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은 높아지고 차는 커지고 비행기는 무거워진다. 당연히 복잡한 참사로 돌변하는 화재가 늘어난다. 세계의 소방관을 훈련시키는 엘리트 팀을 만나 교육 과정을 지켜보았다.
호흡 보조 기구 탓에 이언 포스터-토드의 목소리는 천식이라도 걸린 양 쌕쌕거렸다. 그래서 외쳐 대는 안전 수칙도 알아듣기가 너무 어려웠다. 보잉 747기 동체의 앞부분에서 발생한 화재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대형 철제 구조물의 비상구 앞에서, 그는 무릎 꿇는 동작을 나에게 직접 보여줬다. 따라 하라는 뜻이었다. 이어 동료들에게 스위치를 올리라는 수신호를 보낼 거라며, 그 광경을 보라는 몸짓을 다시 취한다.
스위치를 올리자 순간 엄청난 양의 액화 석유 가스 불길이 시스템에서 치솟아 올라 옮겨 붙었다. 오렌지색 불길의 파도가 천장과 머리 바로 위에서 넘실거렸다. 거대한 파도가 치는 가운데 물밑에 갇혀 있는 것처럼 오렌지색 해파리 같은 불길이 천장을 감쌌고 솟구치는 굉음도 따라 들렸다. 목숨을 지켜주는 장비의 존재도, 주변 상황도 의식하지 못한 채 쳐다봤다. 바로 1미터 위에서 넘실거리며 섭씨 400도로 지져대는 불꽃밖에 느낄 수가 없었다.
경험할 기회는 드물지만, 어쨌거나 화재의 위력은 막강하다. 따라서 직접 겪을 때까지 이런 화재는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훈련실에서 빠져 나온 뒤 “화재 현장의 온도는 엄청나게 높습니다”라고 포스터-토드가 설명했다. “오븐 통닭구이의 조리 온도가 섭씨 180도라는 걸 생각해보세요.” 포스터-토드는 더럼 티스 밸리 공항 근처에 있는 국제 화재훈련 센터(IFTC)의 교관이다. 60세인 그는 집채만 한 건장한 체구에 까칠한 유머를 겸비했다. 클리블랜드 소방서에서 22년 간 화재를 진압한 뒤 교관으로 합류한 지 17년째다. 내화 재킷을 벗으니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가 적나라하게 새겨진 그의 팔이 드러났다.
747 기체의 앞부분은 8헥타르의 센터 부지에 자리 잡은, 녹슬어가는 14기의 화재 진압 훈련 장비 가운데 하나다. 1981년 옛 국방부 기지 건물을 재활용해 민간 항공국이 운영하다가 1996년에 영국의 외주 업체인 서코가 인수했다. 은퇴한 항공기, 뒤집어진 유조차나 부서진 밴이 가로등 주위에 널부러져 있다. 석유 시추 시설에서 발생한 화재를 모사할 수 있는 선박용 컨테이너가 진한 오렌지색으로 녹슬어 있다. 타버린 충돌 시험용 인형이 그을린 헬리콥터나 경비행기 선체에 죽은 듯 앉아 있다.
버려진 잔해의 난장판 한가운데에 녹색의 거대한 금속 장비가 서 있다. 금속으로 만든 프랑켄슈타인 같다. 땅딸막한 지지대 위에 설치되어 있는데, 보잉 767기의 전면부 혹은 에어버스 A380기의 후미처럼 생겼으며 짧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2007년, 1백60만 파운드를 들여 IFTC에 구축한 설비다.
차량 내부의 재료나 가정용 전자제품의 발전 덕에 작은 화재의 위험은 줄어들고 있다. 오히려 소방관이 두려워하는 유형의, 진압하기 불가능한 화재만이 남았다.
IFTC의 목표는 극단적인 환경에서 화재 진압법을 교육하는 것이다. “소방관들의 디즈니랜드죠.” 2년 반 동안 IFTC의 교관으로 일해온 리 구필로트가 말한다. 그는 영국 공군에서 화재를 진압하다가 IFTC에 합류했다.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코소보, 포클랜드 제도 등 지구의 주요 전장과 재난 지역에서 복무했다.
