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에 나오던 정원이 딸린 크고 정갈한 집에서 파자마를 입고 사는 게 아니라, ‘진심’이라는 말을 무모할 정도로 따르면서 음악을 중심에 두고 사는 일.
태양이 지금까지 < GQ >와 한 인터뷰를 모두 다시 읽어봤어요. 그중에서도 눈에 띈 게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는 부분이었죠. 사랑을 할 거라고 하고, 월드투어를 할 거라고 하고, 오로지 노래로만 이루어진 곡을 발표할 거라고 해요. 다 이뤘네요? 그러네요? 하하. 지금 듣고 약간 놀랐어요, 그때 그런 이야기를 했다니….
이제 뭐가 남았어요? 음악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 결국에는 제 삶이 반영된 음악을 해야 많은 분이 공감할 수 있고 진실해진다는 결론에 도달하더라고요. 음악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데,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우선 제 삶이 먼저라는 생각이에요. 제 삶의 여러 가지 환경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영감을 받아야 진정성 있는 음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음악 하는 사람한테 맞는 건진 모르겠지만, 저는 지극히 성숙한 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삶이 제가 표현하는 모든 것에 반영된다고 느껴요.
예전에는 안 그런 쪽 아니었나요? 노래를 예로 들면, 어떤 노래에 맞는 연기를 한다는 입장 아니었어요? 예전엔 일이 먼저고, 노래를 발표하는 게 먼저였어요. 제 생각을 담기보단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서 달렸죠. 그때가 없었으면 지금도 없겠죠.
예능에 나오기 적절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 적은 없지만 예능에 나와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된 것. 그게 지금의 태양 같아요. 맞아요, 지금 같은 마음이었으면 그때도 잘했겠죠. 근데 시대적인 것도 있어요. 당시 방송의 분위기는 뭔가를 과장하거나 꾸미지 않으면 안 됐어요. 저랑 맞지 않는 옷을 입어야 하는 게 너무 큰 부담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기를 원하잖아요. ‘관찰 예능’ 덕분에 저도 예능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하지만 그것만은 아닌 게, 2집 전후 정도일까? 태양이 지금의 입장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어요. 빅뱅 무대만 봐도 그전과 너무 달랐달까? 무대에서 정말 놀고 있는 듯한? 정확히 그래요.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고민했고 자연스럽게 변했어요. 나이 얘기는 좀 그렇지만 시간도 무시할 수 없고요. 생각이 단순해지고 어떤 핵심에 대해 확실해지는 거요.
예전에는 태양이 하고 싶은 게 있지만 회사는 반대하고 그래서 싸우고 설득하는 과정이 도드라져 보였는데 그것도 다른가요? 2집을 완성하는 데 4년이나 걸린 게 그때 갈등이 제일 심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사실상 제가 추구한 음악은 보여주지 못했어요. ‘눈, 코, 입’을 부르면서 생각이 정말 많이 바뀌었죠. 제 음악적 스타일이 자꾸 부딪히고 지연되고 무너지면서 그럼 지금 어떤 음악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음악 장르를 떠나서 그냥 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하다가 나온 곡이에요. 정말 많은 분이 좋아했고, 진짜 좋은 음악은 진실된 이야기를 하는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럼 3집 < White Night >는 좀 더 태양이라고 볼 수 있나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하지만 지금의 제가 느끼고 좋아하는 것들을 담은, 제 아이덴티티가 거의 다 담긴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앨범은 정말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거의 99퍼센트. 2집을 통해서 이렇게 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때 제일 많이 반성한 부분이 관계예요. 사람들과의 관계, 회사와의 관계. 결국 제일 중요한 건 관계더라고요. 사람들을 만나는 태도가 바뀌었죠. 정말 폐쇄적이었는데, 마음의 문을 열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좀 더 자연스러워졌어요.
그게 의지만으로 되는 일인가 싶기는 하네요. 관계에도 재능이라고 부를 만한 어떤 게 있는 것 같거든요. 태양은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제가 느끼는 대로 표현하면, 저는 다시 태어났어요. 하하.
누군가가 단도직입적으로 너는 변했어?, 라고 물으면 어때요? 변한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확실히 말 할 수 있는 건 좋은 변화라는 거예요.
제가 보기에 변하지 않은 것 중 하나는 ‘진심’ 같은 단어를 쓰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태양은 아이처럼 순수한 열정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 같고 여전히 그래 보이거든요. 그게 변하는 순간 음악을 못 할 거예요. 제가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거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뭔가를 하는 게 일단 가능하지 않아요.
요즘 <믹스 나인>에 출연하는 연습생들 보러 다니잖아요. 어때요? 정말 일부분, 덕담하는 부분만 주로 나와서 어떤 감상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저도 물론 가수가 되려고 했을 때 그랬고, 그렇게 가수가 됐지만 정말 너무너무 간절해요. 어느 정도냐면, 아, 진짜 가수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지?, 하면서 저 자신을 의심했어요. 또 하나는 간절한 만큼 자기 꿈을 구체적으로 설계하면 좋을 텐데 대부분 막연해요. 그냥 배운 대로만, 그냥 무조건 열심히 할 뿐이에요. 이것이 어떤 가수, 어떤 음악, 어떤 무대를 위한 싸움인지에 대한 성찰이나 준비가 없어요.
