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은 숨기지를 못한다. 그렇다고 보이는 게 전부라는 뜻은 아니다.
지금(새벽 1시)은 잘 시간이에요? 아니요. 컨디션이 제일 좋을 때요.
저녁에 기분이 더 좋다는 이야긴 들었어요. 늦게 자나 봐요? 네, 거의 아침에 자요. 지금은 배도 좀 고프고, 학교 다닐 때에 비유하면 점심시간 이후?
약간 졸리지만 아직 생생할 때? 식사 조절 안 해도 돼요? 저는 몰아서 해요. 쉴 때는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해요. 하지만 활동이 닥치면 정말 집중해서 식단이든 운동이든 정해진 대로 하죠.
기분 좋은 밤 시간에 하는 일이 뭐예요? 이 시간에는 거의 게임해요. 요즘 <오버 워치>에 빠져 있어요. 아니면 TV 보고. 다들 똑같지 않나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별거 없네요. 네, 별거 없어요. 연예인 아닌 친구들이 오히려 이 시간대에 저보다 화려하게 지내더라고요. 근데 동료들은 다 저처럼 별 거 없어요.
집에서 입는 옷도 다른 사람과 비슷한가요? 그럼요, 큰 티셔츠에 ‘추리닝’이요. 아, 근데 잘 때는 꼭 잠옷을 입어요. 직접 만져보고 좋은 면을 골라요. 눈에 띌 때마다 순면 잠옷을 사서 집에 잠옷이 많아요.
추리닝 입고 게임하는 비주얼이라면, 집이 굉장히 어지러울 것 같은데 어때요? 이틀에 한 번씩은 쓸고 닦고 하는 것 같아요. 이것도 일종의 결벽인지 모르겠는데, 어딘가 지저분한 곳이 눈에 띄면 집 안 전체를 싹 치워요. 옷 색깔별로 빨래 돌리는 분들은 있겠지만, 저처럼 베이지색이랑 흰색도 함께 빨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삼십 대가 되고 달라진 게 있어요? 스물아홉 살 때 이미 호들갑은 다 떨었죠. 아, 이제 내년에 진짜 서른이네, 어린애가 아니구나. 놀라고 자책하고 반성하고 후회하고 다 했어요.
딱히 달라진 게 없다는 거죠? 그냥 걱정만 하다 서른한 살이 됐고, 좀 달라진 거라면 덜 예민해졌달까? 성격이 약간 둥글둥글해졌어요.
직접 얘기했듯이, 삼십 대를 넘어 나이가 들수록 확실해지는 건 ‘다른 사람도 다 이렇지 않나? 별거 없지 않나?’ 같아요. 뭔가 표현하는 입장에서 평범해지는 길이라는 우려는 없고요? 평범해지는 것 같진 않아요. 옛날엔 너무 감성적이어서 문제였어요. 좀 더 이성적이고, 좀 더 제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지금이 좋아요.
스스로 생각했던 삼십 대의 모습이에요? 오늘은 오늘 살고 내일은 내일 생각해요. 안정적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고, 지금 그렇기는 해요. 막 몸매가 변하고 얼굴이 늙는 건 짐작도 안 가잖아요.
성공한 것 아닌가요? 그렇게 늙지도 달라지지도 않았으니. 확 늙는다잖아요.
조바심이 있나요? 더 늙기 전에 뭔가를 이루고 싶다는. 조바심이 들긴 하죠. 옛날에는 막 일주일 동안 차에서 자면서 방송 스케줄 다녀도 감기 한번 안 걸렸거든요. 그때에 비해 확실히 체력이 달리는 게 느껴져요. 지금의 상태라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뭔가 해야겠다 싶은데 제가 또 뭘 꾸준히 못 해요. 계속 이렇게 산다면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일까요.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이효리와 엄정화는 분명히 다른데 사람들이 쌍으로 이야기한다는, 하지만 나는 엄정화에 가까운 것 같다는 말을 했죠. 두 분 다 너무나 존경하는 분들이고요. 각각 다른 고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종류의 결핍과 불안이겠죠. 남은 날들을 위해, 하나를 포기하더라도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언젠가 오겠죠. 하지만 그때 가서 선택하고 싶어요. 저는 에라 모르겠다, 스타일이에요. 그만큼 안 좋은 점들은 따라와요. 하지만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딱 두 분의 선택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 촬영에 앞서 <트레인스포팅> 같은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죠. 그러고보니 평균적인 삶에 대한 극단적인 반작용을 담은 영화네요. 어렸을 때는 그 감성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근데 이십 대 초반에, 딱 방황하는 청춘일 때 보니까 좋더라고요. 몇 번이나 다시 봤고, 최근에도 다시 봤어요. 좋은 영화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는데, 그 영화의 이미지나 음악, 패션이 좋아해요.