IFTC에선 131개국의 소방관이 훈련을 받았다. “추가 교육을 위해 돌아오기도 합니다.” IFTC의 기술 서비스 매니저인 크리스 브라운이 설명한다. 그는 형광색 조끼와 안전모 차림으로 화재 현장을 누비며 일일 운영이 잘되는지 확인한다. 통계 자료를 들여다보면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화재의 성격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2003~2004년에 473,563건이었던 영국의 화재와 구조 서비스는 2015~2016년에 162,000건으로 수가 줄었다. 일부는 나아진 교육 덕분이다. 이제는 방치한 불에서 화재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는 걸 모두가 잘 안다. 불에 프라이팬을 올려놓아 벌어지는 화재는 이제 과거의 일이다. 하지만 화재경보기처럼 작은 요소도 큰 도움이 되었다. 1988년만 해도 주택 전체의 고작 8퍼센트에 경보기가 보급되었다. 오늘날은 정반대로 8퍼센트만이 경보기를 안 갖추었다.
이제 일상 생활에서의 화재는 거의 사라졌다. 오히려 직업 소방관이 두려워하는 유형의, 불가능에 가까운 화재만이 남았다. 차량의 재료, 전자제품의 발전 덕에 화재의 위험은 줄어들었다. 방화문이나 스프링클러 같은 수단으로 화재의 확산도 막을 수 있다. 새로운 대피 절차도 계속해서 시험을 거친다. 특히 비행기의 경우가 그렇다. 몇십 년 동안 화재 진압의 원칙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불길은 물에 잦아드는데, 요즘은 IFTC에서 개발한 단백질 위주의 거품을 쓴다. 불을 뒤덮어 산소의 공급을 차단하는 원리다.
런던 소재의 24층 건물인 그렌펠타워 화재 참사가 발생한지 채 6주가 지나지 않았던 시점에 IFTC를 방문했다. 기사를 쓰는 이 시점에 발표된 사망자의 예측치는 80명이다. 런던 전역에서 250명의 소방관이 동원되어 잡을 때까지, 불은 60시간이나 타올랐다. 화재의 규모가 너무 큰 나머지 영국이 보유한 가장 전문적인 장비로도 잡을 수가 없었다. 6월 14일, 클레어 벤슨은 텔레비전을 틀자 눈에 들어오는 끔찍한 광경에 즉각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저는 ‘진압이 불가능한 화재야’라고 말했습니다.” 35세의 벤슨은 런던 사우스 뱅크 대학의 화재 및 폭발 과학자다. “‘삽시간에 너무 크게 퍼진 불길이라 되돌릴 수가 없겠어. 진압에 엄청나게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모되겠는데’라는 게 저의 반응이었습니다.” 불길이 그토록 빠르게 퍼져 많은 사상자를 낸 원인 조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 치명적인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현재까지의 의견이다. “어떤 화재든 발화 및 확산 위기, 진압 방식과 대피 대책을 분석해야 합니다”라고 벤슨은 설명한다.
그렌펠의 경우 자격 미달인 건물 외장재가 발화 및 확산의 원인이었다고 여겨진다. 스프링클러 시스템이나 방화문 같은 현대의 화재 안전 대책 또한 없거나 오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 두 가지가 위기를 키웠다. 상층부의 불길을 잡을 만큼 높이 뻗을 수 있는 진압 장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피 절차도 엉망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대로 있으라”라는 충고 탓에 연기와 불길에 목숨을 잃었다. “영국 소방의 9/11 같은 사건이었습니다”라고 IFTC의 또 다른 교관인 닐 크로스비가 말했다. “이런 순간이면 ‘고참이든 신참이든, 대체 소방관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미래의 소방관은 빈번하진 않아도 더 위험하고 규모가 큰, 복잡한 건물의 화재나 착륙하는 비행기의 화재와 맞서야 한다. 그렌펠 참사나 항공기 화재는 그다지 다를 게 없다. 둘 다 멀리 떨어져 닿을 수 없고, 불길이 퍼지기 쉬운 공간에 수백명이 몰려 북적거린다. 이런 요소는 소위 기본적인 소방대의 수준을 한참 넘어서는, 전문적인 훈련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래서 소방관들이 IFTC로 찾아온다.
소방관들은 객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기내로 진입했다. 그리고 잽싸게 소재 파악이 안 되던 다섯 명의 승객을 구출했다.
