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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친환경 자동차 PHEV의 시대

2020.11.03GQ

순수 전기차만이 해답은 아니다. 다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가 주목받고 있다. 이유가 있다. PHEV는 고효율 자동차를 넘어서 진짜 친환경 자동차다.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탄소’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중에서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자동차의 변신이다. 모두가 순수 전기차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순수 전기차는 멋진 이미지를 가졌다. 차세대 자동차 에너지이자, 합리적인 소비의 결정체처럼 보인다. 단 5천원의 전기 충전으로 400킬로미터를 달릴 만큼 경제적이다. 진동과 소음의 원인인 내연기관이 삭제되었기 때문에 조용하고, 안락하다. 배터리가 낮게 깔린 구조와 강력한 성능에 모터가 결합돼 운동 성능이 극대화된다. 자동차 기술자들이 지난 1백 년간 고민하며 발전시킨 기술들이 전기차라는 혁신적인 구조를 통해 상당수 해결되는 듯하다. 무엇보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잠깐, 이 부분은 완벽하게 동의할 수 없다. 진짜 친환경적인가? 어떤 범위까지를 친환경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뒤통수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드는 반전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전기차의 경우도 그렇다. 에너지와 관련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구 대기를 오염시키는 이산화탄소 배출은 주로 수송 부문에서 발생한다. 자동차보다는 선박이나 항공 분야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결국 핵심은 ‘탄소 발자국’이다. 제품이 어디서 만들어졌는가, 핵심 부품은 어디서 오는가 하는 것이다. 예컨대 지구 반대편에서 만든 순수 전기차를 수입했다고 가정해보자. 수입하는 과정에서 수송차, 기차, 선박을 통해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그 차가 도로 위에서 평생 줄이는 이산화탄소보다 많은 양이다. 극단적인 설명이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친환경 자동차를 무조건 친환경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가솔린이나 디젤 엔진 같은 내연기관이 지구 환경을 오염시킵니다. 우리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지구를 보존하기 위해 친환경 자동차를 타야 합니다.” 친숙한 이런 메시지들은 정부나 단체, 기업이 만든 것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선 언제부터인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내용이다. 그러나 누구도 100퍼센트 공감하진 못한다. 지구 환경을 보존하는 것은 인류에겐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환경 오염을 줄이겠다고 친환경 자동차 같은 고가의 물건을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나.

따지고 보면 순수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같은 친환경 자동차의 본질은 친환경이 아니다. 기업은 각종 규제에 대응하고 정부의 벌금 폭탄을 피하고자 친환경 제품 정책을 내건다. 소비자는 자신의 주머니 사정에 도움이 되는 경제성에 이끌려 친환경 자동차를 선택한다. 만드는 사람이나 구입하는 사람 모두가 지구 환경 오염을 줄이기 위해서 친환경 자동차를 선택하는 건 아니다. 이쯤 되면 친환경 자동차라는 명칭은 ‘고효율 자동차’로 바꾸는 게 좋을 듯하다. 그리고 친환경 자동차가 아닌, 고효율 자동차라는 관점에서는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순수 전기차만이 해답은 아니다. 수년 전부터 순수 전기차가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던 기업들이 다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약 20년 전부터 자동차는 내연기관, 하이브리드, 순수 전기차 순으로 발전해왔다. 브랜드마다 다양한 기술을 내세웠지만 결국 배터리와 전기 모터를 자동차에 효율적으로 결합하는 게 목표였다. 그 결과 지금은 순수 전기차도 한 번 충전으로 350~500킬로미터를 주행하는 시대가 됐다. 모터 출력이 1천 마력을 상회하는 하이퍼 슈퍼카도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여전히 충전 인프라는 부족하고, 사용에 따른 변수는 많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제한된 주행 거리에 발목이 잡히는 순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순수 전기차가 여전히 과도기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공항으로 누군가를 데리러 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지방 출장을 다녀온 전기차 배터리가 11퍼센트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 외에도 불편했던 일을 떠올리면 수두룩하다.

