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이자 감독, 머무르지 않는 문소리 | 지큐 코리아 (GQ Korea)

배우이자 감독, 머무르지 않는 문소리

2019-04-26T11:17:21+09:00 |interview|

사라지지 않고, 머무르지 않고, 문소리는 나아갈 것이다.

브라운 드레스, 비비안웨스트우드. 플리츠 장식의 빈티지 촛대, 프런트 데스크.

레더 스커트, 보스. 톱, 글로브, 슈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화이트 블랙 플라워 투피스, 에르뎀 at matchesfashion.com. 새틴 스틸레토 힐, 지니킴.

그린 수트, 플리츠 이너 니트, 모두 앤디앤댑. 스트라이프 힐, 드리스 반 노튼. 빈티지 촛대, 프런트 데스크. 테이블, 안웅철.

플라워 롱 드레스, 드리스 반 노튼. 빈티지 촛대, 스너퍼, 모두 프런트 데스크.

플라워 롱 드레스, 드리스 반 노튼. 빈티지 촛대, 스너퍼, 모두 프런트 데스크.

레더 스커트, 보스. 톱, 글로브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네이비 점프 수트, 슈즈 모두 드리스 반 노튼. 블러섬 시리즈, 김중만.

실크 플라워 셔츠 원피스, 필립 플레인. 블랙 셔츠 원피스, 보스. 에나멜 부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테이블, 박경일.

오늘 아침에 멀리 다녀오셨다고요. 만신 김금화 선생님 49재라 금화당에 다녀왔어요. 선생님 고향이 황해도라 북과 가까운 곳에 있어요. 제자들이 큰 무당들이니까, 못다 한 말씀 풀어놓고, 사자거리라고 저승사자도 대접하고, 한참 울다 왔네요.

영화 <만신>에서 연기했던 인물이라 더 많이 울게 되셨을 것 같아요. 존경심이 늘 있죠. 갈고 닦은 예인의 기품이 있어요. 전통을 지키고 다른 이들을 위로하려는 사명감, 품위가 느껴지는 분이셨어요.

무속인과 배우는 비슷한 점이 많죠? 그럼요. 굿하실 때 보면 어마어마한 배우예요. 다른 이의 아픔을 몸으로 느끼시는 분이었어요. 새마을 운동, 전두환 정권도 겪어내고, 세월호 참사처럼 아픈 일이 생길 때마다 혼령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지냈죠. 배우도 인물을 받아들일 때 저렇게 온 마음과 몸으로 느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극 속 인물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시대와 떨어뜨려놓을 수 없는 존재니까.

마음을 많이 쓰면 진이 다 빠지는데, 괜찮으신가요? 네. 굿당에서 먹는 밥은 또 왜 그렇게 맛있는지. 펑펑 울고, 잘 먹고, 차 안에서 기절하듯 잠들어서 왔어요. 그래도 강화도 날씨가 참 좋아서 어쩐지 개운했어요.

사시는 평택 집엔 꽃이 한창이죠? 여름이면 검은 자두가 열리는 자두나무가 있는데, 만개했어요. 제 방이 2층인데 하도 커서 그 앞까지 꽉 차요. 딸 연두가 사진을 찍어놨는데…. 얘가 이걸 흑백으로 찍어놨네.

연두는 아홉 살밖에 안 됐는데 사진을 잘 찍네요? 사진 찍는 걸 좋아해요. 어느 날은 부엌에 쑥갓을 씻어놨더니 이렇게 묘하게 찍어놨어. 이건 옷인데 옷 색깔이 예쁘다고 확 당겨서 이렇게 천 질감을 찍어놨어요. 무슨 마크 로스코 그림 같이. 예전에 뭘 찍어서 보여 주기에 “까만 밤에 하얀 눈이 온 것 같네”라고 했더니, 뭔가 다르게 보여줬다는 생각에 재미있었나 봐. 그때부터 막 찍기 시작하더라고요. 자식 자랑하고 있네, 지금.