2017년 7월에는 스위스 공군 대표 11명이 IFTC에서 훈련했다. 그날의 첫 번째 과제가 무전기를 찢을 듯 헤치고 나왔다. 공항으로 접근하는 항공기의 기장이 엔진의 화재를 보고했다. 탑승 인원은 30명. 1분 뒤 다른 메시지가 전달됐다. “항공기 사고, 항공기 사고. 추락한 항공기에서 화재 발생. 응답하라, 응답하라. 대피 진행 중, 다섯 명 소재 파악 불가. 다섯 명 실종.” 사이렌이 크게 울리고 소방관 두 팀이 볼링장에서 공을 굴리듯 재빨리 호스를 소방차에서 내려 굴렸다. 딱딱한 호스는 단백질이 주성분인 거품을 분당 8천 리터씩 내뿜어, 검은 연기를 뭉게뭉게 뿜어 올리는 비행기의 동체를 식혀 화재 확산을 막아준다. 항공기 엔진에서 용솟음치는 불길은 이전에는 진압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것이었다.
스위스 팀이 손으로 호스를 쥐고 퍼붓는 동안 소방차 상단부에 달린 호스에서는 눈처럼 하얀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화재의 중심을 겨냥한 것으로, 엔진이 잠기도록 거품과 물을 뿜어내 온도를 낮추는 동시에 불길을 잡아 재발화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초기 진압 시도는 불안정했다. 교관이 나서 소방관들의 위치를 직접 다시 잡고 물과 거품을 재조준시켰다. 결국 불길이 잡히고, 소방관들은 객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기내로 진입했다. 그리고 소방관들이 잽싸게 다섯 명의 승객을 구출한다.
화재의 발생 빈도나 강도가 달라짐에 따라 소방관의 훈련 유형 및 장비도 달라졌다. 포스터-토드가 1978년에 처음 임관했을 때는 원시적인 장비밖에 보급받지 못했다. 플라스틱 레깅스에 장갑도 없었고 일반적인 소방모뿐이었다. 너무나도 중요한, 어깨 윗부분을 덮는 방화모인 내화 후드도 없었다. “세상이 발전한 만큼 장비나 전략도 발전했습니다” 점심 식사 자리에선 교관 앤디 베넷이 IFTC가 시운전 중인 새 소방차, 로젠바우어 팬서의 사진을 아이폰으로 밀어 가며 보여주었다. 위압감을 줄 정도로 거대한 기계로, 대장갑 창이 항공기의 동체를 뚫고 물과 거품을 주입하는 소방차다. 훈련 시설의 연료 주입 시스템을 손보기 위해 잉글랜드에서 찾아 온 업체 관계자를 포함해 모든 이의 관심을 끌었다. “엄청난 장비죠”라고 베넷이 말했다. “하지만 호스를 항공기 동체에 찔러 넣을 때 근처에 있어서 좋을 일은 없을 겁니다.”
최선의 기술도 자동으로 화재를 진압해주지는 못한다. 냉철한 이성으로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 “항공기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었고, 전자 부품이 들어차 있고 동시에 금속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교관인 54세의 닐 크로스비가 설명한다. “그래서 90초 안에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건물이라면 하루 종일 타오를 테지만 항공기는 사정이 달라요. 금속이 흘러내릴 거예요. 그러니까 화재 현장에 3분 내에 진입해야 합니다.”
항공기 제조를 규제하는 법과 인증에 따르면, 화재 발생 시 소방관은 3분 안에 진압을 시작해야 한다. “소방서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드라마 <코로네이션 스트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3분 안에 출동해 호스를 굴려 물을 뿜어내야 합니다. 3분. 법으로 명시된 시간이에요.”
화재 물리학을 따져보면 속도는 핵심이다. “뜨거울수록 물이나 거품의 위력이 약해집니다. 증발하니까 제 역할을 못 하는 거죠”라고 벤슨이 설명한다. 화재가 심각할수록 물이나 단백질 위주의 거품에서 수분이 증발하기 전에 불길을 진압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또한 불이 뜨거울수록 잘 퍼집니다.” 대체로 화재 현장에서는 생각할 여유라는 게 없다. 그래서 소방관은 본능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훈련을 받는다. 세계 곳곳에 훈련 시설이 자리 잡고 있지만 교관의 경험 수준이나 굉장히 전문적인 훈련 과정을 생각해보면 IFTC만큼 수준 높은 곳은 드물다.
