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해 보였다.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두 바퀴 위에 앉아서 시동을 걸었을 때, 서울이 확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충고마저 위태로웠다. 안전장구는 반드시 갖추고 타라는 말, 헬멧을 쓰지 않으면 진짜 위험할 수 있다는 말, 내가 실수하지 않아도 온갖 흉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곳이 바로 도로라는 말은 냉정하지만 사실이었다. 어렸을 때, 강원도를 향하던 겨울에는 스쿠터 한 대가 도로 위에 누워 있는 장면을 봤다. 운전자는 멀리 떨어진 도로 위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주변엔 바쁘게 뛰는 사람들이 있었다. 90년대 초반이었으니까 그중 몇 사람은 공중전화를 찾아 뛰었을 것이다. 부모님은 내 눈을 가렸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을 때, 그 위험한 장면과 도로 위의 빨간색이 두 개의 손가락 사이로 스쳐갔다. 기억에는 똑똑히 남았다.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다양한 바이크를 타고 평가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어떤 어른은 평온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두 바퀴 탈것은 넘어지게 돼 있어요.” 냉정하지만 사실인 말. 그래서 제대로 갖춘 장비가 더욱 중요하다는 충고가 뒤를 이었다. 이어지는 이런 말. “하지만 그 위험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게 진짜 재미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 탈 때마다 극도로 조심하게 되는 거예요. 건강하게, 이걸 계속 느끼고 싶어서.” 한편, 독일의 놀이터 설계 전문가 귄터 벨치히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떨어지도록 놔두면 아이는 떨어지지 않는 법을 배웁니다. 애들은 선천적으로 뭐가 위험한지 알고 있어요. 놀이는 실수도 하고 실험도 할 수 있어야 해요. 놀이터는 안전을 최대한 고려해서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애들이 위험을 느끼게 해줘야지 위험을 제거하면 안 됩니다. 살면서 어려운 문제는 결국 자기가 해결할 수밖에 없고, 아이에게도 스스로 해결하는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고요한 여름밤에 이 책상 위에서 바이크 전문가와 놀이터 전문가의 말에서 공통점을 찾는 일이란…. 위험을 피하는 방법보다 극복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결국 성장하는 과정이 아닌가, 성장은 평생 끝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다 자란 어른에게도 재미는 필요한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가만히 하기도 하는 것이다.
더운 날이었다. 서울의 자외선은 ‘매우 높음’, 온도는 섭씨 30도를 오르내렸다. 스쿠터 시트도 익어있었다. 엉덩이가 따뜻했다. 시동을 걸고 예열하는 약 3분의 시간. 긴팔 셔츠를 입고 헬멧을 갖춰 썼다. 오른손을 감아쥐었을 때 나는 소리, 발바닥에서 허벅지를 거쳐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담백한 진동. 스쿠터를 타고 나서는 길은 늘 이렇다. “출발 전 예열 시간이 스쿠터의 장기적인 성능을 좌우할 수 있어요. 3분? 5분 정도.” 베스파 한남 매장 이문영 매니저가 말했다. 조금의 기다림과 약한 진동, 대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차 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들, ‘과연 도로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온갖 정보를 단지 몸으로 느끼는 일. ‘그래봐야 봄이나 가을에만 탈 수 있는 것 아닐까? 8월이나 1월에도 탈 수 있을까?’ 스쿠터를 사기 전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스쿠터 위는 생각보다 덥지 않고, 도로는 우려만큼 뜨겁지 않았다. 스쿠터는 늘 바람 한가운데 있다. 그러다 느닷없는 냉기가 서늘해서 옆을 보면 거긴 숲이었다. 혹은 궁이었다. 소월길의 한 굴곡이거나 창경궁 옆을 지나는 길이기도 했다. 나무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상쾌함 혹은 청량함. 마냥 걷다가 갑자기 맞닥뜨린 숲에 홀린 듯 들어갔던 여행길이 몇몇 생각났다. 런던이나 프라하에서, 치앙마이나 오키나와의 여름에도. 도시에서 오래 걸어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휴식 같은 것. 잠깐 멈춰 창경궁 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좋은 배경처럼 보였다. 헬멧을 벗었을 땐 그 시원한 공기가 정수리를 훑고 갔다. 편견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깨지곤 한다. 남산 소월길을 지나 광화문에 내려 책을 몇 권 샀다. 그대로 혜화동을 거쳐 다시 동호대교를 건널 참이었다.
