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완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제 챔피언스리그 아스날 대 올림피아코스 경기가 있었죠. 해외 축구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봤어요? 아뇨, 못 봤어요. 근데 최근에 영국에 직접 가서 아스날 대 첼시 경기를 보긴 했어요. 영국에서 축구만 봤어요. <킹스맨> 가게 정도 갔나? 그냥 가만히 앉아서 피시 앤 칩스나 먹었어요. 맥주랑 같이. 영국에서 파는 피시 앤 칩스가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어요. 한국에서 먹는 게 훨씬 나아요. 다른 음식도 딱히…. 괜히 영국 음식이 별로라고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어요. 이번 여행에선 아파서 휴식만 했어요. 영화 찍고 계속 시름시름 앓았어요.
영국까지 갔는데 좀 아깝네요. 아, 저 축구보다 이종격투기를 더 좋아해요. 배우고 싶은데 아직 엄두는 안 나요.
격투기와 왠지 어울리네요. 모범생이고 착하고, 어쩐지 약해 보이지만, 만약 누군가 괴롭히면 어떻게든 끝까지 가던 친구가 떠올라요. 혹시 마음속에 분노를 숨기고 있나요? <미생>, <적도의 남자> 두 편 모두 분노가 있지만 쉽게 표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어요. 맞아요. 날을 숨기는 거죠. (변)요한이 형이 입버릇처럼 강조했던 부분이기도 해요. “날이 있되, 숨겨야 한다”고요. <미생>의 장그래도 그렇고 <적도의 남자>의 이장일도 그렇고, 그 날을 품고 있었어요. 하지만 쉽게 보여주지 않아요. 무기가 있지만 언젠가 지르기 위해 참는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 묘하게 서늘한 감정은 눈빛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분명 뭔가를 응시하는데, 한 가지를 확실하게 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래서 궁금하게 만들죠. 그 눈빛 혹시 맹한 건가요?(웃음) 눈이 짝짝이면 감정이 쉽게 드러나지 않아서 연기를 하는 데 득이 될 수도 있다는 글을 어디서 본 적이 있어요. 그거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어떤 배우의 연기를 좋아해요? 저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많이 좋아해요. 근데 제가 최근에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다시 봤는데요, 연기의 다양함이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가 훨씬 더 월등한 것 같아요. 역시 배우에게는 세월이 큰 보약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계속 노력한다는 전제가 있겠지만요.
디카프리오가 마틴 스콜세지랑은 잘 맞고, 스티븐 스필버그랑은 잘 안 맞을 수도 있고요. 전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고등학생 프랭크가 자라서 <더 울프…>의 벨포트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아… 진짜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배우에게 축적된 시간은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나이를 먹으면 감정이 계속 깊어지니까요. (전화가 온다.) 어, 광희야. 내가 다시 전화할게. 죄송합니다. (매니저에게 휴대전화를 건네며) 이것 좀….
광희 씨랑 자주 통화하나 봐요. 네. 근데 통화를 시작하면 꽤 길어져요. 보통 친구들처럼 고민을 많이 이야기하다 보니까요.
연기에 대한 고민과 해결책을 다른 영화를 보면서 찾는 편인가요? 전 <마션>이나 <그래비티> 같은 영화를 좋아해요. 공대 출신이다 보니까 SF에 관심이 많은 것도 있는데요, 그런 영화는 내용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해요. 연기가 하나도 안 보이니까요.
잘하는 연기를 보면 불안해요? 네. 마음이 엄청나게 불편해져요.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이 적다고 자책하는 편인가요? 그렇죠. 도대체 저런 연기를 어떻게 했을까 싶으면서 불안해요. 한동안 영화를 거의 못 봤어요. 진짜 최근에야 영화 볼 용기가 생겼어요. 연기하기 전에는 영화를 볼 때 내용만 봤으니까 연기에 대해 전혀 신경 안 썼는데, 연기를 시작하고부터는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피곤해요. 한때는 애니메이션만 봤어요.
그래서 애니메이션 더빙도 하고요? 아, 그건 아니에요.(웃음) 그냥 회사에서 (일을) 잡아준 거예요. 이제야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연기는 그들의 연기고 내가 할 연기는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해요. 제 연기를 독립적으로 보는 훈련을 했어요. 덕분에 이제야 남의 연기를 볼 자신이 생겼죠.
누군가를 닮을까 봐 걱정돼요? 무의식중에 흡수돼 있을까 걱정돼요. 작곡할 때도 비슷한 느낌인 거 같아요. 어떤 노래를 우연히 들었는데, 저는 기억을 못하지만 그 멜로디가 제 머릿속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작곡할 때 그 멜로디가 무의식중에 나올까 봐 두려운 것과 같은 거예요.