잉글랜드 웨스트미들랜즈주의 올드베리에서는 18강 소재의 컨테이너로 만든 6층 탑에서 고층 건물의 화재 진압 훈련을 받는다. 이 훈련의 교관 데이비드 페이튼(웨스트미들랜즈 소방서 소속)은 “현재의 고층 건물 화재 진압 훈련에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라고 말한다. 게다가 화재가 발생할 경우 현장에서 몇 층 아래에서 상황을 파악해야 하므로 특히 더 문제다. (그렌펠 참사 이후 올드베리의 고층 건물 훈련에 대한 문의가 늘어난 건 놀랄 일도 아니다.)
소방관들은 기준이 높다. 그 기준에 맞춰주는 IFTC에서 훈련 받고자 티사이드로 모여든다. “우리는 대체로 가스 화재를 물로 진압하는 훈련을 받습니다”라고 스위스 공군의 추락 및 화재 구조 본부장인 중령 한스 슈미트는 말한다. 그는 훈련 기간 동안 사무 공간으로 활용하는 포타캐빈 임시 사무실의 낮은 바에 기대어있다. 함께 훈련에 참여한 소방관 열 명이 그날 의 첫 번째 화재를 진압한 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숨을 몰아쉬며 기력을 회복하는 참이다.
“이곳의 훈련에 참여하면 좀 더 현실적인 느낌을 받습니다”라고 슈미트는 말을 잇는다. IFTC에서 훈련 받는 스위스인은 모두 소방서의 서장급으로, 각자 다른 일곱 군데의 공군 기지에서 파견되었다. 그리고 참사 상황에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배운다. 불길을 다스리는 데 쓰는 재료 덕분에 IFTC는 독특한 입지를 선점한다. “그저 현실을 모사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습니다”라고 포스터-토드는 설명한다. “그 자체로 현실인 환경에서 훈련 받는 거예요.”
그렌펠타워 참사만큼이나 규모가 크고, 기존의 소방 규칙을 재정비하게 만든, 너무나도 뼈저린 교훈으로 자리 잡은 화재가 몇 건 있다. 화재 시 대처가 뒤떨어졌음을 발견한, 또한 비상시 대처의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은 중요한 사례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륙하는 사이에 벌어진 화재로 55명이 사망한, 1985년 맨체스터 공항의 보잉 737기 사건이다. 베넷이 왕립 공군에 합류하고 소방관이 되기도 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는 이 화재 사건의 세부 사항을 복기할 수 있다. 2단계 연소 지역에서 9번 연소실이 파손되어 작동을 멈추었던 것, 엔진이 날개로 바로 날아가 박혀버린 이유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첫 파손 이후 불과 21초 만에 승객이 이미 화재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우리는 사례 연구와 토론을 통해 배웁니다. 현장의 대처 방식을 살피고 바로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경우의 대처 방안에 대해 논의하죠.”
베넷은 스위스 소방관들의 항공기 화재 진압 사후 평가를 이끈다. 그들이 IFTC에서 닷새동안 겪는 훈련의 일부며, 대처 방안을 점검해 볼 기회이기도 하다. 스위스 소방관들은 불길의 확산을 막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불길을 다루는 데 다소 서툴렀다는 의미다. 베넷과 구필로트가 몇 번이고 개입해 호스를 다루는 소방관들을 손수 재배치해야만 했다. “개선점을 찾아 내지 못한다면 헛일하는 셈입니다”라고 스위스 소방관들이 처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베넷이 설명하는 동안 포스터-토드가 설명했다. 슈미트가 베넷의 말을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번역해 다른 소방관에게 전달한다. 베넷은 소방관들이 큰 불길에만 집중하고 작지만 더 위험할 수 있는 불길은 무시하는 경향을 지적했다.
“경험을 쌓아서 대처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라고 그는 외쳤다. 평소보다 찰나 늦게 입을 빠져나온 말이었다. 스위스인들이 말을 이해할 수 없을까 봐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그들을 기죽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화재 현장에서는 시야가 좁아집니다.” 한참 생각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오렌지색 불꽃만 보이지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소방도 교실에서 가르칠 수 있지만, 일정 수준까지만이다. “그렌펠처럼 ‘지금까지의 규칙에 맞아떨어지지 않는데’라고 생각되는 사건이 있습니다”라고 크로스비가 설명한다. 소방은 현실 속의 경험, 공유하는 지식, 사례 학습을 통해 쌓는 커리어다.
