런 기준점을 만들어주는 것이 레스토랑의 역할이죠. 그를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바로 언어예요”라고 말했다. 세로자의 메뉴에는 낯선 단어도 있지만 영어로 쉽게 풀어낸 이름도 있다. “세로자의 요리가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아요. 그래서 손님들과 더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죠. 되도록 주요 재료는 원어를 유지해 요리에 정통성과 개성을 부여하고 있어요”라고 그는 귀띔했다.
싱가포르 식문화 신은 마치 멜팅팟과 같아서 그 역시 처음 레스토랑 오픈 후 시행착오를 겪었다. 처음에는 본인이 쓰면서 자란 말레이시아어를 많이 반영하고 싶어 요리 이름과 주요 재료명을 원어 그대로 표시했는데, “발음이 너무 어렵다”, “어떤 메뉴인지 알 수 없다”, “기억하기 어렵다” 같은 피드백을 받은 것이다. 그러면서 영어로 풀어서 설명해주는 형태를 추가하게 되었다. 메뉴의 표현을 바꾸는 기준? 케빈 셰프는 이렇게 답한다. “세로자에서 사용하는 일부 재료와 용어는 영어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손님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영어로 표현하며 설명해요. 동시에 세로자에서는 전통과 헤리티지를 표현하기 위해 원래의 요리와 재료명을 보존하는 것에도 자부심을 느끼죠”라고 말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더 풍부하고 좋은 미식의 경험을 위해서는 언어를 익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요리 언어를 경험해 그 요리에 대해서 더 깊숙이 알아가고 고유의 이름으로 부르면서 하나의 기준점이 생기면, 그 음식을 향유하고 즐기는 사람들과 소통이 원활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요리의 역사적 배경을 알게 되어 문화적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음식은 민족, 그리고 공동체의 정체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 지역의 역사, 지리, 기후, 가치관을 반영하고, 각 문화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음식 관습과 전통을 배움으로써 다른 문화의 가치와 신념에 대해 더 큰 이해와 공감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요리 언어가 가진 매력일 것이다. 보다 많은 이들이 음식을 경험하면서 맛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전통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요리 언어를 통해 더 좋은 다이닝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