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 Me The Money>의 네 번째 시즌이 절정으로 치닫는 지금, 한국 힙합은 어디까지 와 있나?
최근 몇 년 사이 힙합은 ‘삶의 사운드트랙’으로 등극했다. 거기엔 이런 얘기들이 있었다. “현재를 즐기며 너의 꿈을 좇는 거야.”, “너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어.” 래퍼들이 무대 위에서 “내가 최고, 너는 가짜”라고 외칠 때 사람들은 래퍼와 자신을 동일시했고, “내 힘으로 정상까지 왔다”는 유의 가사로부터 거대한 삶의 에너지를 흡수했다.
같은 맥락에서, 일리네어 레코즈의 거대한 성공은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도끼와 더콰이엇과 빈지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가사에 담지만, 결국 그것이야말로 젊은이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5억 연봉을 인스타그램에 인증하고, 롤스로이스를 구입한 후 “롤스로이스를 타는 한국 최초의 래퍼”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금수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어릴적엔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 정도로 가난했지만, 자기 힘으로 정상까지 올라왔다는 자수성가 신화다. 그야말로 하고 싶은 일로 성공해 부와 명예를 얻은 일리네어 레코즈의 성공은 이 시대 모든 젊은이의 꿈인 동시에 한국 힙합의 오랜 허기를 채운 사건이기도 했다.
이들이 많은 연예기획사의 제의를 거절하고 독립적으로 회사를 설립했다는 점도 주목 할 만하다. 이런 행보는 미국 힙합 신의 흐름과도 일치한다. “메이저 레이블을 떠났더니 수입이 몇 배로 늘었다”는 탈립 콸리의 말이나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로 큰 성공을 거둔 맥클모어의 사례처럼 말이다. 일리네어 레코즈의 래퍼들은 벌어들인 돈 대부분을 자신들이 가진 다음, 그 돈을 음악(곡의 완성도를 위해 투자하든 돈을 벌었다는 가사를 쓰든)에 반영한다. 이상적인 선순환 구조다.
일리네어와 함께 최근 가장 각광받는 크루는 코홀트다. 이들은 커런시, 오지 마코, 바비 쉬머다, 래 스레머드 등 미국 힙합 신에서 활동하는 젊은 힙합 뮤지션들의 ‘컬트’적 면모를 연상시킨다. 특히 코홀트는 패션을 필두로 사진과 영상 등 여러 시각적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다. 화보를 방불케 하는 이들의 인스타그램이 인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은 우스개도 폄하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가깝다. 각종 비판에 적당히 무심하고 때로 호전적인 태도 역시 코홀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코홀트의 이런 행보는 한국 힙합 신에서 현재 가장 매혹적인 ‘멋’으로 수용되고 있다.
그렇게 몇몇 한국 힙합 레이블이 자기 색을 찾으며 성과를 낸 결과, 이제 한국에서 ‘힙합’은 ‘한국 힙합’과 동의어가 된 듯하다. 한국 힙합에 만족하지 못해 그 대안으로 미국 힙합을 듣던 기억은 옛일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한국 힙합만을 듣고 신에 데뷔하는 이들의 세대가 실제로 왔기 때문이다.
물론 빈지노의 랩은 그 자체로 훌륭하다. 하지만 그것을 존중하는 동시에 ‘오리지널’에 대한 경험도 확실히 필요하다. 빈지노의 랩과 빈지노가 영향을 받은 오리지널을 동시에 경험할 때, 비로소 빈지노의 랩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오리지널에 대한 빈지노의 해석까지도 흡수할 수 있다. 한 번 거른 것만을 경험할 때와 그 원재료까지 섭렵할 때의 차이는 자명하다.
한편 이렇게 한국 힙합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가운데 표절과 레퍼런스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유감이다. 특정한 곡을 표절이라며 낙인 찍으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리네어의 ‘연결 고리’나 키스 에이프의 ‘It G Ma’ 등을 향해 제기된 여러 의문이 모두 음악적 무지의 발로라거나 억지스러운 주장은 아닐 것이다. 이 노래들은 누군가의 기준에 따라서는 충분히 음악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도끼의 < Complex > 잡지 인터뷰에 이 논란과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이 들어 있다. “사람들은 내가 미국의 아티스트를 베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들의 동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지 않을뿐 같은 음악을 듣고 있다. 릴 웨인의 ‘A Milli’가 히트했을 때 모두 그 노래를 따라 했다. 그렇다고 그 래퍼들이 모두 ‘A Milli’를 베낀 건가? 이건 그냥 트렌드다. 나는 미국의 아티스트들과 같은 선상에 있다. 몸만 한국에 있을 뿐이다.”