싸움이라는 단어를 쓰니까 물어보고 싶은 게, 순수한 열정에 대한 에너지가 있는 사람은 분노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까지 태양이 분노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그게 참 희한해요. 그런 모습이 있는데, 방송에 나온 적이 없어요. 불같이 화를 내진 않지만 상당히 직설적이거든요. 빅뱅 멤버 중에서 스태프에게 싫은 소리를 가장 많이 하는 게 저예요. 그것도 정말 차갑게요. 방송에서 그렇게 얘기한 적도 있지만 다 편집되더라고요. 따뜻하게 얘기한 부분만 나가요. 그래도 예전엔 저랑 일하면 스태프들이 많이 힘들어했는데, 이젠 기분 나쁘지 않게 얘기하면서 일하는 방법을 알아요.
< White Night >도 그렇게 들려요. 심지어 가장 격렬한 댄스곡도 부드럽게 느껴진달까.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쨌든 지금 제 색깔이 담겼으니까.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뭐예요? 저는 진짜 다 좋아요. 하하. 그래도 꼽자면, 2집도 그랬지만 인트로예요. 저는 앨범이 가진 큰 테마나 색깔을 인트로에서 보여주려고 하는데, 이 앨범에서 백야의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덧붙이자면 태양의 앨범은 첫 곡도 첫 곡이지만 마지막 곡도 중요하죠. 마지막 곡에는 늘 절창이 나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항상 마지막 곡은 태양이 가장 뜨거울 때의 이미지를 주려고 해요. 2집에서도 첫 곡과 마지막 곡만큼은, 마지막까지 타협하지 않은 그 앨범의 색깔이었어요.
지난 앨범처럼 이번 앨범도, 앨범치고는 너무 짧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제 생각도 그래요. 못 해도 10곡은 되어야 하지 않나.
이번에도 덜어내서 그런 가요? 2집은 덜어낸 게 맞고요. 이번 앨범은 딱 이렇게만 만들었어요. 만든 입장에서는 8곡을 만들어서 8곡을 다 넣었다는 게 만족스러워요. 곡 수가 더 많으면 좋겠지만 더 했으면 올해 못 나왔어요. 올해 초 작업 시작해서 한 달에 한 곡꼴로 만든 거예요. 거의 쉬지 않고 만들었죠.
예전엔 하나를 붙들고 연마하고, 재련하는 쪽이었다면, 이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는 게 빠르네요? 제 경력에도 이렇게 안 하면, 제가 생각하고 마음에 드는 지점까지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2집은 작업 기간이 길어지니까 결국 초반에 만들어놓은 음악이 나중에는 듣기 싫어졌거든요? 이게 괜찮나?, 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이런 싸움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죠.
이 앨범이 한국보단 외국에서 더 좋은 반응을 얻은 사실은 어때요? 음, 외국에서라도 좋아해서 다행이다? 하하. 하지만 저는 한국에서 반응이 좋은 게 더 좋아요. 한국어로 부르는 가수니까요.
태양은, 취향은 마이너하지만 가고 싶은 지점은 아주 보편적인 가수라고 생각해요.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에서 반응이 좋은 게 뭐 대수일까요? 어디든 상관은 없지만, 제가 가진 강점은 한국어로 노래한다는 거예요. 한국어지만 외국 사람이 들어도 어색하지 않게 들리는 보이스의 장점이 있고요. 외국 음악을 듣고 자랐어도 감성은 한국적이라고 생각해요. 이걸 정말 좋은 밸런스로 보여줘서 여기서도 인정받고 거기서도 인정받는 게 더 어렵지만 맞고 멋있는 길 같아요. 해외의 팬 분들은 사실 이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들을 텐데, 제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부르거든요? 한국어로 부른 노래가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
매번 유심히 듣는 한국 가수가 있었죠. 요즘엔 누굴 들어요? 진짜 이런 음악을 지금의 스타일로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뮤지션, 유재하 선배님이에요. 1집 앨범을 들어보면 너무 순수하고, 그렇게 오래됐는데도 100퍼센트 공감할 수 있는 가사예요. 이렇게까지 공감이 간다는 게 그 노래의 힘이고, 당시에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했다는 게 놀라워요. 아마 지금까지 살아계셨으면 가요가 많이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까지 들어요.
지금 가장 노래를 잘한다고 평가받는 가수가 ‘가창력 미숙’이 금지곡 사유였던 가수를 높이 평가한다는 게 재밌네요. 그래요? 그러고 보니 그때의 기준에선 그랬을 수도 있겠어요. 근데 지금 제가 듣기로는 이게 진짜 음악 같아요. 이건 사실 어떤 평가의 맥락을 넘어서 있어요. 가창력이라는 잣대를 갖다 붙일 수가 없는 경지죠. 지금 무슨 말인지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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