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켈레톤의 윤성빈이 '아이언맨'이라고 불리는 이유

스켈레톤의 윤성빈이 ‘아이언맨’이라고 불리는 이유

2018-12-19T10:45:53+00:00 |culture|

평창의 스켈레톤 트랙을 윤성빈보다 빠르게 달린 사람은 없다.

하계 올림픽은 나은 편이다. 양궁, 유도, 펜싱, 레슬링 등 메달을 따는 종목이 그나마 다양하니까. 반면 그동안 동계 올림픽에서 딴 메달은 모두 쇼트트랙이나 스피드 스케이팅 이었다. 김연아가 금메달을 획득한 피겨 스케이팅도 빙상 종목으로 분류된다. 빙상 외의 종목은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스켈레톤은 유럽권 선수들이 메달을 독식해온 종목이다. 윤성빈이 월드컵 등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연이어 거두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올림픽에서의 메달은 아직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윤성빈은 두 가지와 싸워야 했다. 변변한 시설도, 노련한 전문가도 없는 나라에서 훈련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인프라 구축을 위해 집중적인 투자를 했다고. 하지만 곳곳에 썰매 트랙이 있는 유럽에 비하면 여전히 초라한 수준이었다.

더구나 윤성빈은 어려서부터 썰매를 타는 유럽 선수들과 달리 스무 살이 다 되어서야 스켈레톤을 시작했다. 스켈레톤은 머리를 전방으로 향한 채 엎드려 최고 시속 1백30킬로미터의 속도를 감당하는 스포츠다. 보이는 건 좁고 차가운 얼음길 뿐이다. 머릿속에 코스를 그려가며 종착지에 도착할 때까지 미세한 움직임에 몸을 의지한다. 브레이크가 없는 썰매는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 끝없이 가속한다.

늦게 시작한만큼 지체 없이 배워야 할 것도 많았다. 너무 무서워서 포기하려 한 적도 있었지만, 기록 단축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하루 하루를 견뎠다. 속도를 더 내려면 근육량을 늘려야 했다. 하루 8끼를 먹어가며 몸집을 불렸다. 최단 거리로 가는 길은 더 아찔하다. 공포를 마주하며 위험한 코너에서 더 과감하게 몸을 들이미는 훈련을 계속했다. 점점 성과가 나왔다. 10년 동안 1인자 자리를 굳건히 지킨 라트비아의 마틴 두쿠르스를 앞서기 시작했다. 대회마다 흐름을 주도했다.

스켈레톤에 입문한 지 불과 5년 반. 윤성빈은 평창에서 열린 올림픽에 나갔다.

네 차례에 걸친 주행 기록을 합산해서 따져볼 필요도 없었다. 1차부터 4차까지 모두 1위를 해 기어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가 빙상 이외의 종목에서 딴 최초의 금메달이다.

윤성빈은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는 추상적인 포부보단 곧 열릴 세계 선수권에서도 우승하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말했다. 그는 아직 스물 다섯 청년이다. 전성기를 가늠하기도 어려운 나이다. 무명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한, 그에게 평창은 정점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