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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구도 아닌 지금의 조승우

2021.02.18박희아

배우 조승우가 걸어온 길에는 언제나 정의가 있다. 그의 새 작품 JTBC [시지프스]가 기대되는 이유.

“들어라, 썩을 대로 썩은 세상아. 죄악으로 가득하구나. 나 여기 깃발 높이고 일어나서 결투를 청하는도다. 나는 나, 돈키호테.” 배우 조승우는 요즘 무대에 선다. 여러 시즌 동안 뮤지컬 [맨오브라만차(MAN OF LAMANCHA)]의 주인공 세르반테스이자 돈키호테였던 그는 이번에도 tvN [비밀의 숲 시즌 2]가 끝나자마자 다시금 정의를 논하는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수염을 달자마자 지하감옥이 아닌 풍차 앞에 서서 악을 물리치겠다는 늙은 기사로 변한 그는 어느새 노인의 목소리와 발걸음으로 새로운 꿈을 꾼다.

TV를 비롯해 영화, 뮤지컬까지 매체와 극장을 불문하고 그동안 출연한 작품의 숫자는 셀 수도 없이 많다. 20대의 조승우는 그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젊은 배우에서 조금은 나이가 들어버렸다. ‘젊은 베르테르’가 되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어버리고 만 그에게서 오히려 라만차의 돈키호테를 발견하는 일이 더 쉬워졌다는 뜻이다. 마치 [비밀의 숲 시즌 1]에서 [비밀의 숲 시즌 2] 사이에 발생했던 2년 여의 시간 동안 그가 연기한 황시목이 조금 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했던 것처럼, 조승우는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될 정도로 미친 짓을 일삼는 노인의 모습을 좀 더 자연스럽지만 무거운 이야기로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되어 지금 무대 위에 올라있다.

이제 막 방영을 시작한 JTBC 드라마 [시지프스]에서 조승우가 맡은 한태술은 ‘매달 급여며 주식 배당금으로 통장에 수십억이 찍히고 강남의 최고급 빌딩의 펜트하우스를 소유한 재벌 회장’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을 엔지니어라고 소개’라면서 ‘어려운 문제를 앞에 두면 마치 소년처럼 눈을 빛낸다.’ 심지어 ‘아는 건 무조건 아는 척을 해야 하고, 누군가 과학적 오류를 범하면 꼭 지적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성적인 사람이기까지 하다. 이 모습은 [맨오브라만차]에서 이성을 거부하는 돈키호테와 전혀 다른 모습을 지닌 사람처럼 그를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빠진 황시목이 그러했듯, 한태술도 이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상황에서 오는 혼돈에 스스로를 붙들기 위해 꿋꿋이 노력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돈키호테와 황시목, 한태술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역할도 조승우가 배역을 통해 추구하는 정의로움에 어긋나는 이는 없다. [맨오브라만차]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오”라며 자기만의 길을 믿고 개척해가는 사람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그에게 무슨 화려한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오롯하게 사람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이 역할들은, 사실 성장한 사람만이 맡을 수 있는 역할들이다. 100여 년 전의 엄격한 기숙학교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소년들이 등장하는 연극 [알앤제이]나,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의지를 고수하는 청년들이 등장했던 드라마 [런 온] 같은 작품들에서 후배 배우들이 곧 지금의 조승우가 서 있는 쪽에 놓인 정의를 향해 달리고 있다. 모두가 성장해서 조승우가 되리라는, 조승우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얼마나 벅찬 일인가. 스스로를 키워낸 사람의 뒤를 밟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은 지금 조승우가 조승우이기에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대중이 그려볼 수 있는 청사진이다.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사진
    OD컴퍼니