<트레인스포팅>이 그렇듯이, 대중문화는 동시대를 이야기하죠. 당신에게도 그런 의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에 걸맞은 이야기를 해왔달까요. 같은 세대의 친구들을 향한 이야기 같기도 했고요. 그렇게 따지면 제가 마흔이 되고 쉰이 되면 그 나이에 맞는 걸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게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제 음악은 어쨌든 남이 만들어줘요. 옛날에 사랑을 안 해봤을 땐 무슨 느낌인지 이해하지 못하면서 감정 잡고 노랠 불렀어요. 하지만 그건 억지고 가짜잖아요. 팬 분들은 브라운 아이드 걸스 1집, 2집의 제 노래를 좋아하는데, 저는 그게 너무 같잖아요. 물론 연기는 연기인 거지만, 경험해보고 이해하는 걸 다루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야 진짜 감정이 나오고 저도 즐거우니까요. 뮤직비디오든 가사든 콘셉트든 나이마다 느끼는 것들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제 나이 또래 사람들이 공감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게 첫 번째는 아니라는 거죠.
스스로 솔직하려는 노력이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도 좋아하게 만드는 효과를 낸 거네요. 김이나 작사가가 가사 쓰기 전에 “너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하니?”, “너는 요즘 어떻게 살고 있니?”, “너는 요즘 어떤 사랑을 하니?”, “너는 요즘 어떤 감정을 갖고 있니?” 이런 것들을 다 물어봐요. 스스로 뭔가를 쓰고 그걸 나한테 주입하는 게 아니고요. 그래서 좀 더 제 감정에 가까워요.
<나무위키>의 ‘가인’ 항목 앞부분에 이렇게 적혀 있어요. “아이돌계의 콘셉트 장인.” 그러니까 ‘음반 프로덕션’이 유기적이고 세련됐다는 거겠죠? 스스로 어느 정도 프로듀서라고 생각해요? 하하, 정말요? 한 30퍼센트 정도? 스태프들과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많이 내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뭘 정해놓고 한다기보다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완성돼요. 굳이 막 이게 내 콘셉트다, 이런 건 아니에요.
그 과정에서 이뤄지는 중요한 선택들이 있잖아요. 그 선택에서의 지분이라면요? 50퍼센트는 좀 과한 것 같은데, 어쨌든 선택은 제가 하는 거죠. 제가 하기 싫은 걸 한 적은 없어요. 정말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한 게 몇 번 안 돼요.
처음 음악에 빠지게 된 계기가 영화음악이라면서요? 그래서 그럴까요, 항상 가인의 뮤직비디오에는 이야기가 있어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음악은 별로 안 좋아해요. 이미지, 분위기, 느낌 같은 게 떠오르는 음악은 계속 듣는데 아닌 건 더 못 듣겠더라고요. 그 느낌과 이미지가 좋으면 음악이 더 좋아져요.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올드보이>를 정말 재밌게 봤는데, OST는 너무 난해하거든요. 하지만 그 느낌에 계속 남아 있고 싶어서 음악을 계속 듣는 거죠.
작년에 나온 ‘카니발’의 뮤직비디오는 지금까지 나온 작품들과 좀 달랐어요. 뮤직비디오 감독이 달랐고, 계속 제 생각이 많이 들어간 앨범을 하다 보니까 피로해진 것도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PD님이든 저든, 예를 들어 ‘피어나’가 잘됐으면 계속 그런 식의 것이 나오게 마련인데 그렇게 가는 걸 싫어해요.
가인은 불안하고 신경질적이라는 이미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별로 신경 안 써요. 일 하다보면 신경질적이고 예민할 수 있잖아요.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가 일하면서 안 건데요. 사람이 너무 무디고 둥글둥글하면 안 되더라고요. 돌이켜보면 제가 결벽적으로 할 때 성과가 빨리빨리 보이고 훨씬 좋았어요. 지금처럼 나태하게 있으면 예민한 부분도 없어지고 성격도 좋아져요. 완벽과 결벽을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만큼 피곤한 게 없고, 그래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주변에서 어떻게 그렇게 피곤하게 사냐고 그랬거든요. 아무래도 일할 때는 예민한 걸 많이 표출했죠. 근데 제 성격이 숨겨지지가 않아요, 전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뭘 숨기려고 해본 적이 없고 그게 가능하지가 않아요. 안에서 한번 걸러주는 필터가 없어요. 이렇게 보여야겠다, 이렇게 보여야지, 하는 필터가 없어요.
그래도 예전보단 컨트롤이 잘되는 것 같다면서요? 예전보다는 되는데, 원래 그런 사람이 변해봐야 얼마나 변하겠어요. 하하. 나쁜 짓만 안 하면 되죠. 누굴 때리거나 이러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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