이 말은 꽤 새겨들을 만하다. 교포 출신 래퍼가 상당수 활동 중이고, 해외 프로듀서와의 작업도 늘고 있는 한국 힙합 신에 얽힌 여러 문제를 여전히 지역/국가/언어 단위로 구분하거나 상부(미국)/하부(한국) 구조로 파악하는 것이 과연 100퍼센트 온당한 일일까? 물론 도끼의 인터뷰에는 몇 가지 빈틈이 있다. 그렇지만 그의 말처럼 한국 힙합 신의 변화에 발맞춰 비평적 관점 또한 이동하는 것이 어쩌면 더 성실하고 균형 잡힌 태도일지 모른다.
무엇보다 지금 한국 힙합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역시 < Show Me The Money >다. TV 프로그램 하나에 신 전체가 흔들리는 광경은 과도기적 성장통인 동시에, 신의 뿌리가 이토록 허약했다는 사실에 복잡한 감정이 들게 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 Show Me The Money >는 많은 일을 해냈다. 몇몇 래퍼를 스타로 만들었고, 힙합 신에 대중의 관심을 끌어들였으며, ‘리듬 없는 무반주 랩’을 구사하는 아마추어 래퍼들을 양산했다. 출연한 래퍼들에게 달콤한 보상을 안기는 한편 극도의 흥미 위주의 편집으로 프로그램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을 뒤처진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물론 몇 번의 시즌을 거친 지금까지도 여전히 힙합 자체에는 별 애정이 없어 보인다.(혹은 무관심하거나.) 그럼에도 출연을 결심하는 래퍼들을 무작정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한국 힙합 신에서 ‘순교’하지 않으려면 그 방법 말고는 달리 대안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분에 우리는 피타입이 심사위원이 아니라 도전자로 출전하는 광경, 그리고 피타입의 실패가 개인의 실패를 넘어 미디어를 통해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실패로 치환되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이 연장선에서 올해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래퍼 JJK의 트윗이었다. “아 솔직히 쇼미 4 안 나가고 순수한 마음 지키려는 래퍼들한테 박수 쳐주고 영웅 취급해줄 거 아니면 쇼미 4에 누구 나간다고 뭐라 하지도 마라. 그런 거(보람) 1도 없는 거 경험했으니까 리더(자신이 이끌던 ADV 크루의)니 SRS(전국 순회 거리 랩 배틀) 니 다 내려놓은 거야.” 한국 힙합 신에서 프리스타일과 길거리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 왔고, < Show Me The Money >와 극단의 대척점에서 있다고 여기던 래퍼의 말이었다. 프로그램을 가장 강하게 보이콧하던 래퍼가 출연 래퍼들을 팬들의 비난으로부터 오히려 옹호하는 상황. 어쩌면 한국 힙합 ‘신’이라는 것 자체가 실체가 없는 신기루인 게 아닐까?
7월 10일 방송에서 < Show Me The Money >는 스눕 독을 심사위원으로 앉혀놓고 래퍼들에게 즉석 미션을 통보했다. 마이크 하나를 세워놓은 다음, 수십 명의 래퍼에게 10분내에 랩을 하지 못하면 탈락이라고 말했다. 수천 명 중에서 뽑힌 수십 명의 래퍼가 마이크를 잡기 위해 꼴사나운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은 하나, ‘한국 힙합은 확실히 이 방송에 농락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Show Me The Money >는 이런 시스템을 만들고 그걸 욕하는 참여 래퍼들의 모습도 프로그램에 포함시켰다. 이를테면 “욕해. 욕도 다 내보내줄게. 그럼 우린 비판도 솔직하게 다 내보낸다는 효과도 얻고 좋지 뭐”라는 심산이었을까? 참여 래퍼들이나 프로그램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의도와 야망을 가지고 출연했든 결과적으로 모두가 그 안에서 놀아나게 돼버렸다. 더 답답한 것은 정확히 어디를 탓해야 하는지, 누구까지가 공범인지, 나의 잘못은 없는지, 도무지 분명한 사실이 없다는 점이다.
아,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지금이 한국 힙합 역사를 통틀어 쏜꼽을 만큼 혼란스러운 시기라는 것. “쇼 미 더 머니 보이콧하는 사이퍼에/ 쇼 미 더 머니 출연자가 세 명이나 있는데/ What the Fuck Man / 어차피 X나게 혼란스러운 상황/ 지금 한국 힙합” (2015.07 ‘7INDAYS(ADV 크루의 프리스타일 영상 시리즈)’ 사이퍼 중 올티의 가사). 오! 지금은 한국 힙합 대혼란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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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김봉현(대중음악평론가)
- ILLUSTRATION
- MUN SU 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