8월에는 정부가 그렌펠타워 참사의 조사에 착수했다. 구조 설계며 지역 의회의 대응, 중앙 정부와 런던 소방대 (수도 주변에 다섯 군데의 훈련 시설을 운영하는)를 점검했다. 조사에는 적어도 몇 달, 아니면 몇 년이 걸릴 것이다.
조사가 끝나고 나면 그렌펠 참사는 모두에게 교훈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사건의 세부 사항에 대해 소방관이나 교관이 줄줄 읊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렌펠 같은 규모의 사건에 본능적으로 인간이 반응하는 경향은 우려된다. “공항에서 그렌펠 같은 사건이 벌어진다면 대처 못할 것입니다”라고 베넷은 말한다. “외부의 소방서가 출동해 지원해야죠.”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화재를 제대로 진압할 수 있지만 그렌펠에 출동한 소방관들은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네” 라고 생각했을 거라 장담한다. 그는 30년에 걸쳐 세상에서 가장 살기 어려운 곳에서 복무하고 강력한 화재의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겪어왔지만, 이런 상황이었다면 똑같았을 것이다.
훈련도 물론 중요하지만 대형 항공기 추락이나 고층 건물 화재에는 완벽히 준비하는 게 불가능하다. “고층 건물 화재 진압도 훈련 받을 수 있지만, 일정 층고까지만 가능합니다”라고 IFTC의 가상 현실 훈련장에서 크로스비가 설명했다. 근처에서는 지휘소방관이 항공기 추락을 모사한 대형 화면 앞에 서서 화재를 진압하는 휘하 소방관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다.
“항공기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었고, 전자 부품이 들어 차 있고 동시에 금속으로 둘러 싸여 있죠. 그래서 90초 안에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화재 현장에 3분 내에 진입해야 합니다.”
IFTC의 가상현실 훈련장에서는 소방관들이 서로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칙을 시험해볼 수 있다. 반짝거리는 새 설비에서 게임용 컴퓨터를 통해 승객의 움직임이나 날씨 등을 직접 설정해 훈련 할 수 있지만 IFTC의 교관은 입을 모아 실제 훈련이 훨씬 낫다고 말한다. “95층인 더 샤드 건물을 예로 들어보죠. 그런 고층 건물에서 화재를 어떻게 진압할 겁니까?”라고 크로스비는 큰 목소리로 물었다.
항공과 건축 분야의 바뀐 현실도 화재 진압에는 악영향을 미친다. 도심 속의 건설 공간이 줄어든 탓에 고층 건물의 수나 규모도 늘어났다. 작년만 해도 런던에서 48건의 고층 건물이 착공되었고 407건의 건물 건설 계획이 발표됐다. 총 455건 가운데 420건이 거주용이 될 전망이다. 항공기 또한 덩치를 계속 불리고 있다. 에어버스 A380은 현재 탑승객 최고 기록을 보유한 보잉 747기를 초라하게 만들 정도로 거대한 비행기다. 시애틀 주 에버렛에서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건조된 첫 보잉 717-100기의 승객 정원은 440명이었다.
“747은 아름다운 항공기입니다”라고 크로스비는 말한다. “그러더니 맥도날드처럼 천편일률적으로 변했어요.” 이윤의 압력으로 더 많은 승객을 수용할 수 있도록 바뀌고 있다. 747기는 훨씬 더 길어졌으며 디자이너는 더 많은 탑승객 수용을 위해 2층 공간을 추가했다. “A380은 어떻게 될까요?” 크로스비가 나에게 물었다. “덩치도 엄청난 수준으로 더 커질 텐데, 이게 언젠가는 사고가 날 겁니다.”
소방관은 거대한 화재, 도저히 진압할 수 없는 불길의 두려움을 안고 산다. 아침 출근에 따라와서는 저녁 퇴근에 집까지 쫓아오는 두려움이다. 화재가 발생한다면 이런 현장을 통해 소방관은 훈련에 의지해 불길로 달려 나간다.
다양한 훈련 각본(항공기 추락, 경비행기 충돌, 헬리콥터 화재, 재급유 탱크 폭발)을 취재하기 시작한지 이틀째에 공항의 상당 부분이 거품에 뒤덮였다. 불길이 잡히자 사그라드는 연기가 수평선으로 흘러 들어갔다. 진압된 지 오래 지난, 다 타버린 경비행기의 엔진에서는 여전히 열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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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Chris Stokel-Walker
- 포토그래퍼
- Benedict Redgr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