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은 될 때까지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이게 다가 아니라고, 아직 더 있다고 말한다.
4년 전, <GQ KOREA>와 인터뷰했을 때 열아홉 살이었죠? 그때 키가 187센티미터까지만 컸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랬나요? 이제 188센티미터니까 됐네요. 더 크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조금만 더 커서 서브를 치기에 딱 좋은 키였으면 좋겠다고 했었죠. 사실 키 때문에 걱정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저희 가족이 다 작은 편인데도 이상하게 난 항상 키가 클 거라고 믿었어요.
이제 목표로 하던 톱 텐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랭킹이 발표되면 예전하고 기분이 좀 다른가요? 요즘 부상 회복 중이라 시합을 안 뛰어서 신경 안 쓰고 있었어요. 그리고 랭킹을 따로 찾아보진 않아요. 랭킹이 올라가거나 떨어지면 기사로 나오니까 어차피 알 수 있고요.
역시 호주 오픈 4강 얘길 해야겠지만, 저는 그 경기 직전에 참가한 뉴질랜드 오클랜드 오픈이 더 충격이었어요. 특히 존 이스너와의 경기를 보면서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다른 선수가 될 수 있는 건가 싶었죠. 맞아요. 그동안 그런 잘하는 선수들이랑 경기를 할 땐 한 세트도 못 이기고 질 때가 많았죠.
존 이스너는 서브가 강하죠. 2017년 US 오픈에서 만났을 때 그의 강서브에 대응하는 정현 선수의 리턴이 문제였는데, 반년도 안 돼서 확 달라졌어요. 심지어 US 오픈에선 정현 선수를 상대로 한 존 이스너의 서브 득점률이 88퍼센트였는데, 뉴질랜드에선 64퍼센트였죠. 우승을 한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스보다 뉴질랜드 경기에서 훨씬 가파른 성장이 느껴졌다면 비약일까요? 대체 겨울 동안 훈련을 한 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태국에서 따로 뭘 더 한 건 없고요, 매년 하듯이 똑같이 했어요. 그런데 존 이스너와의 경기에서 첫 세트를 이기는 순간 ‘아, 전보다는 내가 이길 확률이 있겠구나’ 싶었고,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어요.
태국에서 만난 새로운 코치인 네빌 고드윈의 역할이 있었겠죠? 그분은 저를 다른 시각으로 봐주시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그동안 제 자신도 못 느꼈던 것들을 알게 됐고요. 아, 그분이 전에 케빈 앤더슨 선수 코치였어요.
그 선수를 지도하면서 작년 ATP에서 선정한 올해의 지도자상을 받았고요. 맞아요. 고드윈 코치님은 그동안 톱클래스 선수를 많이 맡았고 수많은 경기를 지켜봤으니까 경험이 굉장히 풍부하죠. 존 이스너와 경기 전에도 강서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부터 잘 알려주셨고요. 물론, 그걸 제가 제대로 따른 것도 있겠죠. 모든 게 딱 잘 맞아떨어졌어요.
새로운 코치를 만나면서 서브 리턴은 물론 서브, 특히 퍼스트 서브가 달라졌어요. 기술적인 변화가 있을까요? 재작년에 투어 중단하고 살아남기 위해 선수촌에 들어갔어요. 당시에 스트로크 교정을 많이 했는데 서브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생각이 복잡했어요. 저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서브는 좀 달랐어요. 고드윈 코치님은 두려움부터 떨쳐주셨어요. 우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셨고, 내가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한 번에 캐치해서 알려주셨죠. 그러다 보니 변화가 좀 빠르게 확확 되었던 것 같아요. 기술적으로는 스윙 각도를 좀 바꿨어요.
감정적인 부분에서도 도움을 많이 준 것 같은데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걸 느끼게 해줬죠. 코트에서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힌트를 주세요. 답은 알려줄 수 없는 거잖아요. 답은 있는 게 아니니까. 코치님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계속 힌트가 될 만한 것을 던져줘요. 힌트를 찾는 건 제 몫이죠. 그런데 또 그걸 찾는 재미가 있어요.
예를 들면요? 훈련하는 어떤 날 백핸드가 안 된다면, 코치님이 옆에서 “오늘 같은 날은 공과의 거리를 맞춰보자” 라는 아주 기본적인 힌트 같은 걸 계속 줘요. 그러면 제가 하나씩 실행해보고 이 힌트는 나한테 괜찮다, 어울리는 거다, 이건 내가 계속 가지고 가야 하는 거다, 라고 생각하는 거죠.
코치의 말이 다 맞는 건 아니죠. 어떤 인터뷰에서 정현 선수가 어른이 하는 이야기라고 무조건 다 들을 필요는 없다고 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자기중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선수의 스타일이 전부 다르죠. 자신한테 안 맞는 걸 억지로 끼워 맞추면 그건 실패할 가능성이 커요. 스스로 판단하기에 아닌 것 같은 건 실행에 옮기지 말고, 맞을 것 같은 건 실행해야죠. 다른 경우도 그렇겠지만, 테니스도 같아요. 언제나 보이는 답은 없으니까요.
