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녀]의 캐릭터 구자윤이 흥미로운 이유

영화 [마녀]의 캐릭터 구자윤이 흥미로운 이유

2018-12-12T11:28:49+00:00 |movie|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캐릭터가 도착했다. 영화 <마녀>의 구자윤이 흥미로운 건 단지 소녀가 최강자라서가 아니다. 박훈정 감독, 김다미 배우와 마주 앉아 구자윤의 설계도를 들여다봤다.

세상에 소녀 병기는 많았다. 세일러복에 장검을 든 소녀도, 전신 타이즈를 입고 초능력을 쓰는 소녀도, 미니스커트에 리볼버를 숨긴 소녀도, 신체에 무기를 주렁주렁 이식한 소녀도 있었다. 소녀와 괴력이라는 모순엔 누구나 흥미를 느끼는 듯했고, 그들은 대개 성적으로 소모됐다. 그런 소녀들 가운데 ‘마녀’가 도착했다. 추리닝에 운동화를 구겨 신고 맨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으로. 대충 자른 단발, 품이 큰 교복 재킷 안에 회색 후드 점퍼를 껴입은 소녀는 어떤 페티시의 타깃도 되지 않는다. 한국의 십 대가 일상에서 편하게 입는 옷을 입고, 목덜미의 바코드를 보여주는 명확한 목적이 있는 쇼트에서만 신체가 클로즈업된다. 대상화되지 않은 그의 이름은 구자윤. 한국의 성씨인 구씨 성은 주로 ‘자’를 돌림자로 쓰기에 정말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법하다.

“맞아요. 이런 소녀 캐릭터는 일본 만화에도, 할리우드 영화에도 많았습니다. 흔하지만 한국 영화에서 많이 접하지 못한 캐릭터라 새롭게 봐주신 거죠.” 영화사 금월에서 만난 박훈정 감독이 <마녀>에 대해 입을 열었다. “판타지 장르라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걸 경계했어요. 한국의 지방 고등학교들 교복을 많이 참고했고 제일 편한 옷을 입혔죠. 이름은 오래전 같이 작업했던 담당자 이름을 빌려온 거예요. 한국에 있을 법한 바로 그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배우 김다미가 왔다. “지원한 1천5백 명 중 1백여 명을 만났어요. 앞 친구들을 보고 프로젝트 접어야겠다, 했는데 거의 마지막에 김다미가 들어온 거죠. 보자마자 이 친구란 걸 알았어요. 평범해 보이지만 뭐든 될 수 있을 법한.”

“어릴 때부터 <스카페이스>, <칼리토> 같은 마피아 영화를 즐겨 봤어요. 강하거나 초능력 있는 배역을 맡아보고 싶었는데 첫 주연 작품으로 만날 줄은 몰랐죠. 정말 기뻤어요.” 티 없이 말간 얼굴로 활짝 웃는 배우 김다미는 될성부른 <마녀>의 적임자였다. 구자윤의 모태가 된 건 여느 소녀 히어로 혹은 안티 히어로가 아닌 ‘프랑켄슈타인’과 ‘황비홍’이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두려워하는 모티프는 프랑켄슈타인의 원형적 이미지를, 처음부터 최강자라는 포지션은 황비홍을 참고했다. “현실에는 없는, 가장 강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어요. 어떤 빌런도 그보단 한 수 아래인.” 감독의 말처럼 <마녀>는 여느 히어로물처럼 평범했던 주인공이 각성해 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최강자이자 완성형인 안티 히어로로 어떤 드라마를 쓸 수 있을까?

구자윤 캐릭터가 특별해지는 건 여기서부터다. 최강자가 주인공이라면 빌런은 더욱 극악해지거나(<슈퍼맨>) 구조 그 자체여야 하고(<황비홍>), 혹은 정체를 숨기고 있다가 드러내야 한다. (메시아가 등장하는 거의 모든 신화.) 그런데 이 영화가 숨긴 건 구자윤의 정체가 아니라 속내다. 영화 속 인물들도, 영화 밖 관객들도 속이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구자윤은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고, 순진한 척 모두를 갖고 놀았다. 그리고 모두의 머리 꼭대기 위에 있었다는 걸 전복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전복’이라는 영화의 부제 자체가 구자윤이 된다. 감독은 어떻게 캐릭터를 설계한 걸까? “이제 이런 영화에서 정체를 숨긴다는 건 반전이 될 수 없어요. 그것만으론 재미없죠. 딱 하나 고민한 게 본인 스스로가 강한 걸 아냐, 모르냐였는데 알아야겠더라고요. 모든 사람의 위에 있어, 그런데 그걸 본인 스스로도 알아야 해. 그만큼 뻔뻔하고 머리가 좋았으면 했어요. 공포를 극대화하려면 이 캐릭터가 스스로의 힘을 알아야 했죠.”