네 바퀴의 안정감에 익숙해질 무렵부터 두 바퀴 탈것에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권태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호기심은 맹수 같았다. 이동이야말로 도시 생활의 필요조건 아닌가? 좀 색다르게, 빠르게, 간편하게, 스트레스 없이 이동할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이 쏠린 건 지당한 귀결일 것이다. 조언에 조언을, 준비에 준비를, 결심에 결심을 더해 마침내 한 대의 스쿠터를 갖게 되었을 땐 매일 아침 다른 도시를 만났다. 하늘색 베스파를 타고, 매일 두 번씩 한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무신경하게 밀고 들어오는 버스와 택시가 종종있었다. 초보였는지, 잔뜩 긴장한 것 같은 얼굴의 운전자에겐 주변의 스쿠터 한 대까지 배려할 수 있는 정신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스쿠터 위에선 도시의 틈새가 정확히 보였다. 아스팔트의 높낮이, 멘홀의 위치, 한강 다리의 구조, 남쪽에서 북쪽을 향할 때 혹은 반대 방향일 때도 보이는 아파트의 밀도, 가로수의 종류와 색깔, 옆 차 운전자가 틀어놓은 음악, 핸들을 꺾고 차선 변경을 준비하는 운전자의 표정까지. 이건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살펴야 하는 정보이기도 하고, 도시 라이딩을 즐기기 위한 요소이기도 했다. 스쿠터 위에 앉은 나를 둘러싼 다른 모든 차들이 어떻게 움직이길 원하는지를 최대한 읽어내야 한다. 그래야 안전하다. 긴장의 요소라기보다 훈련의 결과에 가깝다.
자동차는 도무지 지나갈 수 없는 길이 스쿠터에겐 늘 열려 있었다. 어떤 길은 스쿠터에게만 허락된 것처럼 뻥 뚫려 있었다. 자동차보다 한 박자 빠르게 다만 침착하게 운전할 때도 그런 길이, 마치 나만을 위하는 것처럼 열려 있었다. 어떨 땐 골목이 대로보다 빠르기도 했다. 평소엔 25분 정도 걸렸던 길이 스쿠터 위에서는 15분으로 단축됐다. 전혀 서두르거나 조급하지 않았는데도.
동의 진짜 자유는 원하는 모든 도착지에 있었다. 서울 같은 메가 시티에도 스쿠터 한 대 놓을 정도의 공간은 있으니까. 주차장? 발레파킹? 차를 탔을 때 신경 써야 하는 몇 가지 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이러니 어디든 편하게 갈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동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또한 세밀해졌다. 주차가 마땅치 않아서 망설였던 어느 골목, 나만 아는 카페나 식당이라도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 당장 친구가 있는 곳으로 달리거나, 얼굴만 잠깐 보고 헤어지거나, 보고 싶은 사람을 보러 가는 길이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나서게 됐다.
지금까지 인식해온 서울은 그저 도로와 목적지로만 빽빽한 도시였다. 과정은 생략된 채 최대한 빨리 달려 도달해야 하는 몇 개의 목표 지점으로 이뤄진 성급한 도시였다. 진짜 즐거움은 그 과정에 다 숨어 있었는데…. 스쿠터에겐 스쿠터만의 길이 있다. 그럴때 생기는 시간이야말로 스쿠터만 줄 수 있는 선물이다. 혼자서 혹은 둘이라도. 서두르지 않아도 재빠르게…. 이런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다 가벼워졌다.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었다. 평일 저녁과 주말이 몇 배나 늘어난 것 같았다.
운전 자체의 쾌락도 상당했다. 좌회전하는 순간의 기울기에도 묘미는 숨어 있었다. 속도와 중력, 원심력과 하중 이동…. 책에서 본 것을 몸으로 느꼈다. 왼쪽으로 살짝 기울었을 때 서울 도로는 또 달라 보였다. 모든 탈것의 움직임이 추구하는 건 결국 하나 아닐까? ‘내 몸같이’ 움직이는 것. 그 안에 모든 공학과 역학, 디자인과 아름다움의 목표가 숨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늘 조심조심, 감당할 수 있는 속도와 각도로 안전하게. 속으로 그걸 되뇌는 순간에는 잠들었던 세포가 다 깨서 기지개를 켜는 것같았다. 다른 모든 일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항상 깨어 있는 것, 필요할 때 집중하는 일, 조바심 나는 모든 순간에도 굳이 서두르지 않는 오후.
한여름의 해는 오후 8시를 넘길 즈음 떨어지기 시작했다. 스쿠터만을 타기 위해 나선 길도 아니었고, 뭘 사거나 누굴 만날 계획도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길 위에서 생겼다. 몇 군데의 가게에 들러 산 물건이 배낭 안에 가득했다. 혼자일 것, 다음 일정을 계획하는데 누구의 제안이나 방해도 받지 않을 것,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났을 땐 망설이지도 말 것…. 이거야말로 완벽한 휴식, 충만한 주말의 조건 아닐까? 연료 탱크 게이지는 딱 한 칸 닳아 있었다. 오늘 하루 동안 달린 거리는 약 32킬로미터였다. 그럼 연비는 약 30킬로미터 정도 될까? 동호대교 위에서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해를 봤다. 세게 부는 강바람을 몸으로 다 맞았다. 이제 어디로 가지? 아직 시간이 남았다. 이런 날 한강이라면, 몇 번을 더 건너도 좋았다.
- 에디터
- 정우성
- 일러스트
- 곽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