배우 문소리에게 딸은 어떤 존재인가요? 부처도 라훌라라는 자식이 있었는데, 이름 뜻이 속박, 굴레라는 뜻이래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영화 <더 페이버릿>을 봤는데, 올리비아 콜먼이 너무너무 멋있는 거예요. 정말 저런 걸 하고 싶은데, 저런 미친 연기를 하려면 좀 미친 듯 살아야 되거든요. 지금처럼 밤 9시면 음악 틀고 자자, 7시면 일어나자, 하면서 살면 그런 연기가 나오겠나 싶은 거죠. 하지만 동시에 아이가 있어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많이 배워요. 사람을 연기하려면 평생 사람을 공부해야 하잖아요.

출산을 하고 나서 작품이 들어오지 않던 시기도 있었다고요. 출산은 지형지물이 다 바뀌는 거예요. 몸도 마음도 지진이 난 듯 흔들리죠. 체력도 자존감도 떨어지고, 영화에 대한 애정도 떨어졌나 싶은 시기였어요. 그걸 극복해보려고 대학원에 갔죠. 그때 영화를 공부하면서 애정을 회복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거기서 <여배우는 오늘도>라는 엄청나게 멋진 영화를 만들었죠. 그 작품으로 하와이 영화제에 초청을 받아서 연두를 데리고 갔어요. 연두한테 엄마가 이 영화로 상도 받고, 여기 올 수 있었다는 걸 말해줄 수 있어서 참 좋더라고요. 엄마가 일하러 갔을 때, 네게도 엄마가 보고 싶어서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이런 좋은 시간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같이 할 수 있었던 게 참 좋았어요.

딸이 롤 모델로 삼을 수 있는 멋진 엄마네요. 걔는 나를 롤 모델로 삼지 않을걸요. 이미 지가 더 잘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하하.

연두는 엄마를 닮았나요? 저 애기 때랑 똑같이 생겼어요. 성격도 비슷해요. 제가 어릴 때 굉장히 내성적이었거든요. 사람들 앞에서 말도 못 하고, 낯도 많이 가리고. 그런데 한참을 관찰하고, 파악이 되면 그때부터는 활발하고 용감해져요. 유치원 때 선생님이 애가 세 달 동안 말을 못 한다고 걱정을 하셔서 오히려 제가 그랬죠. “걱정 마세요, 저는 더했어요. 내버려두면 깨달을 때가 있겠죠.”

어떻게 그렇게 부끄러움 많던 아이가 배우가 될 수 있었을까요?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표현 안 하고 누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원하는지 욕망을 다 누르고 감추고 있다가 대학교에 가서 연극이란 걸 만나고 확 터져버린 거죠.

장녀셨죠? 네. 떼쓰거나 철없이 군 적 한 번 없었어요. 착실히 공부해서 대학 갔고, 교사를 준비하던 중에 그런 마음이 터지니까, 이렇게 피가 끓는데 잠시만 다른 꿈을 꿔보자, 했죠. 안 그러면 평생 한이 될 것 같아서. 결국 그걸 지금까지 하고 있네요. 당시 부모님은 배신감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언제가 되어서야 배우의 길을 인정해주셨어요? <오아시스>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을 탄 다음에야 인정해주신 것 같아요. 지금이야 아주 잘 지내지만요.

과거 이창동 감독에게 “여배우에게 예쁘다는 건 뭘까요?”라고 여쭤보신 적이 있었죠. 그게 오랜 고민거리기도 하셨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송강호나 최민식, 황정민 배우가 “남배우에게 잘생겼다는 건 뭘까?”라고 생각한 적은 없을 것 같다는. 그분들께도 그런 마음은 있지 않을까요? 아…, 생각해보니 그런 차이가 있네요. 남자 배우들은 정우성 씨 같은 분들만 본인이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아요. 많은 배우들이 자기도 멋있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여성들은 그렇게 생각하기가 어려워요. 사회가 여성에게 천편일률적이고 높은 미의 기준을 제시하니까, 스스로 판단할 때 자신의 개성을 멋지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사회인 거죠.

