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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현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에요"

2020.07.23GQ

단단하고 굳건하게, 잠잠하고 침착하게. 자신이 믿는 그대로의 길을 걷는 배우 안보현은 그 누구보다 강하다.

화이트 티셔츠, 제임스 펄스 at 비이커. 데님 와이드 진, 레이 by matchesfashion.com.

블랙 니트 톱, 제임스 펄스 at 비이커. 블랙 팬츠, 질 샌더. 가죽 벨트, 우영미.

블랙 머슬 티셔츠, 아크네 스튜디오. 스트라이프 팬츠, 돌체 & 가바나. 서프보드 펜던트 네크리스, 디올 맨.

화이트 셔츠, 설밤 at 아데쿠베. 블랙 와이드 팬츠, 질 샌더. 스트라이프 넥타이, 폴로 랄프 로렌. 모자는 에디터의 것.

오픈 칼라 화이트 셔츠, 보스 맨. 그레이 팬츠, 질 샌더. 위빙 레더 벨트, 폴로 랄프 로렌. 피셔맨 샌들, 처치스.

오버사이즈 수트 우영미. 블랙 머슬 티셔츠, 아크네 스튜디오. 아이보리 척 70 클래식 스니커즈, 컨버스.

그레이 핀 스트라이프 베스트, 팬츠, 재킷, 모두 제이백 쿠튀르.

어젯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낚시하고 싶다고 올린 걸 봤어요. 아마 올해 봄에 한 주꾸미 낚시가 마지막이었을 거예요. 낚시도 연기랑 비슷해요. 가짜 미끼를 던져놓고 진짜처럼 보이게 만들어서 물고기를 낚아채는 거거든요. 그 기술을 터득해 나가면 정말 재미있어요. 이번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낚시가 채택됐다고 들었어요.

승부욕이 있는 편인가요?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해서 그런지 선의의 경쟁을 좋아해요.

화보 촬영을 위해 밤 12시까지 운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운동은 거의 매일 해요. 근육의 움직임을 보면서 운동을 하는데, 키우고 싶은 곳을 보면서 운동해야지만 그 부분이 더 예뻐지거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거울에 비춰보면 실제보다 몸이 좋아 보여서 ‘오늘 나 좀 괜찮네’라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건 운동을 열심히 했을 때 2주 뒤에 볼 수 있는 모습에 가까운 것 같아요.

자신에게 엄격하고 철저한 사람 같아 보여요. 저는 24시간을 엄청 잘게 쪼개서 쓰는 편이에요. 잠도 제 기준에서는 많이 자는 편은 아닌 것 같고. 어영부영 보내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루를 굉장히 알차게 보내려고 해요. 다음 날까지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절대 미루지 않고요. 게으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뭐랄까, 제 자신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괴롭히죠.

2016년 데뷔작 이래로 필모그래피를 쭉 훑어보면, 차근차근 벽돌을 쌓아 올려 딱 알맞은 때에 포텐셜이 터진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운이 좋았어요. 배우 일을 늦은 나이에 시작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 하고, 더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조금 있었어요. 그래서 제 자신을 못살게 굴었던 것 같아요.

데뷔가 늦었다 치더라도, 서른 이후에도 작품 속에서 교복을 무리 없이 소화했어요. 아마도 교복 입을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요. <이태원 클라쓰>에서도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입었으니까요. 이제는 뭐랄까, 복학생 같아 보여요.

장근원은 그야말로 올해의 빌런이었어요. 다섯 번 이상 오디션을 보고 하게 된 작품이었어요. 저를 안 뽑으면 안 된다고, 그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확신을 드렸어요. 인간 안보현이 연기하는 날것의 느낌을 보여주려고 정말 노력했어요. 연기하면서 이게 맞을까, 저게 맞을까 고민했던 시간들이 이 작품을 통해서 빛을 발했던 것 같아요.

데뷔 이래로 사랑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작품을 많이 하지 않았다는 점이 좀 의외예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멜로 작품이 있나요? 소지섭 씨가 복서로 등장했던 영화 <오직 그대만>을 보면서 ‘와, 엄청 내 이야기 같다’라고 생각했어요. 언젠가 멜로물을 하게 된다면 제 인생과 교집합이 있는 작품을 한번 해보고 싶긴 해요.

인생에서 영화 같은 리얼 로맨스는 없었나요? 그때의 저를 영화 캐릭터에 비유하자면 <주먹이 운다> 속 다크한 남자들에 가깝죠(웃음).

선수 시절에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성격이었나요? 복싱은 자신과의 싸움이라서, 운동하던 시절에는 말수도 별로 없고 낯도 많이 가렸어요.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말도 잘 안 했기 때문에 친한 친구들조차 제가 배우를 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죠.

복싱을 시작한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요? 사실 가족 때문에 시작했어요. 뭔가 짐을 덜어주고 싶었어요. 어린 나이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잖아요. 만약 대회에서 입상하면 금전적인 부분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운동을 하든 연기를 하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어요.