반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불확실성이 거의 없다. 기본적으로 내연기관 엔진에 배터리와 전기 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다. 경유지에 주유소만 있다면 주행 거리 제한이 없다. 엔진의 부족한 힘이나 느린 반응성을 전기 모터가 보완 작용하는 장점도 있다. 최신형 모델이라면 상황에 따라 엔진 혹은 전기 모터만으로도 달릴 수 있다. 시내 주행처럼 저속에서 단거리를 갈 때는 배터리와 전기 모터만 사용한다. 무엇보다 외부에서 배터리로 직접 충전이 된다. 그러니까 내연기관의 장점인 장거리 주행에, 순수 전기차의 장점인 경제성까지 모두 갖춘 셈이다. 물론 PHEV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오래전 일이다. 하이브리드의 한 종류에 인식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최근에야 순수 전기차보다 더 큰 관심을 받게 됐다. 이유가 있다. 전기차 관련 분야의 기술이 그만큼 발전했다는 것. 즉, 제품 경쟁력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지난달 한국에 등장한 BMW 530e를 테스트했다. 이 모델은 12kWh 용량의 고전압 리튬이온 배터리를 달고 1회 충전 시 최대 39킬로미터를 전기 모터만으로 주행할 수 있다. 순수 전기차 모드에서 최고속도는 시속 140킬로미터까지 나온다. 짧게 평가하자면, 첫날은 엔진 시동 소리도 듣지 못했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거리는 약 8.9킬로미터였다. 왕복한 후에도 배터리 잔량은 여유가 있었다. 주행 중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낸 최고속도는 시속 90킬로미터 정도였다. 이때도 엔진이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가정용 충전기로 배터리를 약 4시간 완속 충전했다. 그러자 다음 날도 530e는 그저 순수 전기차처럼 움직였다.

엔진을 사용해 좀 더 편안하게 주행할 때도 결과는 놀라웠다. 113마력 전기 모터가 184마력 가솔린 엔진을 보조하며 예상보다 힘차게 주행을 이끌었다. 530e는 복합 연비가 16.7km/L에 달한다. 실제로 가속페달을 아무리 격하게 밟아도 연비가 12km/L 이상 내려가지 않았다. 주행 거리 측면에서도, 효율성 측면에서도 전기차라는 맹목적인 목표를 향해 사용자가 불편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부드러운 서스펜션과 고급스러운 실내 내장재 등 1백 년간 발전한 자동차의 기술까지 고스란히 누릴 수 있었다.

PHEV는 고효율 자동차를 넘어서 진짜 친환경 자동차이기도 했다. 효율성 측면에서 제품의 경쟁력이 뛰어나기에 고객이 느끼는 장점이 많다. 그만큼 시장에서 더 많이 판매될 확률을 가졌다. 즉, 이런 제품이 잘 팔리면 환경 오염도 자연스럽게 줄일 수 있다. 그뿐인가? 시장의 볼륨이 늘어나면 관련된 기술은 더 빨리 발전한다. PHEV의 고효율 배터리와 전기 모터 기술이 결국 차세대 순수 전기차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시간이 지나면 기술이 발전한다’고 많은 사람이 착각한다. 기술은 스스로 발전하지 않는다. 방치된 신기술은 오히려 뒤처질 뿐이다. 누군가 나서서 기술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야만 한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전기차 기술을 발전시키는 현재의 노력이자 미래를 향한 기술이다. 진짜 필요한 가치를 통해 PHEV의 볼륨을 늘린다. 그리고 늘어난 볼륨에서 얹은 인프라로 다시 순수 전기차 기술을 발전시켜 차이를 벌린다. 이것이 여러 자동차 회사와 자동차 업계가 진행하고 있는 에코 생태계다. PHEV는 그 중심에 있다. 어느새 PHEV의 시대가 시작됐다.
글 / 김태영(자동차 칼럼니스트)

    피쳐 에디터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