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프림을 단순히 브랜드 이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좋아할만한 책이 있다. 작가 데이비드 샤피로의 소설 <슈프리머시스트(Supremacist)>다. 비록 국내에 번역되진 않았지만 데이비드 샤피로와 슈프림이라는 브랜드에 대해 심도 깊은 얘길 나눴다.
데이비드 샤피로의 <슈프리머시스트(Supremacist)> 속 술과 약에 찌든 20대 데이비드는 잘 나가는 친구와 함께 세상의 모든 슈프림 매장으로의 순례를 떠난다. 물론 이 소설은 그 브랜드에 대한 책이 아니다. 주인공이 슈프림에 아주 빠져있다는 것 빼곤. 데이비드는 쉬지 않고 슈프림에 대해 말하고 생각한다. 슈프림은 그를 인도하는 불빛이자 행복한 장소다. 아무런 목표가 없는 그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슈프림 매장으로의 여행만이 그의 삶에서 유일한 목적이다. 데이비드는 슈프림 매장 앞에 몇 시간, 아니 가끔은 며칠씩 앉아있기도 한다. 그리고는 슈프림의 의미를 절박하게 좇는다. 마치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 것처럼. <슈프리머시스트>는 포괄적인 역사서도, 저널리즘적 시각을 가진 조사서도 아니지만, 수수께끼같은 이 브랜드에 대해 어느 정도의 예리한 생각을 담고 있다.
<슈프리머시스트>에 본인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담겨 있나? 주인공의 모습 중 긍정적인 부분은 실제 내 이야기고 불쾌하거나 거슬리는 부분은 지어낸 거라고 보통 말하고 다닌다. 슈프림이 파리에 매장을 열기 전, 실제로 모든 슈프림 매장을 방문하긴 했다.
주인공은 단지 슈프림의 광팬 정도가 아니라 슈프림에 엄청난 의미 부여를 하지 않나. 그 부분은 만들어낸 것인가? 상상을 가미만 부분도 있지만 실제 나도 슈프림을 사랑한다. 책에 나온 대부분의 사진이 내가 찍은 것들이다. 난 젊었을 때, 어떤 밴드에 대해 굉장히 쿨하다고 생각했고, 어떤 작가의 작품은 굉장히 생각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어떤 영화는 오래도록 남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비슷한 느낌을 슈프림에서도 받는다. 따지고 보면 그냥 하나의 옷 브랜드일 뿐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슈프림은 내 삶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책을 출판하며 그 생각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 카타르시스를 느꼈나?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한 부분을 부풀려서 한 인격체로 만들었다. 나는 슈프림에 미치도록 심취해 있었고, 모든 매장을 방문함으로써 슈프림의 모든 것을 알아내고, 결국은 그 악마를 내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여행이 끝난 뒤 책을 쓰고 나서는, 더 이상 슈프림에는 관심을 갖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말했으니 결국 슈프림이 나를 지루하게 할 거라고 말이다.
슈프림에서 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나? 그들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사실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하는 광고가 아니면, 대중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드레이크나 저스틴 비버가 슈프림을 입는다고 해서, 그들을 모델로 뽑거나 하지도 않는다. 슈프림의 매력은 “우리는 그냥 옷을 만든다. 그것 말고는 없다. 그저 좋은 제품을 만들뿐이다.”라는 그 자세다. 그들이 내게 책이 좋았다고 이메일을 보냈다면 이상했을 것이다. 그들의 신비주의가 훼손됐을 거다.
인터넷에 있는 슈프림 추종자들은 어떤가? 수천 명의 적들이 생겼다. 주로 10대인 그들은 나 때문에 슈프림이 쿨하지 않게 됐고 나 같은 오타쿠는 슈프림에서도 원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슈프림이 가지고 있는 신기한 면은, 사람들이 그 브랜드와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 브랜드와의 관계를 드러내면 그들과 슈프림간의 특별한 1:1 관계가 깨졌다고 생각한다. 슈프림 자체도 그렇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흥미로운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 무리할 정도로 노력하는데, 그 중에 내 소설 속 주인공 같은 루저는 없을 거다. 그렇지만 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벨기에에 사는 10대들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받았는데, 그들은 “나는 슈프림 때문에 살아간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 이야기를 말할 수 없었지만, 왠지 당신만큼은 이해할 것 같았다.”라고 했다.
차라리 슈프림에 대한 책을 쓰지 그랬나? 내겐 슈프림과 함께 보낸 시간 정도만 얘기할 권한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보다 훨씬 더 슈프림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하이프비스트(hypebeast.com)’에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것도 그들에게서 배운 것들이다. 슈프림 팬덤의 분위기는 굉장히 경쟁적이다. 내가 아주 잘 안다고 하면서, 1998년도에 생산된 티셔츠에 그려진 것의 유래에 대해서도 모른다면 매우 부끄러울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엔 슈프림에 대해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꽤 나온다. 팔리지 않은 채로 선반에 놓여 있던 제품들이 2~3년 후에 이베이나 그레일드(grailed.com)에서 엄청나게 비싼 값에 거래되는 걸 자주 봤다. 사람들이 그때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대단한 아이디어를 가진 제품이라고 깨닫는 거다. 지난 시즌의 레오퍼드 베스트처럼 말이다. 그 제품은 겉에 드러난 로고조차 없지 않나? 그냥 니트 베스트다. 그런 옷은 사람들이 리세일을 위해 사지 않는 제품이기 때문에 오히려 엄청나게 비싸진다. 인기가 별로 없거나 덜 인정받는 제품들에 대한 관심은 잘 알려지지 않은 밴드의 티셔츠를 입고 싶어하는 욕망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기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혹은 자기가 얼마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있는지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 점이 매력적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슈프림을 이렇게까지 이해한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그게 중요하긴 한가? 슈프림 구매자의 대부분이 슈프림을 그냥 쿨한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해도 놀랍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고 중요한 제품들을 만들어 내는 브랜드로 슈프림을 인식하고 있을 거다. 슈프림은 입는 사람들 개개인에게 다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슈프림은 사람들이 자신의 브랜드를 얼마나 이해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알렉스 윌리엄스는 2012년 <뉴욕 타임스>에 쓴 글 ‘게릴라 패션: 슈프림 이야기’에서 그가 슈프림을 잘 이해하고 있고 에트니스 같은 브랜드와는 얼마나 다른지 알고 있다는 걸 설득하기 위해 그들을 3번이나 다시 찾아갔다고 말하고 있다. 슈프림은 하이패션이 되는 것도 원하지 않지만, 그저 그런 스케이트보드 브랜드이길 바라지도 않는다.
대체 슈프림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슈프림에 처음 끌렸던 순간이 생각난다. 슈프림 매장을 지나가는데, 그들이 음악을 엄청나게 크게 틀어놓고, 소비자들을 쫓아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에 놀랐다. 그들은 돈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 그건 그들의 직업이니까. 하지만 그건 돈 때문이 아니기도 하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뒤엎을만한 것들을 만들기 위해 일하니까.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인식되는 걸 꺼려하지 않는다. 슈프림은 그저 드레이크가 입는 브랜드가 되고 싶진 않은 거다.
다른 브랜드를 위해 이런 식의 글을 또 쓸 생각이 있나? 애플 말고는 없다.
최신기사
- 에디터
- 글/ 나다니엘 프리드먼(NATHANIEL FRIED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