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아의 시집 [울프 노트]

정한아의 시집 [울프 노트]

2018-12-19T11:07:32+00:00 |interview|

시인 정한아는 ‘나’를 잘 쓰지 않는다. “맞아?, 정말 그래?, 진짜?”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수많은 나의 마음이 있을 뿐이다.

시집 <울프 노트>의 첫 페이지를 여는 자서 自書에서 정한아는 20년 전 동생과 만화책을 빌려본, 눈이 “아하하하하하” 내리던 어느 밤에 관해 쓰다가 문득 경고한다. “그건 그렇고./ 내 동생을 괴롭히는 자는 처참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하지만 이 자서의 목적은 경고만이 아니다.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신 이들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그는 시를 쓰지 않을 때도 시인이다. 여기에서도 그만의 유머(“그럼 내가 만화책 빌려 올 테니까, 그때까지 자살하지 말고 있어!”)를 추구하고, 실천적인 것(“처참한 대가”)을 염두에 두며, 이 모든 것을 가로지르는 양심(“웃음기가 싹 가신 이들”)을 강조한다. “양심은 자기 신념에 토대를 두는, 주체적인 개념이죠. 하지만 자기 양심에 따라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도 많잖아요. 자신의 옳음을 주장해서 뭔가를 전복해내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실제 뭔가가 도래하고 결정을 내리고 실천해야 할 때, 자기 양심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요.” 정한아는 차라리 양심을 ‘저글링’한다. 하나의 확실한 진술을 계속해서 의심하고 부정하고 지연한다. “우리는 가장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혹은 우리는 사랑 같은 것은 환영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 체념하지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그런데 실상은 얼마쯤 체념한 채로, 상당 부분 포기한 채로, 이게 그거야,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독감 유감 2’)” 하나의 사과가 재빨리 손을 떠나지만, 그것은 모두 손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너무 믿고 싶어서, 확실히 믿고 싶어서 전부 의심해보는 거예요. 사랑, 행복 같은 이상적인 개념이 있고, 그런 건 없다는 증거가 이렇게 팽배한데 어떤 판정을 내려버리면 굉장히 유감스러워질 것 같거든요.” 다만 의심, 부정이 아닌 다른 단어가 필요하다. 정한아는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같은 게임을 하려는 게 아니다. “말로 하기 불가능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당신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실제로 그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암시하는” 정도가 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솔직해지려는, 그렇게 책임을 지려는 태도가 있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라는 말이 오랫동안 문학을 지배”해왔지만, 정한아는 모든 질문을 차단하는 그 정의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고, 당장은 “망원경과 현미경”, “아, 만화경도 물론(‘스물하나’)” 동원해서 “말과 행동 사이에 있는 시”를 써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의 시는 갑자기 신이 사라져버린 시대를 사는 19세기 주체의 고민-신성성, 죄의식-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음에도 덧없이 읽히지 않는다. “신성성은 지금 대화를 나누는 우리 사이에 있는 얇은 신뢰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내 말을 다 못 믿겠는데도 말이 통하고 있는 것. 그게 우리의 신비인 거고, 이미 우리에게 있는데 인지를 못 하는 거죠. 저는 거기에 대한 감사와 존중을 바라는 거예요.” 시보다 먼저, 자서보다 먼저, 방법론보다 먼저인 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