작품과 작품 사이 쉼표가 길지 않아요. 하반기에 선보이는 드라마 <카이로스>를 지금 한창 촬영하고 있죠. 어떤 점에 끌렸어요? 대본이 재미있었고요, 타임 슬립이라는 소재도 새로웠어요. 무엇보다 감독님과 작가님의 입봉작이에요. 두 분의 열정은 정말 상상 그 이상이에요. 감독님이 현장에서 땀나도록 뛰어다니세요. 정말 신나게 아이처럼 뛰어다녀요. 어제 감독님 생일이라 제가 신발을 선물로 드렸거든요. 편지에 “지금처럼 뛰어다녀 주세요”라고 적었어요. 저는 열정 넘치고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을 우러러봐요.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응원하게 돼요. ‘해피 해피’한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의 남은기 같은 역할이 딱 그랬죠. 넉살 좋고 언제 어디서든 잘 웃는 남자. 그 작품을 하면서 태어나서 가장 많이 웃은 것 같아요. 살면서 그렇게 박장대소해본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캐릭터의 성격을 따라서 실제 제 성격도 좀 더 밝게 변했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예능 <나 혼자 산다>를 보면 자기만의 시간을 유유자적 즐기는 내공이 남다르던데. 또래들보다는 독립을 빠르게 시작해서 그런지 혼자 지내온 시간이 꽤 길어요. 그 안에서 저만의 힐링 요소를 찾다 보니까 취미가 늘어났죠. 올드 카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국 일주를 하고, 차박 캠핑을 하고. 이런 것들이 일종의 버킷 리스트였어요.

90년대 올드 카 ‘크롱이’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요? 8년 정도 타고 있는데, 그냥 제 눈에 제일 예뻐 보여요. 뭐든 각진 걸 좋아해서 그런지 무쏘나 갤로퍼 같은 차들을 보면 근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름도 멋있고요. 오래된 아이를 데려와서 부품 하나하나 바꾸는 재미로 탔던 것 같아요.

드라이브할 때 즐겨 듣는 음악은 뭔가요? 장르 불문하고 음악은 다 좋아해요. 트로트, 힙합, 종교가 없긴 한데 CCM도 멜로디가 좋으면 틀어놔요. 캠핑을 시작한 이유도 제가 좋아하는 일몰을 바라보며 좋은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내 사람들과 밤새도록 술 마시는 게 너무 행복해서예요.

한번 술을 마시면 해가 뜰 때까지 마신다고 들었어요. 제 주사 중 하나가 누가 집에 가는 걸 싫어하는 거예요. 좋아하는 사람과 마시면 해 뜨는 건 꼭 보고 들어가야 하고, 택시 타고 안전하게 들어가는 걸 봐야 마음이 편해요. 술이 사람을 좀 부드럽고 진솔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잖아요. 사실 요즘 체중 조절 때문에 금주 중인데, 거의 3주나 버텼거든요.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에요.

안보현을 오래도록 지켜본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이에요? 저는 우정이나 의리를 엄청 크게 생각해요. 언제든 힘들면 내려오라고 말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요. 넌 뭐든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항상 응원해줬어요. 이 일을 포기하지 않고 하다 보니까 조금씩 사람들도 알아봐 주고 요즘엔 텔레비전을 틀면 제 얼굴이 자주 나오니까 친구들이 정말 자기 일처럼 좋아해요. 예전에는 안재욱 선배가 부른 ‘친구’가 제 애창곡이었어요. 정말 아저씨 같지만 항상 친구들과 이 노래를 마지막에 ‘떼창’해야 집에 갔으니까요.

외지인은 잘 모르는 부산의 숨어 있는 근사한 장소가 있나요? 부산에 살면서도 해운대 가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예요. 수영을 해도 해수욕장 말고 갯바위 근처에서 했어요. 홍합, 담치 따다가 직접 요리해 먹고, 낚시하고, 그렇게 놀았어요. 제가 영도라는 섬에서 태어났는데, 그 섬이 진짜 난 섬이에요. 강다니엘, 남주혁, 박해진, 그리고 안보현(웃음)이 다 거기 출신이죠. 사람들은 잘 모르는 특이하고 예쁘고 인간 냄새 나는 곳들이 영도 곳곳에 숨어 있어요. 10초만 눈을 감고 나를 따라오라고 해서 데려가면, 서울 촌놈들이 “와! 미쳤다.”고 반응하더라고요. 5만원어치 회를 떠다가 돗자리 펴고 등대 밑에서 먹으면 끝내주죠.

3개월 만에 27만 구독자를 달성한 유튜버이기도 하죠? ‘브라보현’을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며 느끼는 점들이 있나요?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보니까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는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유튜브에서는 날것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제가 공인이다 보니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고요. 일단은 제가 좋아하는 B급 감성으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어요. 조만간 제 유튜브 채널에서 예상치 못한 셀러브리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다음엔 또 누가 나올까?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그런 게스트가 출연 예정이에요.

즐겨 보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어요? 백종원 선생님이 하는 예능은 거의 다 보고요, 최근에는 <바퀴 달린 집>과 <삼시세끼>도 챙겨 봐요. 시청자들이 댓글에서 종종 저를 언급하더라고요. 누군가 토치로 불을 못 붙이거나 캠핑 장비를 잘 못 쓰는 상황에서, “안보현 같은 놈 하나 있으면 다 해결해줄 텐데”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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