혹시 누군가를 흉내 내려고 노력한 적은 없어요? 있긴 있어요. 시행착오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변호인>을 찍고 <트라이앵글>에 출연했어요. <트라이앵글>이 좀 센 캐릭터라고 해서 <변호인>의 곽도원 선배님이 연기한 차동영 역할을 베껴볼까 했는데 제가 만족할 만한 결과는 아니었어요. 문제가 뭐였을까 생각해보니 내면을 따라간 게 아니라 외면을 따라갔기 때문이었어요. 겉모습만 베낀 거예요. 제 안에 알맹이를 만들지 못했죠.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니 다른 배우의 외면을 따라가서 될 일이 아니구나 싶었어요. 그 후로는 새로운 생각이 파생되었어요. 내가 보는 영화들은 결국 외면만 볼 수 있잖아요. 배우 분들이 영화를 찍을 때 어떤 치열한 싸움을 거쳐서 연기가 표출됐는지 모르면, 그러니까 타인의 내면을 파헤치지 못하면 다른 연기를 보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죠. 결국 연기를 따라 한다고 해도 제대로 따라 하는 게 아닌 거예요. 오히려 다른 연기를 안 볼수록 제 연기가 해방되는 것 같아요.
모든 영상 미디어가 점점 ‘클립’처럼 쪼개지면서, 센 연기, 지르는 연기가 각광받잖아요. 그런가요? 좀 바뀌지 않았나요?
이를테면요? 요즘 추구하는…. 아… 센 연기. 아무래도 연기 잘한다고 인정받는 건 울거나, 소리 지르거나, 화를 내는 연기가 대부분이긴 하죠.
과잉된 연기는 말 그대로 ‘연기’를 하는 거잖아요. 어떤 배우들은 자신이 평생 느끼기 힘들었을 정도의 감정까지 과장해서 보여주려고 해요. 그렇게 보여주는 연기도 장점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보여주지 않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어떤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면 느끼지 못한 그대로를 전달하는 거죠. 슬프지 않으면 슬프지 않은 그대로를 표현하는 거예요. 일부러 슬픈 척할 수는 없어요. 그걸 관객에게 들키지 않을 자신도 없고요.
이번 영화 <오빠 생각>은 한국전쟁이 배경이에요. 군인을 연기했죠. 여러모로 이해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우선 사전 조사를 많이 했죠. 자문도 많이 구하고. 그 시대는 어떻게 살았는지, 시대의 기본 정서를 유추해나갔어요. 사실 비슷한 시기의 영화를 많이 보면 도움이 쉽게 되었겠죠? 하지만 제가 보게 될 영화의 연기는 분명 또 다른 영화를 보고 연기를 한 것일 텐데, 지금 제가 그걸 보면 또다시 따라가는 것밖에 안 되잖아요. 그러면 제가 한발 늦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쪽으로 길을 틀어야 되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들려는 시도는 더러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기도 해요. 물론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을 수 있지만. 제게 어떤 것보다 절대적으로 중요한 건 대중의 관심이에요. 작품을 만들면 창작자, 그러니까 만든 사람들만 보는 게 아니잖아요. 작품을 만들어서 누구한테 보여줄 거냐를 생각하면 답이 명쾌해지죠. 물론 만드는 분들도 중요하죠. 그분들이….
캐스팅하니까요. 네. 근데 캐스팅을 어떻게 할 거냐, 목적이 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죠. 하지만 관객이라는 존재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럼 대중에게 어필하는 임시완의 무기는 뭔가요? 자신이 느끼는 걸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 연기로는 보여주면서 진짜 제 모습은 숨기는 거요. 숨겨서 선입견을 없애야 해요. 전 저를 좀 더 많이 숨기고 싶어요. 아직까지는 대중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숨기는 것이 작품을 보는 관객 분들을 위한, 시청자 분들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해요. 만약 제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알고 있다면 선입견을 통해서 캐릭터를 보잖아요. 제 캐릭터를 있는 그대로, 편하게 보게 만들려면 저를 숨기는 것이야말로 의무가 아닐까요.
배우가 되기 전엔 뭐가 되고 싶었어요? 전 아빠를 닮아서 기계공학과 들어가, 엔지니어링 일을 하는 사람이 되겠거니 생각했어요. 제겐 당연한 일이었어요. 자연스럽게.
다른 일을 할 수 있 을까?, 하는 의심은? 살면서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기계공학과면 차 좋아하지 않아요? 좋아하죠. 근데 아직 차 안 샀어요. 곧 군대 가야 해서요.
-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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