슬라이스도 꼭 필요한 요소일 텐데 자주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까요? 물론 한정 지을 수 없겠지만, ‘서브 앤 발리’형이 슬라이스를 많이 사용한다는 이야기가 있죠. 정현 선수는 아무래도 스트로크를 주로 사용하는 베이스라이너 스타일에 가깝고요. 슬라이스를 많이 치는 스타일이 아니긴 한데, 확실히 더 잘하려면 슬라이스를 많이 쳐야겠죠. 효율적으로 경기를 운영해야 하니까요. 어떤 스타일을 떠나서 상대방을 괴롭힐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릴 생각이 없어요. 이기는 게 목적이니까요. 만약 상대가 슬라이스 공을 싫어하면 계속 치는 수밖에 없죠.
아직 특별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걸까요? 아뇨. 섞어 써야 한다고 느끼는데 아직 몸에 배지 않아서 본능적으로 피하고 있는 것 같아요.
4강 경기에 대한 아쉬움이 컸기 때문인지 정현 선수의 부상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있었습니다. 복식 경기를 뛰지 말았어야 한다, 많이 뛰는 베이스라이너형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할 수 없다, 심지어 인솔이 잘 맞지 않는 것은 아니냐는 의견까지 있었어요. 운동선수가 아프지 않은 곳이 있을까요? 많이 뛰니까 아픈 거죠. 제가 상대한 훌륭한 선수들을 상대로 만약 물집이 안 생길 정도만 뛰었으면 이 정도 못 했을 거예요. 그리고 일찍 졌으면 물집 하나 안 잡히고 한국으로 돌아왔겠죠. 깔창 같은 건 전혀 걱정 안 해도 돼요. 우리 팀이 호주 오픈처럼 큰 대회를 준비하면서 그렇게 사소한 것에 소홀하지는 않아요. 최상의 컨디션에서 플레이했지만 그렇게 오래 시합을 하다 보면 부상은 늘 따라올 수밖에 없어요. 경험이 쌓이면 이런 부상은 줄어들겠죠.
경험이 쌓이면 지금보다 움직임을 줄이면서, 다치지도 않는, 그런 효율적인 경기 운영을 할 수 있게 될까요? 하지만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덜 뛰고 이길 수 있을까요? 그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바로 답이 나와요. 아마 힘들 것 같은데요?
호주 오픈 4강 경기 전에 페더러가 정현 선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하드 코트를 클레이 코트처럼 뛰어다닌다.” 이제 하드 코트에서도 너무나 잘하지만 정현 선수는 여전히 클레이 코트에서 가장 잘한다는 인식도 있잖아요. 저를 클레이 코트에서 더 잘하는 선수로 기억하는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최근엔 클레이 코트보다 하드 코트에서의 성적이 더 좋았어요. 이번 호주 오픈도 하드 코트고요.
갑자기 실력이 늘 때 선수 스스로 어떤 변화를 느낄 수 있나요? 제가 예전보다 딱히 어떤 부분이 확 늘었다거나 많이 좋아졌다고 느끼진 않아요. 그냥 열심히 하다가 보면 결국 이기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호주 오픈에서 만난 노박 조코비치와는 두 번째 시합이었잖아요. 이번엔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이겼어요. 그 경기를 할 때도 달라진 걸 느끼지 못했나요? 제가요? 아니면 조코비치가요?
둘 다요. 둘 다 조금 달라진 것 같긴 했어요. 조코비치는 작년에 부상을 당해서 경기를 오래 쉬다 보니까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에서 경기를 했고, 저는 그래도 2년 동안 계속 투어를 해서 경험을 차분히 쌓았으니까요. 하지만 경기 내내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플레이하니까 딱히 어느 순간 내가 이젠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안 하죠.
경기 전에 예전에 말한 징크스 행동을 했나요? 입을 여섯 번 헹구는 습관이요. 이 습관에 대해서도 4년 전 <GQ KOREA>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는데요. 그때도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최근 기자 분들이 징크스에 관해 물어보면 딱히 다른 건 없으니까 양치질 얘길 몇 번 했어요. 네, 그건 당연히 계속하고 있어요.
패션에는 관심이 많아요? 관심은 있는데 주로 스포츠 의류를 입을 때가 많아서 여러 옷을 입어볼 기회가 많지 않아요. 수트도 오늘 처음 입어봐요. 머리도 원래 곱슬머리인데 어제 매직 하고 왔어요. 이제 경기를 나가야 해서요. 한국 오면 두 달에 한 번씩 해요. 외국 나가면 머리도 못 잘라요. 후원사인 라코스테에는 운동복과 캐주얼 의류가 다 있어서 라코스테 옷 입는 거 좋아해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어요? 딱히 없어요. 그리고 스트레스 받을 일이 거의 없어요.
이제 사람들이 많이 알아볼 텐데 그런 건 스트레스가 아닌가요? 별로 못 알아보시던데요. 하하.
잘 안 될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백핸드 발리가 안 늘어요. 될 때까지 계속 연습해야죠. 연습하는 방법밖에 없죠. 될 때까지.
- 에디터
- 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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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기곤
- 글
- 양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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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