<캡틴 마블>의 브리 라슨을 두고도 충분히 예쁘지 않다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잖아요. 그랬죠. 그런데 <리틀 드러머 걸>의 플로렌스 퓨를 보고도 의견이 분분하더라고요? 굉장히 매력적이지 않나요? 그런데 어떤 남성 관객들은 ‘저런 사람이 여주인공이라고?’라는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매력을 느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그분들에겐 여주인공은 이래야 한다는 기준이 너무 확고해서, 그것 때문에 콘텐츠를 재미있게 못 보는 것 같아요.

최근 인터뷰를 할 때면 매니지먼트로부터 ‘페미니즘’ 관련 워딩은 빼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아요. 어떤 이들은 그 단어에 낙인을 찍어버리니까 이해는 하지만, 안타까운 상황이죠. 그러니까요. 무슨 ‘일베’처럼 무서워하고 있죠. 여기뿐 아니에요. 예전에 메릴 스트립도 “난 휴머니스트다”라고 말해 여러 말들이 있었지만, 그의 본뜻이 어떤 것이었을지는 알 것 같아요. 페미니즘은 단지 모든 성이 평등하고, 정당한 권리를 누리고, 기회를 갖길 바라는 말인데, 그걸 왜곡하는 상황이 안타까워요.

딸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어떤가요? 신학기에 그런 의문이 들었어요. 학교에선 왜 남자아이들부터 1번을 줄까? 학부모 활동을 활발히 하시는, 딸 둘 있는 어머니를 설득해 건의하자고 했어요. 국가인권위 권고사항이라고 기사 링크도 보내주고. 교장선생님이 흔쾌히 받아주셔서, 이 학교 백 년 역사상 올해 처음으로 여자가 1번이에요. 연두가 너무 기뻐했어요.

최근엔 전문직을 자주 연기하시네요. <라이프>에선 병원장을, 곧 개봉할 <배심원들>에서는 판사 역할을 맡았죠. 판사복이 잘 어울리시던데요. 사주에 관이 있다던데, 캐릭터로 출세하려나봐요. 돌이켜보면 제가 연기한 인물들은 대부분 자기 욕망이 있는 경우가 많긴 했네요. 자기 목소리가 분명한 역할을 잘한다고 생각해서 감독님들이 제안해주시는 것 같아요.

<배심원들>의 김준겸 판사는 원리 원칙을 지키는 보수적인 인물이라고요. 그런 역할을 맡으셨다는 게 무척 반가웠어요. 그 인물은 한국 사법부 전체를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아주 보수적인 사람은 아니고, 점차 변화해나가죠. 나는 내가 이 역할을 맡은 것보다, 재판장 역할을 여성으로 쓴 게 의미가 있다고 봐요. 사실 이게 처음부터 여자로 설정된 건 아니었거든요. 정말 반가운 작품이었어요.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라는 빼어난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3년 전 인터뷰했을 때, “연출엔 큰 욕심이 없다”고 하셔서 낙심했어요. 아휴, 부끄러워요. 저는 직업인으로서 감독이 되고 싶지는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그건 영화로 만들고 싶어요. 같은 말 같지만 다르잖아요. 어떤 이야기가 싹 트면, 그걸 재미있게 키워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영화하는 친구들과 수다 떨 듯이 기획도 생각해보고, 판권도 알아보긴 해요. 저도 언젠가 리즈 위더스푼의 <와일드>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배우 문소리에게 지금의 나이는 어떤 나이인가요? 이제 시작이죠. 하하. 할 일이 많아요. 그리고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전 후배들한테 조언 같은 거 잘 안 해요. 입은 닫고 지갑은 열자.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덕경>에 “공성이불거 부유불거 시이불거”라는 말이 있어요. 공을 이루더라도 거기에 머물지 말라.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뭔가를 이뤘어요. 그런데 거기에 머무르고, 좋았던 순간을 지키려고만 하면 꼰대가 되는 것 같아요. 이리 가든 저리 가든, 어딘가로 나아가야 해요. 계속 또 다른 걸 찾아야죠. 지금처럼 계속 고민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