 

전복된 후반부부터 영화는 달라진다. 평범한 소녀처럼 행동한 전반부에서는 구자윤의 시점 컷을 쓰며 관객이 이입할 수 있게 하지만, 구자윤이 돌변하자 카메라 시점부터 바뀐다. 카메라가 빙글빙글 돌다 구자윤의 얼굴로 확 줌인되며 “솔직히, 기대 이상이네”라고 말한 순간, 신경 가스 안에서 홀연히 사라진 후 닥터 백의 시점으로 등장한 순간부터 카메라는 자윤과 거리를 둔다. 이입하던 인물을 낯설게 하는 영화적 경험은 뭘 의도한 걸까? “전반부는 관객이 구자윤이라는 인물에게 정을 붙였으면 했어요. 하지만 절대악으로 태어난 구자윤이 무자비한 살육을 할 때는 공포스럽게 연출했죠. 인간이 자신이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을 두려워하듯, 관객들도 그런 기분을 느꼈으면 했던 거예요.”

착하고 순한 아이였던 구자윤이 생글생글 웃으며 낯을 바꾸는 연기야 말할 것도 없다. 전반부는 배우 김다미조차 구자윤이 평범한 아이라 믿으며 연기했다. “속이고 있는 게 아니라 진짜 평범한 구자윤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하라고 했어요. 일말의 단서도 주지 않으려 한 거죠.” 그리고 반전의 순간, 본성을 드러낸 구자윤이 눈을 흰자가 보이도록 동그랗게 뜨고 입꼬리를 올린 채 “저처럼 머리 좋은 애가…, 그걸 쉽게 잊겠어요?”라고 할 땐 등골이 오싹해진다. “원래 제일 무서운 게 생글생글 웃는 거예요. 인상 쓰는 건 하수지. 최대한 여유롭게 연기하라고 주문했어요. 강한 사람은 강한 척하는 게 아니라고.” 감독의 말을 배우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목소리 톤을 밝게 하고, 표정도 해맑은 느낌으로 했어요. 자윤이는 전혀 겁날 게 없으니까요.” 감독이 “다미 성격이 좀 시큰둥하달까, 뭘 해도 무심한 듯 초연해서 구자윤의 여유를 잘 표현한 것 같아요”라고 덧붙이자 배우는 “전 안 그런 것 같은데, 남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라며 멋쩍게 웃는다.

전복 이후는 구자윤의 세상이다. 여기서부터 압살에 가까운 액션 시퀀스가 시작된다. 최강자의 액션은 어떻게 구현됐을까? 구자윤은 최강자지만 김다미는 액션에 익숙한 배우가 아니었으므로 전략적 접근이 필요했다. “3개월 전부터 몸을 만들고 토할 때까지 맹훈련했어요. 가볍고 간결하고 절도 있게 동작을 하되, 표정은 웃거나 무표정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었어요. 힘을 주면 자동적으로 얼굴이 찌푸려지는데, 계속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하는 게 어려운 과제였어요.” CG의 도움도 한몫했다. “시작점과 끝점은 배우의 연기로 진행하고, 중간중간 어려운 구간만 3D 디지털 캐릭터를 합성했어요. 배우 김다미의 몸을 스캔 받아 만든 캐릭터로 현장에서 지은 표정까지 연결했죠. 어떤 구간이냐고요? 글쎄요, 찾아보세요. 찾기 힘들걸요.” 그건 박훈정 감독의 말대로였다.

비인간적인 인간 병기에겐 필연적으로 인간적인 딜레마가 주어진다. 생존을 위해 한 가족에게 정착했지만 그들과 지내며 사람의 마음을 배운 구자윤은 다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 ‘충돌’이라는 부제를 가진 <마녀> 후속편은 내년 하반기 크랭크인을 목표로 각본 작업 중이다. 이번에도 예산의 한계는 있지만, 이야기의 재미는 타협하지 않을 작정이다. “근본적인 걸 해결하려는 구자윤은 자신을 만든 다국적 군산복합체를 찾아가요. 프로토타입 구자윤의 후세대 실험체도 공개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예뻐라 예뻐라 키우면 예쁜 애가 된다”는 구자윤 어머니의 말은 절대악으로 태어난 구자윤에게도 유효할까? 영화 속 서바이벌쇼에서 구자윤은 아일랜드 민요 ‘대니 보이’를 부른다. 모그 음악감독이 소를 치는 ‘목동’ 구자윤과 어울린다는 생각으로 고른 곡이자, 전장으로 떠난 아들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이 담긴 노래다. “저 초원에 여름이 오면 돌아올까. 계곡이 눈으로 뒤덮이면 돌아올까. 햇빛이 비춰도 그늘이 드리워도 나는 여기서 널 기다린단다….” ‘영웅 서사’는 이제 시작이다. ‘구자윤 비긴즈’는 더 큰 판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